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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HIV 감염’ 공개하고 유튜브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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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한국 첫 HIV 양성 스트리머 랑둥

“방송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위안 주는 존재라는 것 알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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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다. 감염인 수는 1만2320명(2017년 기준)이지만 이들이 감염 사실을 드러내고 사람들 앞에 나선 적은 극히 드물다.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워낙 큰 탓이다. 감염사실이 알려지면 주변 인간관계가 깨지고 직장을 잃을 위험이 생긴다. 신상 노출을 죽는 것보다 두려워하는 감염인도 많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얼굴을 온라인에 공개하고 방송하는 HIV 감염인이 있다. 올해 24살인 ‘랑둥’이다. 그는 자신이 남성 동성애자이며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공개하고 올해 3월부터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다.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밝힌 유튜버는 그동안 많았지만, HIV 감염인 유튜버는 처음이다.

랑둥의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은 6월12일 기준으로 6800명이다. 구독자는 많지 않지만 그가 올린 영상 중엔 조회수가 수십만 회에 달하는 영상들도 있다. ‘에이즈에 관한 사실들을 말해드릴게요’라는 제목의 영상은 조회수가 91만 회에 이른다. 랑둥은 영상에서 HIV와 이로 인해 면역체계가 손상돼 생기는 병인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자료 등을 참고해 차분하게 설명한다.

랑둥은 어떤 계기로 HIV에 감염됐고, 방송에 나서게 됐을까. 그는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낙인을 버텨낼 수 있을까. 부산에 있는 랑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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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에 감염된 건 언제인가.

2016년 11월 HIV 양성 진단을 받았다. 사람 마음이 신기하다. 한 번에 무너지지 않았다. 서서히 무너졌다. 우울감이 심해져 휴학하고 집에 누워만 있었다. 밥 먹을 의지도 없었다.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 ‘저기 치이면 좀 편해지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내가 잘못해서 HIV라는 벌을 받는 줄 알았다. 자존감이 땅에 떨어져서 내가 나를 좀먹어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특별히 문란하거나 잘못해서 감염된 게 아니었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일 당장 죽을 생각을 하니, 역설적으로 오늘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해보게 됐다. 지금은 HIV 감염이 마냥 불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덕분에 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방법도 알게 됐다.

개인방송을 시작한 계기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했다. 당시 내가 게이고 HIV 양성이라는 이야기는 가족과 친구한테도 못했다. 심리상담을 알아봤는데 한 달에 80만원이 들어서 그것도 포기했다. 주변 사람한테 털어놓는 것보다는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는 게 부담이 적겠다고 느껴 2018년 초 아프리카TV에서 방송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욕하는 사람보다 응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 이야기를 듣고 HIV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두 달 방송하다 대학에 복학한 뒤 본격적인 방송을 준비했다. 올해 초 대학을 다시 1년 휴학하고 부산에 있는 오피스텔에 방을 빌려 들어왔다. 3월부터 유튜브를 시작했다. 현재 유튜브와 아프리카TV에서 동시에 방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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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둥은 채팅창에서 누군가 민감한 질문을 할 때 “예의를 갖춰서 질문해달라”고 요구한다. 채팅방에 들어와 있는 성소수자나 HIV 감염인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게이이자 감염인인 사람은 다중적인 혐오에 노출된다. 일부 기독교인은 “변태적인 성생활(동성애)을 하면 하늘이 내린 벌(에이즈)을 받는다”는 식으로 공개적으로 혐오를 조장한다.

다음과 같은 사실관계를 충분히 설명해도 혐오는 멈추지 않는다. △남성 동성애자는 HIV 감염의 취약 집단이지 원인이 아니다. △HIV 감염인은 치료만 꾸준히 받으면 에이즈가 생기지 않는다. △치료를 받으면 몸속의 바이러스 수치가 낮아져 타인을 감염시킬 수 없다. △설령 치료받지 못해 에이즈가 발병한다 해도 일상생활로는 감염되지 않는다. 혈액·정액·질액이 몸에서 몸으로 바로 이동할 때만 감염이 일어난다. △HIV는 매우 약한 바이러스라 공기 중에 노출되거나 수돗물에 닿으면 바로 사멸한다.

랑둥은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혐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게 두렵지 않았나.

두려웠다. 성소수자를 싫어하는 사람한테 욕먹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속한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욕먹는 게 무서웠다. 내가 방송하겠다고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을 때 이런 댓글을 다는 사람도 있었다. ‘동성애자가 에이즈 퍼뜨리고 다닌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진짜 동성애자에 HIV 감염인인 네가 나타나면 혐오할 이유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 하지만 이런 댓글은 소수였다. 댓글 30개 중 28개가 응원이었다. 그 응원 덕분에 방송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됐다. 두려움보다 성취감과 보람이 크다.

실시간 방송 채팅창에서 욕하는 사람은 없나.

그동안 내가 삭제한 댓글과 차단한 시청자가 수두룩하다. 처음 방송할 땐 그렇게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았다. 누군가 채팅방에 들어와 무례한 발언을 해도 다른 분들에게 ‘우리의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는 채팅으로 대응해달라고만 했다. 사실 나를 욕하는 건 괜찮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매니저(랑둥의 방송을 도와준 다른 시청자)가 채팅방에서 욕먹는 모습을 봤다. 그때는 나도 화가 나서 이성적 대처가 되지 않았다. 나를 사랑해주는 시청자들이 내가 욕먹는 걸 볼 때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이해가 갔다. 너무 미안해서 그다음부터는 바로 삭제와 차단을 한다. 댓글창이나 채팅창을 보면 알겠지만 깨끗하다.

방송을 보고 오프라인에서 혐오를 드러낸 사람은 없나.

없었다. 안 유명해서 방송의 영향력이 생각보다는 없다.(웃음) 부모님이 탈동성애하고 교회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정도?

교회를 다녔나.

모태 신앙으로 20년간 다녔다. 지금은 (하느님이 아닌) 날 믿는다. 내 삶을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누군가가 결정한다는 게 싫다. 내 삶은 내가 결정한다.

랑둥의 방송은 무거우면서도 가볍다. 일상을 찍은 영상인 ‘브이로그’도 있고, 시청자 앞에서 밥을 먹는 영상인 ‘먹방’도 있다. 수영장에 가고 산책하고 친구랑 밥 먹는 영상도 있다. 시청자와 통화하면서 연애 고민을 상담해주기도 한다. 한참 웃고 떠들다가도 동성애나 HIV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진지해진다. 랑둥이 늘 무겁기만 한 방송을 피하는 이유가 있다.

먹방이 많더라. 브이로그는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특이했다.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기성관념이 깨질 수 있다. ‘분명히 교회에서는 병균처럼 묘사했는데 저 사람 잘 사네? 병원에서 골골대며 사는 게 아니라 수영장도 다니고 연애도 하네? 진짜 교회에서 말한 게 맞나?’ 시청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으면 좋겠다. 교회 사람들과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영상도 찍어보고 싶다.

방송의 주 시청자는 누군가. 그리고 어떤 분들이 방송을 봤으면 좋겠나.

게이와 HIV 감염인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긴 한데, 그와 관련 없는 사람도 많이 온다. 동성애자와 HIV 감염인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내 방송을 보고 생각이 바뀌는 건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나를 사랑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즐겁게 방송하는 게 목표다. 특히 게이 청소년들이 내 방송을 봤으면 좋겠다. 난 18살 때 게이 커뮤니티에 처음 인연이 닿았다. 그땐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원나잇’도 많이 하고,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하기도 했다. 내가 감염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게이 청소년들이 방송을 보고 내 경험을 들으면서 자신을 좀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유튜브에 HIV나 에이즈로 검색하면, 기독교인들이 올린 반동성애 영상이 많이 검색된다. 이런 영상을 반박할 생각은 없는지.

반박하는 영상은 찍고 싶지 않다. 논리적인 정보를 준다고 해서 사람들의 의심이 깨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바른 수치나 통계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건 사람들이 내 말에 어느 정도 귀 기울여준 다음에야 받아들여지는 거다. 논리적으로 대결하면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할 수 있을지라도 그의 생각을 바꾸긴 어렵다.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늘어나게 하려면 결국 나도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

앞으로 계획하는 콘텐츠는.

내 삶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스케치 마이 라이프’ 코너를 준비하고 있다. 시청자는 내가 왜 HIV에 감염됐는지 많이 묻는다. 내가 동성애자라서,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해서 감염됐다고 답하는 건 부족하다. 왜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하게 됐는지, 가정환경은 어땠는지, 동성애자가 겪는 사회적 환경은 어떤지 담아야 진짜 이유가 된다.

지금은 덤덤하게 말하지만 과거를 들여다보는 게 나로서도 힘든 일이다. 울지 않고 말하게 되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다. 매일 이런 콘텐츠를 만들 수는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HIV 관련 영상을 올리려 한다. 일주일에 네 번은 딱히 주제 없이 시청자와 수다 떨면서 즐기는 영상을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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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둥을 실시간 만날 수 있는 방송은 매일 밤 11시에 시작된다. 끝나는 시간은 매번 다르다. 다른 성소수자 유튜버들이 운영하는 채널에 비하면 성적인 내용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랑둥은 자극적인 이야기보다 따뜻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 했다. 랑둥이라는 별칭은 그의 어릴 적 별명 ‘사랑둥이’에서 따왔다.

편집은 직접 하나. 도와주는 분이 있는지.

혼자 한다. 시청자 중에서 도와주겠다고 나선 매니저가 두 분 있는데 채팅창을 관리하고 영상 섬네일(축약판)을 만들고 태그 다는 일 등을 도와줘 편집에만 집중할 수 있다.

생활은 지속가능한가.

지난달은 생활고를 겪을 정도로 어려웠다. 후원금이 들어오지만 유튜브 정산 시스템 등의 문제로 6월까지는 어려울 것 같다. 7, 8월에는 좀 괜찮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불안정한 직업이다.

HIV 감염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언젠간 바뀔 거라고 보나.

저절로 바뀌는 건 없다. ‘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을 비롯해 많은 분이 노력한 결실이 이제 하나둘 돌아오고 있다. 사람들은 HIV 감염인이 눈에 안 보이는 데서 조용히 숨어 지내길 바란다. 하지만 자꾸 양지로 나와 자기 이야기를 해야 우리의 인권도 지킬 수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인식을 바꾸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보람 있다.

부산=글·사진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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