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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신율의 정치 읽기] ‘국민소환제’ 실시하면 국회가 잘 돌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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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국회 공전이 지속되면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사진은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이완영(좌), 이우현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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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공전이 지속되니 국민은 점점 화가 난다. 일 안 하는 국회의원을 세금으로 월급 줄 필요가 없다는 여론부터 지금처럼 국회가 공전할 경우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자는 여론까지 나타나는 모양이다.

국회를 해산하자는 주장은 아주 위험하다. 지금처럼 여와 야가,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그리고 민주평화당 vs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일부의 대립구도 속에서는, 상대방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가 실종된 것은 맞다. 그래도 국회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을 회상해보면 아무리 제구실을 못하는 국회라도 국회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종의 보루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도는 덜하지만 국민소환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리얼미터는 5월 31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04명을 대상으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에 대한 찬반 여론을 조사했다(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이 조사에서 ‘국민 뜻에 따르지 않는 국회의원을 퇴출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므로 찬성한다’는 응답이 77.5%에 달했다. 반대로 ‘의정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고 정치적 악용의 우려가 있으므로 반대한다’는 응답은 15.6%에 그쳤다. 모름·무응답은 6.9%였다. 압도적으로 찬성이 우세한 결과다. 분위기가 이래서인지는 몰라도, 민주평화당은 국민소환제를 당론으로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국민소환제를 실시하면 정말로 국회가 잘 돌아갈까?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실시하는 나라를 꼽자면 영국, 대만,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벨라루스, 키리바시, 키르기스스탄,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팔라우 정도를 들 수 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실시하는 나라로는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세르비아, 팔라우,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루마니아, 대만(대만의 경우는 총통) 등의 나라가 있다. 앞에 열거한 나라 중 우리보다 국민소득도 높고 민주주의를 잘 구현하는 나라는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 영국 정도다.

먼저 영국을 보자. 영국은 하원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이 가능하다. 영국의 하원의원 소환 절차는 이렇다. 소환 원인 발생 6주 이내에 지역 유권자의 10% 이상만 소환청구에 서명하면 국민소환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해당 지역 주민을 상대로 한 투표도 없다. 절차만 보면 영국은 하원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의 절차가 상당히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의원이 소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면 절차가 간단한 이유를 알 수 있다. 형사 문제로 기소가 돼 실형을 선고받은 의원이 국민소환 대상이다. A하원의원이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되면, 그때 비로소 국민소환 대상이 된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나라도 영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우리가 영국보다 의원직을 박탈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이 선거법을 위반했을 경우 실형뿐 아니라 벌금 100만원 이상 선고만 받아도 자동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 형사사건은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포함)을 받으면 의원직을 자동으로 잃는다. 우리나라는 굳이 국민소환 절차를 통하지 않아도 이들 범법 의원을 자동으로 국회에서 쫓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보면 의원에 대한 징계는 영국보다 우리가 오히려 더 엄함을 알 수 있다.

이제 다른 나라를 살펴보자. 오스트리아는 대통령을 국민소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 그런데 오스트리아는 내각제 국가지 대통령제 국가가 아니다. 오스트리아가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는 이유는 대통령이 명목상이라도 국가원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즉,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실질적 권한이 거의 없는데, 그럼에도 6년의 임기 동안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은 있기에 그 경우를 대비할 필요가 있어 국민소환제를 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마디로 국민소환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명목상의 국가원수’에 대한 ‘명목상의 견제 수단’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이슬란드 역시 똑같다. 아이슬란드도 내각제를 실시하면서 명목상 국가원수로 대통령을 둔다. 이런 명목상 국가원수에 대한 명목상의 견제 수단으로 국민소환제를 두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 중 국민소환제를 실시하는 나라가 있기는 하지만, 국민소환이라는 제도에 실질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나라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 외에 국민소환제를 실시하는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벨라루스, 키리바시, 키르기스스탄,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팔라우 등은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로 보기는 힘들다. 국민소환제를 통해 권력자의 권력 유지를 용이하게 만들려는 시도도 엿볼 수 있다.

국민소환제가 어떤 한계가 있기에 대부분 서구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지 않은 것일까.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월급을 주지도 말고 쫓아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회의원의 ‘일’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다. 물론 국회의원의 주된 임무 중 하나는 국회에서 입법활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역구 의원은 지역 문제에도 몰두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제도에서 지역구를 두는 이유는 지역 여론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그뿐 아니라 국회의원은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 목소리 역시 중앙정치에서 대변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국회에서 지지층 의견을 개진하기 힘들다고 판단할 경우, 다른 수단을 통해서라도 이들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이것도 국회의원의 임무다. 이 때문에 국회가 공전한다고 해서 국회의원이 판판이 놀고 있다고 보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국회의원이 국회를 공전시키기 때문에 월급을 주지 말자거나 국민소환 대상이 된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서는 먼저 국회의원 직무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국민소환제를 실시할 경우 반드시 비리와 관련되지 않아도 국민소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 국회의원 혹은 광역단체장이 자신의 지역에 화장장이나 쓰레기 소각장과 같은 주민 혐오시설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추진했을 때, 주민들이 동의 없이 이런 계획을 추진한다면서 주민소환을 주장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지자체 단체장의 독자적 직무 범위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뿐인가. 현재 우리나라같이 좌(左)와 우(右)의 구분이 뚜렷할 경우, 자신의 이념과 상이한 이념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을 정치적 목적하에 소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아울러 특정 의원이 소수인권 문제같이 민주주의에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다루다, 소수인권 문제에 부정적인 국민으로부터 국민소환을 당할 수도 있다.

이런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민소환 대상을 엄격히 규정하면 된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엄격히 규정하면 오히려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수 있다. 반대로 국민소환 대상을 느슨하게 하면 소환제 남용이 발생할 수 있다. 혹자는 적정 수준으로 국민소환 대상을 정하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적정한 수준이라는 것은 현실에서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이 현행 제도를 보다 엄격히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도 형사범죄를 저지른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문제는 이 속도가 너무나 느리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의원직 박탈 수준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대법원 판단까지 기다리다 보면 임기를 끝마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부분은 개정이 필요하다.

어떤 제도든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지만, 부작용이 순작용보다 더욱 뚜렷해 서구 국가들이 채택하지 않은 제도를 우리가 선제적으로 채택할 이유는 없다. 일부에서는 서구 정치인은 우리나라 정치인보다 훨씬 낫기에 국민소환이 필요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은 정치란 권력 현상이어서 정도의 차이는 약간 있을 수 있지만 근본은 똑같고, 그래서 정치인의 행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경제처럼 압축 성장할 수 없다. 서구 국가의 지혜를 배우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3호 (2019.06.19~2019.06.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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