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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Fi카페] 2년전 두 PD의 죽음이 가져온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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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남아공에서 사망한 故 박환성·김광일 PD

불합리한 韓 방송 제작 구조에 맞서 싸워

아까운 그들의 죽음, 방송업계 갑을 구조 변화에 '첫발'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2년전 여름, 독립PD 두 명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고속도로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촬영 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 발생했던 불의의 교통사고였습니다. PD 겸 스텝 겸 여러 일을 동시에 했던 그들은 늘 과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들은 독립PD이자 외주제작 PD로 살아왔던 고(故) 박환성 PD와 고(故) 김광일 P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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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광일(사진 왼쪽 영정)PD와 고 박환성(사진 오른쪽 영정) PD 사진. (사진=김유성 기자)


독립PD에 대한 뚜렷한 용어 정의는 없지만, 크게는 방송사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PD를 뜻합니다. 방송사들은 예능, 시사교양 프로그램 제작의 상당 부분을 외주(아웃소싱)로 돌리는데, 이런 일을 받아 직접 제작하는 이들이 독립PD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 PD들을 단순 방송 제작 업자들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저널리스트의 성격도 갖고 있는 독립PD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얘기를 논픽션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도 합니다. 분쟁지역 전문 취재 PD가 그 예이지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로 실은 KBS인간극장 내 알콩달콩한 노부부의 사연을 방송용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던 독립PD가 만든 다큐영화입니다. KBS인간극장 프로그램을 찍은 후 PD가 직접 가 영화로 제작했던 것이죠. 이처럼 독립PD들은 영상을 업(業)으로 많은 일을 합니다. VJ로도,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도, 방송사들의 파트너로도 일 합니다.

이들 PD들의 주요 고객은 방송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비교적 시장이 작은 우리나라에서 자체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로 생계를 이어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각자가 경쟁자가 돼 방송사들이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게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장 구조에, 수십년간 ‘절대갑’으로 행세해 온 방송사들의 불합리가 만나면서, 방송사와 독립PD들 간의 ‘갑을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이중 하나가 제작비 후려치기 관행입니다. 예컨대 3억원의 제작비가 드는 방송 콘텐츠를 1억5000만원으로 깎고, 저작권 등의 소유를 모두 방송사가 가져가는 것이지요. 모자란 제작비는 PD가 자체적으로 협찬을 받아와야 합니다. 고 박환성 PD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고치려했던 관행이 바로 ‘방송사들의 제작비 후려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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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야수의 방주’ 제작중이던 박환성 PD 생전 모습 (독립PD협회 제공)


인생은 아이러니일까요. ‘갑의 횡포’에 맞서 소송까지 준비했던 박 PD였지만, 갑과 계약했던 다큐멘터리 마무리 작업을 하러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그조차도 단단하게 굳어진 현실의 벽을 깨기 어려웠던 것이죠.

고 박 PD와 그의 동료였던 고 김광일 PD는 이런 와중에 2017년 7월 14일 사망했습니다. 갑과의 싸움에서 쌓였던 스트레스, 제작 강행군에 따른 피로가 그들을 더 지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숙소로 돌아오던 새벽녘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숨집니다.

두 PD의 아까운 죽음은 우리나라 방송 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들의 죽음을 페이스북에서 애도하면서, 방송제작업계에 만연된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 부처에서는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방송사들은 불합리한 제작 구조를 고치겠다고 전했습니다.

을로 있었던 독립PD들도 다시금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잊지말자는 외침이었습니다. 고 김광일 PD의 배우자는 직접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갔지만, 그들이 싸우던 현실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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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21일에 있었던 유족·한국독립PD협회 주최 남아공 사고현장 수습 방문단 기자회견 (사진=김유성 기자)


지난 13일부터는 자신의 남편과 고 박 PD의 마지막 모습을 재현한 독립영화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실제 활동 중인 배우들이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먼저는 간 남편에 대해 배우자가 그려낸 그리움이자, 기록입니다. 다음달 13일에는 고 박 PD와 김 PD의 2주기 추모 행사도 엽니다. ‘지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던 고 박 PD와 김 PD의 뜻을 기억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얘기입니다.

여전히 그들을 잊지않고 추모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죽어가면서 바꾸고자 했던 현실은 지금 어떨까요? 정부가 약속한대로, 방송사들이 다짐한대로, 방송업계내 만연됐던 갑을 구조는 청산됐을까요?

아쉽게도 여전히 방송 스텝들의 과도 노동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불거지고 있습니다. 열악한 제작비 구조도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PD들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방송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완고해 보이기만 했던 방송업계 카르텔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기득권 있는 의식있는 누군가의 노력, 넷플릭스·유튜브 등 새로운 플랫폼의 대중화가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영화감독이자, 제작비 걱정이 없을 명감독이지만, 그부터 앞장서 영상 제작업계내 과도노동을 줄였습니다. 한국에서도 강행군 없이도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예를 보여준 것이죠.

넷플릭스 등 새로운 해외 플랫폼도 대형 방송사 중심의 완고한 구조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특히 넷플릭스는 기존 방송사들이 시도조차 못했던 저작권에 대한 권리, 상영에 대한 권리까지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맞춰 제작비를 지급하는 것이지요. 물론 실력있는 제작자라는 전제가 있지만, ‘단가 후려치기’에 익숙했던 방송 업계에는 새로운 자극임에 틀림 없습니다.

해외 플랫폼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들 글로벌 서비스는 우리나라에 ‘글로벌 표준’이란 것을 제시했습니다. 과점 시장에 불어닥친 ‘때아닌 경쟁’에 방송사들이 당황하면서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은 ‘덤’입니다.

이처럼 조금씩 변화의 모습은 보이고 있습니다. 한류 열풍 속에 가려진 어두웠던 방송 제작 관행도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의 모습으로 한 걸음 나아간 것이죠.

고 박 PD와 고 PD의 10주기 때는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실력있는 젊은 PD들이 갑을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전세계를 누비고, 그들의 콘텐츠가 시장 가격에 따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기를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