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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핫한 ‘화폐’···지금도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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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검색창에 ‘페미’, ‘난민’, ‘동성애’ 같은 몇몇 키워드를 순서대로 입력했다. 각 키워드마다 혐오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자극적인 제목이 붙은 영상들은 유독 조회수가 높았다. ‘빨갱이’를 검색했다. ‘대통령이 간첩’이라는 허무맹랑한 가짜뉴스부터 입에 담지 못할 지역 비하 발언을 담은 영상이 검색됐다. 온라인은 혐오로 가득하다.

인터넷 방송에 뛰어든 사람들이 혐오를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조회 수는 고스란히 채널 개설자의 수익으로 돌아간다. 평범한 콘텐츠도 혐오를 입히면 잘 팔리는 상품이 된다. 혐오 비즈니스는 시장에서 하나의 수익 모델로 안착했다. 혐오는 어떻게 온라인 시장을 장악했을까. 그간 해당 주제와 관련한 연구를 해온 사회비평가 박권일씨(43)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6월 10일 서울 마포구의 서강대에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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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비평가 박권일/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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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덕분에 보통사람도 이른바 ‘디지털 셀렙(유명인)’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예전에는 연예인과 정치인, 엘리트와 같은 특정 직업과 계층만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통사람도 1인 방송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 유명해질 수 있다. 물론 보통사람은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 주목받지 못했던 일반시민이 소셜미디어(SNS)나 1인 방송을 한다고 해서 ‘디지털 셀렙’이 되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될 확률은 0.001%에 가깝다. 그럼에도 유튜버 성공사례가 부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SNS나 1인 방송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누구나 관심을 받을 수는 있지만 모두가 관심을 받기는 어렵다는 건가.

“그렇다. 관심받을 수 있는 집단은 일부다. 이른바 ‘표현대중’이 여기에 속한다. 표현대중은 SNS와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 정보를 능동적으로 생산하거나 유통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표현대중이라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관심은 한정된 자원이다. 더구나 SNS 특성상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관심은 소수에게 몰리게 돼 있다. 요컨대 표현대중 중에서도 출중한 외모와 같은 ‘매력자본’이 있는 이들이 관심을 독식하는 구조다. 이런 사람들은 카메라 켜고 책만 읽어도 시청자가 몰린다. 애초에 관심받던 사람들이 유튜브나 SNS를 하면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얘기다. 반대로 특별한 매력자본이 없는 사람들은 더 철저히 소외된다. 매력자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노력만으로 얻기 힘들다. 유튜브나 SNS가 평등한 기회의 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불평등한 시장이다.”

-아주 일부만 ‘셀렙’이 될 수 있다는 건데, SNS와 유튜브에는 여전히 사람이 몰린다.

“그래서 탈이 생긴다. 이미 각 분야에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시장을 선점했다. 틈새시장을 찾아야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때 관심이 ‘고픈’ 사람들이 택하는 게 혐오 콘텐츠다.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는 늘 수요가 있다. 게다가 혐오는 가장 적은 자원을 투입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인할 수 있는 콘텐츠다. 이주노동자와 이슬람, 성소수자, 여성처럼 자신들이 판단했을 때 밟아도 될 만한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어서 관심을 얻는다. 혐오는 재능을 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투입 대비 산출 효과가 높기 때문에 별도의 규제가 없는 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혐오하면서까지 관심을 받으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목적은 관심 그 자체다. 일간베스트(극우성향 커뮤니티, 이하 일베) 회원들이 벌인 혐오행각과 다르지 않다. 일베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일베의 각종 혐오행각을 정치적인 이유와 결부시켜 해석했다. 국정원 주도 아래 극우세력 확산을 위한 조직적인 행동으로 봤다. 하지만 일부 댓글공작 세력을 제외하면 다수는 순수하게 관심을 받기 위해 여성·진보 혐오 담론을 생산하고 유통했다. 과거에는 정치적 메시지를 퍼뜨리기 위해 관심을 추구했다면, 지금은 관심을 받기 위해 정치적 메시지를 수단으로 삼게 된 거다. 진보진영을 공격하고 세월호를 조롱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진보를 공격하는 것이 보수를 공격하는 것보다 더 많은 반응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를 통해 피드백과 관심을 즐기는 게 전부인가.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혐오와 유튜브에서 벌어지는 혐오는 결이 다르다. 과거 일베는 ‘관심종자’들의 놀이터와 같았다. 일베 회원들이 혐오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관심뿐이었다. 혐오행각으로 트래픽이 몰리면 서버 운영자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유튜브는 혐오를 갖고 놀면 당사자에게 돈을 준다. 누군가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할 중요한 이유가 추가된 것이다. 혐오가 ‘핫한’ 형태의 화폐로 유통되면서 혐오 콘텐츠의 강도는 갈수록 세지고 있다. 이른바 ‘혐오 비즈니스’가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뉴미디어가 혐오 확산의 기폭제가 된 셈이다.”

-혐오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가 셀렙을 꿈꾸는 개인뿐인가.

“혐오 콘텐츠를 특정 의도를 갖고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집단이 있다. 대표적인 게 극우 개신교 단체다. 이들은 주로 동성애 혐오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시킨다. 보는 사람들이 공포를 느낄 만큼 자극적인 내용으로 구성한다. 이들의 혐오 콘텐츠 유통은 포교활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동성애 혐오를 기반으로 사업 모델을 만들어 수익을 낸다. 생산하는 과정이나 결과물의 유통과정이 상당히 체계적이다. 혐오를 팔아 돈을 버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활동들이 우리 사회 여론에 미치는 영향들이 우려된다.”

-혐오의 확산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이미 혐오는 우리 사회의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됐다. 누구나 혐오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숨쉬고 있다. 혐오 콘텐츠에 쉽게 노출되는 만큼 혐오에 대한 감각도 무뎌진다. 혐오 비즈니스에 대한 문제의식도 갈수록 옅어진다. 자연스러운 하나의 문화처럼 받아들인다. 정부와 사회에서 혐오 비즈니스를 경계하고 비판하면 자연스럽게 음성화되고 움츠러들 텐데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대중이 용인하는 혐오의 수준이 높아지면 혐오는 양지로 나온다. 곧 혐오 콘텐츠들은 연성화를 거쳐 지금보다 ‘세련된’ 모습을 갖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혐오는 지금보다 더 공적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유통될 것이다. 그때는 누구도 혐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을 것이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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