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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려고 데리고 왔다"…국회 앞 개들과 '노숙 시위' 한 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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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일생으로 개들 구했지만/ 농장주 성화에 5t 트럭으로 서울행/ 활동가 “구출된 개들, 유기견 아니라고 지자체 도움도 못 받아”/ “시끄럽다”, “동물학대다” 불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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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국회의사당 앞 개농장 반대 시위 현장을 찾았다. 나진희 기자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개판이네 개판’ 그러더라고. 그래서 나도 웃었어.”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수십 년째 길거리 가로판매대를 운영 중인 60대 점주가 자기 뒤편의 개농장 반대 시위 현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의도 한복판에 개 짖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한 달 전 국회의사당 앞 왕복 8차선 도로 중앙에 자리한 이른 바 ‘교통섬’에 터를 잡은 개들이 내는 소리다. 당초 경남 양산의 한 개농장에서 구출된 개 65마리가 노숙을 하다 40여 마리는 운 좋게 새 주인을 찾아 떠났고, 20마리 정도가 남아 있는 상태다. 수차례 불법 점유로 인한 철거 명령이 떨어졌으나 이 개들을 데려 온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활동가들은 ‘개들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하라’는 다소 황당해 보이는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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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농장 반대 시위 현장. 나진희 기자


◆도로 한가운데에 수십 마리 개들이... “봉사자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것”

시위 현장은 철망으로 외부가 둘러쳐져 있어 외부인 출입이 제한돼 있었다. 신원을 밝히자 동물보호 활동가 ‘애니(Annie, 31)’가 잠겨있던 문을 열어주었다.

한낮 기온이 25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 햇빛을 가리기 위한 방수포, 천막 등이 나무와 기둥을 지지대 삼아 마구 쳐져 있었고, 그 아래엔 수십 개의 견사용 케이지, 의료용품, 숙식용 텐트, 개사료와 물 등이 빽빽했다. 애니는 “이 모든 것들은 봉사자들이 목숨 걸고 지켜내고 만들어낸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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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당직자가 밤을 새우는 원터치 텐트. 나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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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는 “이 아이는 국내에선 ‘대형 잡종견’이라며 입양이 잘 안되지만 미국 등에선 개성있는 외모로 인기가 무척 많다”고 했다. 나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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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롭게 낮잠을 즐기는 개. 나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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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된 개 중 가장 큰 몸집의 개. 겁이 많고 무척 순한 성격이다. 나진희 기자


개농장에서 식용으로 키웠던 개들이라 대부분 ‘근수가 나가는’ 대형견이었다. 끔찍했던 개농장을 탈출한 것만으로도 행복한 걸까. 개들은 마음껏 뛰어다닐 마당조차 없는데도 봉사자들과 장난을 치며 놀거나 그늘에 축 늘어져 한가롭게 낮잠을 잤다.

◆구사일생으로 개들 구했지만... 농장주 성화에 5t 트럭으로 서울행

이들이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한 건 지난달 10일 금요일 저녁이었다. 5t 윙트럭 한 대에 수십 마리의 개들을 꽉 채워 상경했다. 개들에겐 지옥이나 다름없던 양산의 개농장은 지난해 동물활동가들의 눈에 띄었다. 뜬장 하나에 큰 개가 몇 마리씩 욱여져 지냈고 건강 상태도 참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진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며 실태가 알려졌지만 쉽사리 개들을 구출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제일 큰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더욱이 개농장은 토지 용도변경에 따라 곧 폐쇄될 수밖에 없어 개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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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개농장의 뜬장에 대형견들이 갇혀있는 모습. 나진희 기자


그때 개들을 매입하겠다는 독지가가 나타났다. 김기왕 부산대(한의학 전문대학원) 교수(51)가 그 주인공이다. 김 교수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어느 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처참한 개농장 사진을 봤다. 내가 살던 양산에 있는 곳이었다”며 “사진을 본 저녁에 바로 현장에 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돌아왔다. 다음날 오전에 다시 그곳에 갔을 때 농장주와 마주쳤다. 개들을 살려야겠는데 농장주와 싸울 수도 없고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도 없고. 어쩌겠나. (개들을) 사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애니는 “매입이 결정됐을 땐 수십 마리 개들을 태울 차조차 마련 못 한 상태였다. 하지만 농장주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일단 산다는 사람이 나왔으니까. ‘개들한테 더는 밥조차 줄 필요도 없으니 빨리 개들 빼. 내 개 아니다’라는 식이었다. 기한은 5월10일까지였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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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구출된 개들, 유기견 아니라고 지자체 도움도 못 받아”

지자체나 다른 사설 보호소의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양산시는 개들에게 소유주가 있다는 이유로 보호를 거부했다. 애니는 “개농장에서 개를 구출하면 금전 거래가 있든 없든 꼭 소유권자가 생긴다. 그런 개들은 유기견이 받는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을 수 없다”고 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운영하는 보호소도 당시 대형견 수십마리를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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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기 힘든 이유도 있다. 애니는 “서울은 지역적 접근성이 좋아 도움의 손길이 많다”며 “경기 외곽 등으로 거처를 옮기면 활동가 개인이 부지 임대료, 관리자 임금, 사료 및 의료 비용 등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 최소 수천만원이고 봉사자들이 그곳까지 오시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봉사자를 모집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약 350명이 참여하고 있다. 애니는 “후원금 사용 내역은 오픈채팅방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봉사자 한 분이 블로그도 만들어 이를 기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매일 10~15명의 봉사자가 교통섬을 찾고, 2~3명이 상주하며, 최소 1명이 야간 당직을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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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정(오른쪽)씨와 봉사자가 개들을 돌보고 있다. 이우주 기자


대학생 구현정(20)씨는 “그동안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도 집에서 너무 멀어 못 갔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서 이러고 있으니 ‘애들 보러 한 번 가봐야지’하고 왔다가 하던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거의 매일 오게 됐다”며 “사람이 없을 때 혹시라도 개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자리를 뜰 수가 없다. 개들에게 정이 들어 입양을 갈 때조차 아쉽기도 하고 잘됐다는 마음에 눈물이 나오는데 만약 아이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정말 힘들 것 같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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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도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이우주 기자


◆“시끄럽다”, “동물학대다” 불만도

계속된 시위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시위 장소 근처의 한 호텔은 “창문을 열면 시위 현장이 보이고 새벽까지 개가 짖어대니 객실료를 전액 취소해달라거나 할인해달라는 요구도 많다. 이러한 항의가 하루 최소 3~5건 수준”이라며 “피해가 막심하다. (활동가들이)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으니 즉시 철수했으면 좋겠는데 구청이든 서울시든 경찰이든 모두 사태 처리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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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호텔은 개농장 반대 시위로 큰 손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우주 기자


건너편의 한 은행 직원은 “원래는 5월 말까지 철거하기로 된 거로 들었는데 아직 저러고 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단체로 짖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무실에서도 개들 우는 소리가 들려서 민원도 우리 쪽에서만 2건 정도 들어간 거로 안다”며 “저건 동물보호가 아니라 학대 같다. 개도 좀 자유롭게 놀 수 있게 공기 좋은 곳에 데려놔야지 왜 개들을 도로 가운데에 갖다 묶어놨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죽이지 않으려고 데려왔다”... 제도적 장치 요구

영등포구청으로부터 벌써 2차례 계고장이 날아들었지만 활동가들은 온몸으로 철거를 막아서고 있다. 애니는 “저희도 주변에 너무 죄송하다. 어떻게든 처리를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며 “얘네를 데리고 어디로 가겠나. 개농장을 허가해준 정부나 지자체도 개들을 책임져주지 않으면서 나가라고만 하는 건 다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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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페라리’를 돌보고 있다. 이우주 기자


15년간 해외에 거주했던 애니의 주선으로 다행히 대부분의 개가 해외 입양처를 구했다. 다만 비행기 한 대에 1~2마리 정도밖에 태울 수 없고 대형견 같은 경우 한 마리당 300만원가량 운송비가 들기 때문에 남은 개들까지 모두 입양되려면 최소 석 달이 소요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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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이 바라는 건 구조된 개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다. 애니는 “개들을 살리려고 이곳으로 데리고 나왔다. 물론 지금 상황이 이상적이지 않다는 건 너무 잘 안다”며 “개농장에서 개들을 학대하고 도살해도 처벌이 하나도 안 된다. 구조한 개들이 갈 곳이 없어서 결국엔 도살되는 걸 내버려둬야 하는가. 구조된 개들이 갈 수 있는 보호시설이나, 최소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라도 정부에서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사진=이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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