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3139047 0022019061653139047 04 0402001 6.0.17-RELEASE 2 중앙일보 0

홍콩 뒤덮은 ‘검은 물결’… "이번엔 144만명 상복 시위"

글자크기

송환법 보류 아닌 완전한 철폐 요구

"악법 폐지" 소셜미디어로 시위 생중계도

친중 신문사 전광판 시위대 야유로 운영 중단

시위 6시간 만에 람 장관 공식사과 성명 발표

폼페이오 "G20 때 홍콩 시위 논의할 것"

홍콩이 검은 바다로 변했다. 16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의 완전 철폐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하야를 요구하는 검은 옷의 시위대가 홍콩을 뒤덮으면서다.

홍콩 정부가 전날 송환법 추진을 ‘연기’한다고 발표했지만, 시위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시위대는 법안을 다시 추진할 수 없도록 완전한 철폐를 요구했다.

시위를 주도한 지미 샘(岑子杰) 민간인권진선(民間人權陣線·민진) 대표는 이날 “한 자루 칼이 홍콩의 심장에 여전히 꽂혀 있다”며 “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칼을 뽑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시위대는 이날 법안의 완전한 철폐와 6·12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행정장관의 사과와 하야를 요구했다.

중앙일보

16일 검은 옷을 입고 '송환법 완전 폐지'와 '캐리 람 행정장관 하야'를 요구한 홍콩 시민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홍콩 빈과일보는 이날 시위대 규모를 144만명으로 추산했다. 지난 9일 103만명(집회 주최 측 추산)을 크게 앞선 수치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989년 천안문 사건을 지지했던 홍콩 150만 시위 규모를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시위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당초 강경 태도를 굽히지 않던 캐리 람 장관도 공식 사과에 나섰다. 시위 6시간 만인 오후 8시30분쯤(현지시간) 람 장관은 성명을 내고 “진심으로 겸허하게 모든 비판을 수용하겠다”며 "더 많은 시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과를 하면서도 송환법 철폐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시위대가 출발한 빅토리아 공원에서 만난 에드먼드는 “홍콩 인 블랙”이라며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캐리 람 행정장관에 크게 실망했다”고 하야를 요구했다.

이날 시위는 정오쯤 퉁러완(銅鑼灣) 일대에 흰 리본을 가슴에 꽂고 흰색 국화를 든 검은 옷차림 시민들이 모여들면서 시작됐다. 이른바 '상복' 시위다. 홍콩 언론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위를 생중계했다. 생중계 영상에는 전세계 네티즌들이 실시간 댓글을 달며 지지를 표시했다. 일부 시위대는 2014년 우산 혁명의 상징인 우산을 펼쳐 들고 행진했다.

시민들은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악법 폐지” “린정(林鄭·캐리 람 행정장관의 성) 하야”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빅토리아공원을 출발해 정부 청사가 있는 애드미럴티까지 4㎞ 구간을 검게 물들였다.

시위대 인파가 몰려들자 안전사고를 우려한 홍콩 지하철은 센트럴, 애드미럴티, 완차이, 퉁러완 등 시위 구간에서 열차를 무정차 통과했다.

시위대는 중국에 대한 반감도 숨기지 않았다. 시위대는 헤네시가에 위치한 친중국 성향 신문 대공보사의 대형 전광판에 '홍콩 당국을 지지한다'는 중국 외교부의 성명 내용이 나오자 거센 야유를 퍼부었다. 시위대의 야유에 못이긴 대공보 측은 전광판 운영을 중단했다. 그 순간 도로를 가득 메운 인파의 야유는 환호로 변했다.

중앙일보

친중국 성향 신문 대공보는 시위대의 야유를 못 이기고 전광판 운영을 중단했다. 신경진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홍콩 사무를 담당하는 권력 서열 7위의 한정(韓正) 정치국 상무위원은 홍콩과 인접한 선전에서 이날 시위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

'범죄인 인도법' 반대에 나선 홍콩 시위대가 경찰의 진압 작전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날 ‘반송중’(反送中·중국 송환 반대)을 주장하며 투신해 숨진 시민 량링제(梁凌杰·35)을 추모하는 애도 물결도 이어졌다. 량씨가 투신한 정부 청사 인근 퍼시픽 플레이스 현장에는 시민들이 꽃을 헌화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해가 지면서 촛불 집회도 열렸다.

대규모 시위를 막는 데 실패한 캐리 람 행정장관은 레임덕에 직면했다. 홍콩 명보는 “캐리 람 행정부를 레임덕 정부”라고 규정하고 “성난 시민들이 내년 입법회 선거에서 행정 장관의 지지 기반인 친중파 의원에게 화풀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003년 홍콩 기본법 23조 국가보안법 규정이 철폐됐을 때 조기 사퇴한 둥젠화(董建華) 전 행정장관의 재판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시위가 점점 확대되자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도 홍콩 사안에 개입하려는 듯한 인상을 피우고 있다. AFP통신은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8일부터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시진핑 국가주석과 홍콩 시위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국의 민주화 경험에 대한 관심도 이어졌다. 지난 14일 어머니 집회에서는 한국의 운동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둥어와 한국어로 불리웠다. 1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폭력적이고 갑작스러운 찬탈보다 권력자의 점진적이고 조용한 침입으로 자유가 박탈된 사례가 더 많았다”는 한국 대학생의 기고문을 실으며 한국의 관심을 전했다.

홍콩=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