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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엄습하는 국회의 '물갈이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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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국회에는 ‘물갈이 공포’가 엄습한다. 당 지도부가 특정 지역구에 현역 의원 대신 정치신인을 전략적으로 공천하는 것을 정치권에서는 ‘물갈이’라 부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도 이 공포는 어김없이 여야 정치권을 찾아왔다. 다만 시기가 예년보다 빨랐다. 여당인 민주당이 총선을 1년 앞두고 공천 룰을 서둘러 발표했다. 이 발표가 여야 관계 없이 ‘물갈이 공포’의 시기를 앞당겼다. 자유한국당 역시 공천 룰 마련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6월 국회 정상화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한국당에는 난데없이 ‘물갈이’ 공포가 닥쳤다. 공천 룰을 만들고 있는 신상진 한국당 신(新)정치혁신특별위원장이 6월 6일 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물갈이 폭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현역 의원들이 (탄핵)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면서 “그래서 현역의 물갈이 폭도 크게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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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황교안 대표(앞줄 왼쪽부터)가 5월 31일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진행된 국회의원 당협위원장 연찬회에서 단체촬영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함께 행사장으로 걸어가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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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성향 정당 창당 가능성도

한국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국민 눈높이에 맞춰 공천 물갈이가 진행되어야 하고, 탄핵 책임 의원들의 물갈이도 올바른 발언”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물갈이 폭이 크다’는 신 위원장의 말은 황교안 대표의 의중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이 한국당 지도부에 속하는 만큼 지도부의 뜻에 발 맞춰야 한다는 것이 이 의원의 주장이다.

하지만 신 위원장의 발언을 바라보는 당내의 시선은 뜨겁다. 친박 성향의 한 의원 측은 “신 위원장은 지금까지 비주류이긴 했지만 4선까지 한 현역 의원”이라면서 “황 대표의 의중을 꿰뚫고 있기에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 측은 “신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황 대표가 공개적으로 ‘잘못됐다’고 발언하지 않은 것을 보면 모든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에서 물갈이 폭이 의외로 클 수 있다는 얘기다.

신 위원장의 발언 이후 특히 친박 의원들은 물갈이 공포에 몸을 움츠렸다. 이미 이런저런 이유로 ‘김병준 비상대책위’ 시절부터 당협위원장 자리를 ‘빼앗긴’ 의원들의 불만은 커졌다. 친박의 대표적인 인사인 홍문종 의원은 대한애국당행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지난 1월 비대위는 홍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의정부을 당협위원장에 이형섭 변호사를 임명했다. 홍 의원은 지난 2월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미 당을 떠날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유영하 변호사가 전당대회에 출마한 황교안 후보가 ‘친박’이 아니라고 말한 직후다. 친박의 한 관계자는 “조원진 의원(대한애국당 대표)이 유영하 변호사와 홍 의원을 대한애국당에서 함께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6월 13일 같은 불교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미 제가 탈당을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라면서 새로운 보수우익 정당에 “10월에서 12월이 되면 40~50명까지 동조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의 발언은 당내에서 2000년 16대 총선 때 한나라당 상황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김윤환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면서 김윤환 의원이 공천 배제 의원들을 모아 민국당을 창당했다. 당시 대통령 후보감으로 인기가 가장 높았던 이 총재 대신 황 대표를, 실세 김 의원 대신 홍 의원을 대입하면 그림이 나온다는 것이다. 때문에 내년 총선의 물갈이 폭이 커질 경우 친박 성향의 정당이 창당할 가능성도 존재하게 되는 셈이다. 한국당의 한 인사는 “그때 김윤환 의원이 실패했던 것처럼 내년 총선에서 친박 성향의 정당이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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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상진 특위위원장(오른쪽 첫 번째)이 모두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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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TK) 의원들 사이에도 ‘물갈이’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일간지인 <매일신문>은 6월 10일 1면 톱에 ‘한국당 물갈이 TK 또 희생되나’라는 기사를 올렸다. 매번 총선 때마다 TK지역에서 대거 물갈이가 이뤄지면서 지역 정치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TK가 ‘초선의원 양성소’가 됐다는 중진 의원들의 말도 인용했다. 한 TK 중진의원 측은 “매번 총선을 앞두고 TK지역 의원들이 제기했던 문제”라고 말했다. 유독 TK만 물갈이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친박과 TK라는 특성상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싼 거취도 한국당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한 한국당 의원은 “청와대와 여권에서 보수진영의 갈등을 이용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을 총선 전에 사면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친박 내부의 많은 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 역시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발언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물갈이 대상이 친박 의원들에게 집중될 경우 이들 의원에게는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현역 프리미엄 커져 안심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지난 5월 초 원내대표 경선 때 ‘물갈이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원내대표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정견발표에서는 이인영 원내대표와 노웅래 후보가 ‘공정한 공천’을 선거공약으로 언급했을 정도다. 7선의 이해찬 대표 스스로가 내년 총선에 불출마할 것을 미리 선언하면서 다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 대표가 공천 물갈이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때문에 이인영 원내대표가 당선된 데에는 다선 비주류 의원들의 표가 한몫했다는 평가가 흘러나왔다. 한 민주당 의원은 당시 원내대표 후보들의 ‘공정한 공천’ 발언에 대해 “중진 의원들 사이에 물갈이에 대한 우려가 원내대표 투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5월 말 공천 룰이 발표되면서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는 다소 안심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현역 의원의 경우 경선을 원칙으로 하고, 전략공천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 확고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선에서 50% 권리당원 투표가 반영되는 데다, 권리당원 모집을 7월 말까지로 명시하면서 현역 의원들의 프리미엄이 더욱 커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20대 총선 결과 3선 의원이 모두 47명이었고, 4선 의원이 모두 34명이었다. 5선 이상은 17명이었다. 이들 다선 의원 중 3명이 20대 국회 중 배지를 내려놓았다. 내년 21대 총선에 불출마 의사를 비친 의원을 제외한 다선 의원은 자신의 의지와 관련 없이 물갈이의 위험 앞에 놓여 있다. 때문에 지도부의 공천 룰 마련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당의 한 의원 측은 “물갈이를 한다고 여의도 정치가 개선된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국회의 정치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물갈이 공천은 정치개혁이 아니라 총선 승리의 수단으로만 사용될 뿐”이라고 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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