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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면 기억력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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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박형주·정수근의 기억실험실

④운동과 기억

뇌는 신체에너지 4분의 1 사용

몸과 뇌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활동량 적은 학생들 성적 더 낮아

운동은 노화 따른 기억력 감퇴 늦춰

운동할 때 근육세포에서 나온 호르몬

뇌로 전달돼 인지기능에 도움 줘

달리기 등 유산소운동 효과 높아

춤처럼 몸·머리 같이 쓰면 더 좋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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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박사학위를 받은 뒤 박사후 연구원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살게 되었을 때였다. 똑같이 힘든 일과를 보냈지만 지도교수를 비롯해 동료 연구자들의 연구활동은 항상 활력이 넘쳤다. 특히 중국인 지도교수는 나와 체격이 비슷한 동양인이었는데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연구실을 매달 오가면서도 휴일 없이 아침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살인적인 스케줄을 수십년 소화해온 상태였다. 그럼에도 언제나 정확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신선하고 대범한 아이디어를 제시해 20~30대 젊은 연구원들도 감탄하곤 했다.

그는 어떻게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리 왕성한 연구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곳의 연구자들은 나와 무엇이 다르기에 피곤한 일상 속에서도 총기가 넘쳤을까? 6년여 동안 함께 지내며 관찰한 결과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종류와 양은 달랐지만 다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동해야 공부 더 잘한다

우리 뇌는 신체 에너지의 약 4분의 1을 쓴다고 하니,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 당연히 학습과 기억을 비롯한 인지기능도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신체와 뇌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이를 뛰어넘는 더 밀접한 연결망으로 이어져 있다. 2007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헤더 어윈 박사 연구팀과 2009년 하버드 의과대학 캐런 해커 박사 연구팀은 각각 일리노이와 매사추세츠 지역의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동량과 학업성취도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는 연구를 수행했다. 두 연구 결과, 활동량이 적은 학생들이 시험과 학업성취도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2003년 영국 런던대학의 마이클 워즈워스 교수 연구팀은 36살 성인 약 1900명을 대상으로 신체활동과 인지능력의 상관관계를 17년 동안 추적 조사했다. 이들이 43살과 53살이 되었을 때 기억력과 운동량을 조사한 결과, 노화에 따른 기억력 감퇴가 주 2회 이상 꾸준히 운동한 성인들에게서는 그렇지 않은 성인들에 비해 뚜렷하게 느리게 나타났다.

흥미롭게도 36살이나 43살 이후에 운동을 시작하더라도 그 전에 운동을 해오다가 멈춘 성인들보다 53살에 관찰되는 기억력 저하 방지 효과가 두드러졌다. 이는 뇌기능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전두엽 구조를 비교 분석했을 때 꾸준히 운동한 40~50대 중년들에게서 노화에 따른 회색질 감소 현상이 낮게 나타난다는 다른 연구결과와도 비슷한 발견이다. 종합하면, 지속적인 운동은 나이가 들어서도 인지기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운동은 여러 기억 중에서도 특정 기억의 향상과 더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꾸준한 유산소운동은 전두엽 및 측두엽에 의해 조절되는 기억의 증가와 연관되어 있으며, 실제로 운동에 의한 뇌 부피 증가가 해마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소크연구소의 프레드 게이지 박사 연구팀이 수행한 일련의 연구들에 따르면, 트레드밀(러닝머신)에서 지속적으로 달리게 한 쥐에서는 해마와 전전두엽 부위의 부피가 증가하면서 이들 뇌 부위에 의해 조절되는 ‘외재기억’(기억의 한 종류로서 사물, 사건, 공간의 특징과 관계성 등에 관한 기억) 또한 향상되었다고 한다.

왜 해마를 통해 저장되는 외재기억(‘해마 의존적 기억’)이 운동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지는 아직까지 확실하지 않지만, 분자 수준의 메커니즘 연구가 진전된다면 운동에 의한 기억 향상의 실마리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운동을 하면 신경세포와 혈관 생성, 신경전달물질 양의 변화, 신경영양인자 발현 증가 등을 통해 다양한 뇌 구조와 기능이 변화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운동과 뇌를 잇는 자세한 분자 메커니즘의 정체는 많이 연구되지 않은 상태이다.

호르몬 통해 신체와 뇌 대화

그런데 최근 2016년 미 국립보건원(NIH) 산하 노화연구소(NIA)의 반 프라그 박사 연구팀은 쥐를 지속적으로 운동시킬 때 근육세포에서 분비되는 물질들을 분석해 혹시 이들 중에서 뇌로 직접 전달되는 것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 결과 ‘카텝신 비’(cathepsin B)라는 단백질이 뇌로 직접 전달되며, 이 단백질이 뇌에서 신경영양인자 발현 증가와 새로운 신경세포 생성을 유도하는 현상이 발견됐다. 이는 운동에 의해 활성화된 근육세포에서 분비되는 단백질들이 호르몬처럼 뇌로 전달되어 직접 인지기능을 조절할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한 것이다.

근육에서 분비되는 특정 단백질에 의한 기억 조절은 2019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대학과 캐나다 퀸스대학 등의 국제 공동연구팀이 생쥐 모델을 활용해 수행한 공동연구에서도 다시 확인됐다. 그들은 근육세포에서 분비되는 ‘이리신’(irisin)이라는 단백질도 역시 뇌로 직접 전달되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실험용 생쥐의 손상된 기억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을 통해 보고했다. 즉,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 생성된 근육 유래 호르몬들은 정상 뇌와 질환 뇌 모두의 기억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뼈의 조골세포에서도 기억을 조절하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운동할 때 근육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일종인 ‘인터류킨6’(IL-6)은 조골세포에 도달하면서 다시 ‘오스테오칼신’(osteocalcin)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유도한다. 이어 뇌로 전달된 오스테오칼신 호르몬은 해마 안에서 신경영양인자의 발현을 증가시킴으로써 ‘해마 의존적 기억’의 향상을 유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프랑스 파리 제5대학의 프랑크 우리 박사 연구팀은 생쥐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오스테오칼신의 생체 내 농도가 노화 과정에서 감소하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면 노화에 의해 저하된 해마 의존적 기억을 유의미하게 회복시킬 수 있음을 2019년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이처럼 운동할 때 신체 내 장기는 어느 하나 쉬는 것 없이 계속 움직이면서 호르몬 등을 통해 뇌와 대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운동과 인지기능의 관계에 관한 이런 연구결과들은 대부분 동물실험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도 운동할 때 근육이나 뼈 등에서 분비되는 인자들이 뇌로 전달되어 기억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있을까? 인간과 동물이 신체와 뇌 기능에서 서로 비슷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으므로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로, 근육량과 인지기능의 상관관계를 보고한 연구들을 들 수 있다. 2015년 영국 킹스칼리지대학의 팀 스펙터 교수 연구팀은 쌍둥이 여성들을 10년 동안 추적 조사하여 각각의 다리 근력(근육량에 비례)과 인지능력, 두뇌 부피 등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쌍둥이 둘 중에서 근력이 좋은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인지능력이 월등했고 두뇌 부피도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근육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양이 근육량에 비례할 것이라고 본다면, 인간의 경우에도 운동에 의해 분비되는 말초장기 유래 호르몬이 뇌로 전달되어 인지기능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높다.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을 느끼는가? 그럼 머리만 짚지 말고 당신의 허벅지 둘레도 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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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두번 운동이 치매 늦춘다

그럼 운동요법을 통해 노화 및 질환성 기억 저하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어떤 운동방법으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몇달 이상의 지속적인 유산소운동(달리기, 자전거 타기, 수영 등)에서 인지기능 향상 효과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한편, 독일 헬름홀츠 퇴행성뇌질환센터의 노트거 뮐러 박사 연구팀은 유산소운동과 시각·청각 자극이 동시에 병행되는 댄스 트레이닝이 노화성 기억 저하를 늦추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음을 2018년 학술지 <플로스 원>에 보고하기도 했다. 이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운동과 인지 자극을 동시에 병행하면 기억 향상이 극대화된다는 발견에 착안한 것으로, 꼭 춤이 아니더라도 몸과 머리를 함께 쓰는 운동이 기억 향상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의학 분야에서는 2018년 미국 메이오클리닉의 로널드 피터슨 박사 등이 미국신경학회가 의사들에게 권고하는 내용을 <신경학> 학술지에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논문에서는 치매가 되기 전 단계인 ‘경도 인지 장애’(MCI) 환자들에게 기억력과 사고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치료법 중 하나로 주 2회 운동을 처방하는 방법을 명시적으로 제안했다. 경도 인지 장애는 정상인에게도 노화 과정에서 생길 수 있으며, 경도 인지 장애를 앓는 사람은 정상 노화인보다 기억, 언어, 판단 기능이 더욱 흐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주 두 번의 유산소운동은 경도 인지 장애가 치매로 악화되는 속도를 유의미하게 감소시킬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되어 데카르트 등에 의해 선언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라는 명제는 이제 근현대 신경과학을 통해 ‘육체가 정신을 어떻게 조절하는가’로 바뀌어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뇌도 신체의 다른 기관들과 같은 유기물 덩어리이므로 우리 몸과 뇌가 같은 운명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박사후 연수과정을 끝내갈 때쯤, 지도교수는 예전과 달리 부쩍 멍한 모습을 보이면서 함께 토의를 하거나 논문을 작성할 때 쉬었다 하자는 말을 자주 했다. 그때 그는 이미 영구적으로 중국에 돌아가 머물기로 결정한 상태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기억력이 너무 떨어져서 이제는 오랜 친구가 발표한 논문도, 심지어 그 친구 이름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정상적인 학문 활동이 불가능한 기억력 감퇴를 아쉬워했다.

지금 나는 옛 지도교수에게는 한창일 나이인 40대인데도 벌써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머리도 잘 안 따라주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난생처음 운동으로 몸을 관리하자고 다짐했다. 기억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내 머리의 건강을 오래 유지하려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신경생물학)



박형주·정수근의 기억 실험실: 기억은 뇌 어디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 기억은 어떻게 저장되고 쇠락하고 변형될까? 인류가 기억에 관해 호기심을 가진 것은 오래됐지만, 기억의 실체가 과학적으로 규명되기 시작한 건 최근 뇌과학이 발전하면서부터다. 정부 산하 뇌 분야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뇌연구원의 박형주·정수근 선임연구원이 뇌과학이 밝혀낸 기억의 비밀을 번갈아 들려준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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