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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이란이 유조선 공격' 단정하지 않는 3가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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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범인'이라는 美에 "근거 달라"…英·사우디와 입장차

"이란 방문중 피격"…아베, 선거 앞두고 '중재 외교' 실패 역풍 우려

주 원유 수입처 이란과의 관계 '우려'…'제2의 통킹만 사건' 의심도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이 오만해의 자국 관련 유조선 피격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맹방 미국의 주장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이란이 공격 주체라고 주장하며 국제 여론을 통해 압박을 가하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 "근거를 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배경에는 '아베 외교'의 실패 부각을 피하려는 정치적인 딜레마와 주 원유 수입처인 이란과의 관계 악화 우려, 과거 사례를 토대로 한 미국에 대한 불신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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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왼쪽) 일본 총리가 13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만나는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17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13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이란을 '유조선 공격의 주체'라고 지목한 이후 복수의 외교 루트를 통해 미국에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해 달라'는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해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우방 국가들이 이란을 공격의 주체로 단정하면서 비판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이란 방문 기간 유조선 공격이 감행된 것을 두고 폼페이오 장관은 "이란이 일본을 모욕한 것"(14일)이라며 일본을 자극했다.

모하마드 빈 살만 빈 압둘라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도 "이란이 일본 총리의 테헤란 방문에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이란을 공격 주체로 단정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있다.

일본이 이렇게 우방 미국에 등을 지면서까지 이란을 범인으로 지목하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는 아베 정권이 처한 국내 정치 상황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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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해에서 피격된 후 불타는 유조선
(오만해 AP=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오만해상에서 유조선 한 척이 불에 타며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다. leekm@yna.co.kr



아베 총리의 중재 외교 실패에 대한 자국내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을 고려해 이란을 공격 주체로 특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해석이다.

아베 총리는 올여름 참의원 선거를 겨냥해 '이란 방문'이라는 승부수를 던지며 그동안 일본이 개입하기 꺼렸던 중동지역의 갈등 상황에 발을 들여놨다.

정상 외교에 주목도가 큰 일본 유권자들의 특징을 고려해 아베 총리가 이란에서 자신의 외교 능력을 과시하면 '외교는 역시 아베'라는 유권자의 믿음을 강화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하지만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아베 총리와 만난 뒤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마저 부정했고, 일본과 관련이 있는 유조선이 피격되는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이미 중재 외교 실패에 대한 야권의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이란을 공격 주체로 특정하면 아베 총리 스스로 이런 비판을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

총리관저 관계자는 교도통신에 "(공격 주체가 이란이면) 미국과 이란 사이 중재에 나선 아베 총리의 체면이 현저하게 손상된다"고 말했고 마이니치 신문도 "이란이 공격한 것이면 아베 총리의 체면이 망가지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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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해 유조선 공격' 브리핑하는 폼페이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국무부에서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와 함께 가장 가까운 우방 미국과 주요한 원유 공급원인 이란 중 어느 하나도 잃어서는 안 되는 상황도 일본의 입장 표명을 신중하게 만들고 있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3번째로 비중이 큰 대일본 원유 수출국이다. 또 일본 기업들은 자동차와 전자 제품 등을 이란에 활발하게 수출하고 있다.

일본은 이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몇 안 되는 서방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란이 석유 시설 국유화 조치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돼있던 1953년 일본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란산 원유를 수입한 바 있다.

국익을 따져볼 때 일본이 이란과 이런 우호 관계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란을 '범인'으로 지목한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교도통신에 베트남 전쟁 발발의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을 언급하며 "미국에는 다양한 역사가 있다"는 말을 했다.

통킹만 사건은 1964년 미국 군함이 통킹만 공해상에서 공격을 받은 사건이다.

미국 정부는 이를 북베트남 정권의 어뢰 공격이라고 단정하고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했다. 하지만 이후 미국 언론 보도와 정부 관계자들의 폭로로 미국의 자작극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은 '고도의 기술과 정밀도를 갖춘 공격으로, 주변에서 이런 역량을 가진 세력은 이란밖에 없다'며 이란을 공격 주체로 지목했지만, 공격 주체가 미국이나 이스라엘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총리관저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틀렸다. 그런 이유라면 미국도, 이스라엘도 해당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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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오만해 피격 유조선 2척 항적
(서울=연합뉴스) 장성구 기자 = 13일(현지시간) 오전 걸프 해역으로 이어지는 오만해에서 석유제품을 실은 대형 유조선 2척이 공격을 받았다. sunggu@yna.co.kr 페이스북 tuney.kr/LeYN1 트위터 @yonhap_graphics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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