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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회사 더 다녀주세요" 퇴직정년 없애는 일본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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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27)
중앙일보

우리나라의 인구감소가 예상보다 빨리 시작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인구 문제는 고용과 성장에도 악재로 여겨지고 있다. 일본은 이미 인력이 부족해 여성 고용, 시니어 고용 등 다방면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텅 빈 놀이터(왼쪽)와 노인들로 붐비는 한 공원(오른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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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생애현역사회는 가까운 장래의 일반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생애현역사회란 연령에 관계없이 능력과 의욕이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100세 시대에 연금은 충분하지 않고, 노후에도 일하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다. 일하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고령자도 늘어나고 있다.

각종 통계를 봐도 최근 고령자의 취업률이 상승하고 있다. 현재 고령자의 80% 이상이 70세 이후에도 일하고 싶어한다. 고령자가 일하면 국가와 개인에게 도움이 된다. 일하는 고령자일수록 건강한 사람이 많고, 개인적인 의료비 부담을 덜 수 있고,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

일본 정부는 2019년 5월 미래투자회의에서 일하고 싶은 고령자가 기업에서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침을 제시했다. 고령인력을 계속 고용하고 다른 기업으로 재취업 알선 등 7가지 메뉴를 마련할 것을 노력 의무화하기로 했다. 일하고 싶은 고령자는 보다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다.

일하는 고령자가 늘어나면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의료, 간병, 연금 등 사회보장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노동정책심의회를 거쳐 고용 기간을 70세로 올린다는 내용을 담은 고연령자고용안정법 개정안을 내년 통상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고령자에게 적합한 단시간, 재택근무 등 유연한 일방식을 폭넓게 검토할 계획이다. 고령자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자체와 기업이 제휴한 협의회를 전국에 설치하고, 고령자의 채용 경험이 없는 기업에 지원금을 후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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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와전기제작소 최고령 근무자인 사와다(78)씨. 하루 6시간 정도 근무한다. 회사는 건강 상태와 금전상황 등을 고려해 직원이 원하는 시간대로 근무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택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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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일본 정부는 ①65세까지 재고용 ②65세까지 정년연장 ③정년폐지라는 3가지 방법으로 기업에서 고령자 고용을 의무화했다. 대부분의 기업은 일하기를 희망하는 고령자를 65세까지 재고용하고 있지만, 65세로 정년을 늘리거나 정년을 폐지한 기업도 있다. 최근 생애현역사회를 목표를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2018년 고령자 고용상황 자료를 보면, 대부분의 회사(78%)는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계속고용제도는 정년 후의 직원을 재고용하여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관리직에서 벗어나 급여도 대폭 줄어든다. 정년을 65세로 인상한 기업은 16.7%, 정년제를 폐지한 기업은 2.7%다. 66세 이상 일할 수 있는 기업은 30.5%, 70세 이상 일할 수 있는 기업은 29.4%다. 지난해보다 4%가 늘었다.

정년제를 폐지한 기업은 2.7%나 된다. 특히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2007년 65세 이상 정년이 8.6%, 정년폐지는 1.9%였지만 10년 만에 약 2배로 늘어났다. 기업이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이유는 인력 부족 문제 때문이다.

최근 경기가 호전되고 고도경제성장기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2018년 3월 취업자 수는 6620만명으로 21년 만에 최대수준이었다. 인구는 줄고 있지만 일하는 사람 수는 늘고 있다. 2013년 이후 아베 정권이 추진한 정책의 효과도 있다. 아베 내각은 ‘일억총활약’과 ‘인생 100년 시대’를 정책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고령자도 더 오래 일해달라는 방침이었다. 정년을 넘어 계속 일할 수 있는 고령자가 확실히 늘고 있다.

앞으로 경기가 본격적으로 좋아지면 인력 부족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있지만, 일본 국민은 이민에 대한 거부반응이 강해서 아베 정권은 이민정책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일본의 고용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시니어 인력은 노동력 부족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인구의 약 30%가 60세 이상 시니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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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부 신용금고 아라이 지점장(67·오른쪽)이 직원과 대화하고 있다. 아라이 지점장은 정년 나이가 지난 후에도 현역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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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시니어 인력은 계속 늘어난다. 시니어 소비층이 늘어나는 시대에 기업은 시니어의 욕구를 파악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시니어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만으로 조직을 구성해서는 어렵다. 조직에 시니어 인력이 없으면 히트상품을 개발하기 어렵고 시니어를 활용하지 못하면 생존하기도 어렵다. 시니어의 가치를 아는 기업은 이미 그런 인구 흐름을 간파하고 있다.

리쿠르트 워크스 연구소장 오오쿠보 유키오(大久保幸夫)씨는 기업에서 정년 전후의 시니어 인력을 활용하면 유능한 인재확보 이외에 많은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시니어를 채용하면 외부의 새로운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얻고, 직원의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시니어가 회사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은 젊은 세대에게 미래의 좋은 롤모델이 되고, 조직 분위기가 활성화된다.

이러한 회사경영 방식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기업가치가 올라간다. 결국 시니어 채용이 외부에서 평가되는 상징적인 지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현재 많은 일본기업은 심각한 인력 부족 상황에서 연령에 관계없이 시니어 인재가 계속 일하기를 바라고 있다. 아예 정년을 폐지하려는 기업도 조금씩 늘고 있다.

많은 시니어는 노후에도 경험과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원한다. 숙련기술을 가진 시니어 인재를 정년에 도달했다고 은퇴시키는 것은 노동력 상실과 같다. 정년으로 인해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면 개인에게 가혹하고 국가에 큰 손실이다. 그래서 정년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흔히 정년제를 폐지한다면 언제까지나 회사에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년제 폐지가 노동자에게 무조건 환영할 일은 아니다.

정년제가 폐지되면 회사와 직원의 관계가 크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 연공형 인사제도와 임금체계에서는 정년을 폐지하기 어렵다. 업무성과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는 임금체계로 바꾸지 않으면 고령자일수록 인건비가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다. 당연히 평생 안정된 직장을 보장하는 일본형 고용제도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일이 없어져도 배치전환 등으로 계속 남아 일할 수 있는 인력운용 방식도 통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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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2019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통합모집 행사에 참가한 어르신이 취업조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노인 빈곤문제 해소, 인재 활용, 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능력 있는 시니어가 나이에 관계없이 일하도록 기회를 열어둘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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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금까지 일하는 기업을 선택하는 것은 취직(就職)보다 취사(就社)에 가까웠다. 즉 회사에 들어오면 맡은 직무와 일하는 장소는 모두 회사에 맡겼다. 이러한 취사 의식을 갖고 있으면 언제까지도 일할 수 있는 ‘정년 없는’ 회사에 적응할 수 없다. 회사는 직원의 전문성과 그 성과를 바탕으로 직무를 배분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년제를 폐지하는 기업은 먼저 직원의 직무를 명확하게 설정한 직무기술서를 활용하고 있다. 직무에 대한 성과를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어야 임금을 지급해도 문제가 없다. 이때 연령은 전혀 관계가 없어진다. 다시 말해 정년이 폐지되면 안정된 종신고용은 유지될 수 없다. 기업의 직원은 더욱 전문성과 직무능력을 키워야 한다. 회사에서 전문분야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직무가 없어지면 해고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해고요건이 엄격한 법률을 바꾸지 않으면 정년제를 폐지하는 기업은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장래 일본 정부는 정년제를 폐지하는 기업에 해고규정을 완화하는 조치를 검토할지도 모른다. 정년제가 없는 회사에서 직원의 전문성이 필요 없어 해고되어도 비관할 일은 아니다. 그 직무의 전문성이 필요한 회사로 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장래에 노동인구가 본격적으로 감소할 때 확고한 전문능력이 있다면 쉽게 일을 찾을 수 있는 시대로 바뀔지도 모른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능력이 뛰어나다면 더 좋은 근로조건을 제시하는 회사로 자유롭게 전직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년제 폐지는 연공서열형 인사제도, 종신고용제도 등 일본식 고용 관행이 붕괴하는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형종 한국금융교육원 생애설계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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