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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강인이가 계속 '할 수 있다'고 말하는게 너무 귀여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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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U-20 월드컵서 2골씩 터뜨린 조영욱·오세훈

"월드컵 대회 전에 '우승'이 목표라고 얘기했는데, 실제 결승까지 갈 줄 꿈에도 몰랐어요. 1차전 때 포르투갈에 0대1로 졌을 땐 다들 '(우승) 괜히 말했나' 싶었다니까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폴란드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 남자 축구 사상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차지하고 17일 귀국한 조영욱(20·FC서울)과 오세훈(20·아산 무궁화)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둘은 각각 2골씩 터뜨리며 한국 축구의 상승 가도를 이끌었다. 서울광장에서 치러진 환영식을 끝내고 만난 조영욱은 "그냥 꿈을 꾸다 일어난 것 같다. 환영식에 몰린 수많은 팬과 환호성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고, 오세훈은 "금빛(우승)이 아니라 은빛(준우승) 메달이라 아쉬웠는데, 모두 잘했다고 격려하고 축하해주셔서 뿌듯하고 뭉클해졌다"고 했다.

조선일보

오세훈(왼쪽)은 자신보다 한 달 늦게 태어난 조영욱(오른쪽)을 ‘영욱이 형’이라고 부른다. 조영욱이 학교를 일찍 들어가 1998년생들과 함께 졸업한 탓이다. 오세훈은 “진짜 나이를 처음 알았을 땐 어색했지만, 리더십 있는 모습에 지금은 내가 먼저 ‘형’이라고 하게 된다”고 했다. 17일 서울 중구에서 두 선수가 한 손에 은메달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팬을 향해 수줍게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인 모습.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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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용(50) 감독이 지휘한 이번 대표팀은 팀 분위기가 유난히 좋았다. 팀이 지고 있거나 승부차기에 들어갈 때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하는 선수를 위해 다 같이 격려해주는 모습에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 경기가 끝난 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다 함께 목청껏 발라드 곡을 부르는 '떼창' 동영상도 화제를 모았다.

팀 내에서 유일하게 2년 전 U-20 월드컵을 경험해 '고참' 역할을 했던 조영욱은 "그건 경기장 밖에서 형제같이 지낸 모습이고, 실제 경기장과 훈련장에선 격렬한 토론이 오갔다"고 했다.

"이 팀에선 훈련할 때 선수들이 서로 자기 목소리 내느라 시끄러워서 감독님 말씀이 안 들릴 정도였어요. 보통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전술과 선수 움직임을 지시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팀은 거의 모든 걸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었어요. 그게 '원 팀(one team)'의 원동력 아니었을까요."(조영욱)

"정정용 감독님께서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를 많이 강조하셨어요. 꼭 규율이 필요할 때만 강조하고, 그 외에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 어린 선수들이 주눅 들지 않고 자기 플레이를 할 수 있었어요."(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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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욱은 세네갈과의 8강전 연장 전반에 넣은 팀의 세 번째 골이 가장 짜릿했다고 한다. 전반전을 0―1로 뒤진 채 마쳤을 당시, 선수들은 상대팀의 압도적 체격에 기가 죽어 있었다. 조영욱은 "우리 수비수들끼리 '야, 후반전에 조금만 더 힘내서 빡세게 막으면 영욱이 형이 넣어줄 거야'라고 말하는데, 그 얘길 듣고 처음에 부담이 됐다"며 "그러나 맏형으로서 주눅 들면 안 될 것 같아 '어떻게든 한 골 넣어서 끝내줄 테니 조금만 더 막아'라고 했는데 진짜 중요한 골을 넣을 수 있어서 기뻤다"고 했다.

조영욱은 "정정용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꼭 골을 넣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이 경기 전 손뼉을 마주치고 악수할 때, 검지로 내 손바닥을 긁으셨다"며 "나한테만 그런 건지는 아직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그때 '감독님이 날 신뢰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오세훈은 헤딩으로 넣은 두 골보다 세네갈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한 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VAR(비디오 판독)로 상대 골키퍼 반칙이 드러나 심판이 다시 차라고 했을 때 골키퍼 (이)광연이가 다가와 '가운데로 차라'고 했다"며 "골키퍼가 해주는 말이니 진짜 상대 골키퍼 허를 찌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가운데로 세게 찼다"고 했다.

라커룸 분위기 메이커였던 '막내 형' 이강인(18·발렌시아) 이야기도 나왔다.

"경기 직전 다들 '파이팅'을 불어넣는 말들을 한마디씩 하잖아요? 강인이가 말이 진짜 많아요. 한두 마디 했을 땐 선수들이 전의를 불태우고 눈에 쌍심지를 켜는데, 강인이가 계속 '우리 할 수 있어!' '왜 못 해' 라고 혼자 계속 진지하게 말하니까 다들 그런 강인이가 귀여워서 웃었죠."(조영욱)

"강인이가 스페인 라 리가에서 배운 전술적인 부분을 많이 알려줘요. 막내가 열을 올리면서 형들에게 설명을 해주는 걸 보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였죠."(오세훈)

또래 선수들끼리 한 달 가까이 외국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정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조영욱은 "우리 나이대 최대 관심사가 연애인 만큼 서로 연애 상담도 해주고 기쁜 얘기, 슬픈 얘기 모두 듣다 보니 형제가 된 기분"이라며 "각자 소속팀으로 흩어지는 게 너무 아쉽다"고 했다. 오세훈은 "주장 황태현 말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해 더 높은 곳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다시 한 팀에서 손발을 맞춰보고 싶다"고 했다.

[윤동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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