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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여성 지도자 이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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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여성이 무슨 공부를…." 이희호 여사의 모친은 배움의 꿈이 컸지만 사회의 편견이라는 벽 앞에서 좌절했다. 딸은 자신의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았다. 딸은 모친의 기대에 부응했다. 1942년 이화여자전문대학(현 이화여대)에 입학한 것이다.


이 여사의 부친은 서울 종합병원 의사 출신이다. 부친은 이화여전 재학 시절 딸의 혼담을 서둘렀다. 상대 남성은 일본 메이지 대학을 나온 인물이었다. 그와의 혼례가 성사됐다면 인간 이희호의 삶, 아니 한국 현대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딸은 단호하게 결혼을 반대했다. 실제로 이 여사는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독신의 삶을 이어갔다. 1962년 5월10일 '운명의 남성'과 혼례를 치르기 전까지…. 독신의 울타리를 허문 존재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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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고 이희호 여사 안장식이 진행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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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는 반독재 투쟁에 나섰던 야당의 젊은 정치인이었다. DJ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가시밭길이 예정돼있었다. 이 여사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인물이다. 결혼을 경험했고 자식도 있었던 DJ와 미래가 보장된 '여성 지도자'가 결혼에 골인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사람을 도와야겠다.' 이 여사가 마음으로 청혼을 받아들인 것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꿈'에 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세상의 고통을 구원하는 일은 이 여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였다. DJ는 결혼 이후 수배와 투옥, 고문, 심지어 암살의 위협에 시달렸다.


이 여사는 DJ가 흔들릴 때마다 곁에서 남편을 일으켜 세워주며 바른 길을 걷도록 인도했다. 세상은 이 여사를 '대통령의 아내'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러한 직함은 이 여사의 삶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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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내 현충관에서 엄수된 고(故) 이희호 여사의 사회장 추모식에서 여야5당대표가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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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없었더라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됐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DJ가 1983년 미국 망명 시절 강연회에서 전한 말이다. 이 여사는 DJ에게 평생의 동지이자 인생의 나침반이었다. 2019년 6월, 이 여사는 남편이 있는 국립 현충원에 나란히 잠들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정파와 이념을 초월한 장례위원회가 꾸려져 그를 배웅했다. 한국 현대사가 기억할 여성 지도자 이희호가 떠나는 그 길이 외롭지 않도록….



류정민 정치부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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