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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영법이 아니다, 중요한 건 '생존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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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생존 수영 강습 직접 받아보니

조선일보

해양경찰청과 대한생존수영협회가 지난 8일 서울 뚝섬 야외수영장에서 연 생존 수영 프로그램에 참가한 기자가 교육을 받고 있다. 해경이 물에 빠진 사고자 역할을 맡은 기자에게 줄을 묶은 페트병을 던져 물 밖으로 끌어올리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서 헤엄치는 모습.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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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수영 가르친 게 도움이 됐어." 지난달 29일 헝가리 유람선 참사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윤모(32)씨가 사고 직후 한국에 있는 아버지와 통화하며 한 말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영이 목숨을 구했다.

헝가리 참사 이후 '생존 수영'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생존 수영이란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물에 떠서 견디는 시간을 늘리는 수영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수영장에서 배우는 수영은 '영법 수영'이라고 한다. 영법 수영이 빠르게 헤엄치는 게 목적이라면, 생존 수영은 초보자라도 단시간에 물에서 뜰 수 있게 하고 오래 버티게 하는 것이 목표. 수영 전문가들은 "영법 수영보다 생명과 직결되는 생존 수영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도입됐다. 초반엔 3~4학년 대상이었지만 범위를 늘려 내년엔 초등학생 전 학년이 생존 수영을 배우게 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초등학교 2~6학년 학생 225만3682명 중 121만7065명이 생존 수영 교육을 받는다. 54%에 이르는 수치다.

지난 8일 서울 뚝섬 야외 수영장에서 해양경찰청과 대한생존수영협회가 연 '생존 수영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기자는 1년 전 동네 수영장에서 3개월간 수영을 배웠다. 자유형·배영은 할 수 있고, 평영은 발차기까지 배웠다. 25m 레인을 한 바퀴 돌지 못하는 수영 초보다.

일상복 입고 첨벙, 공포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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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제대로 보고 가셔야죠. 부딪혀요!" 해양경찰청 안전 요원이 소리쳤지만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생존 수영 프로그램은 두 발을 바닥에서 뗀 상태에서 진행됐다. 교육받은 수영장 깊이는 1.1m. 바닥에 발이 닿는 깊이라 얕봤다가 큰코다쳤다. 두 발을 땅에서 떼니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경 안 낀 맨눈에 물이 들어가 소프트렌즈가 눈 뒤로 돌아갔다.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팔다리를 휘저었다. 설상가상 입고 간 티셔츠와 반바지는 물을 먹어 점점 무거워졌다. 최대한 실제 물에 빠진 것과 비슷한 상황을 체험하기 위해 평상복 차림으로 갔다. 반소매·반바지를 입고 수영복·수모·수경은 착용하지 않았다. 평소대로 렌즈도 꼈다. 초고도 근시인 기자는 눈앞에서 한 뼘만 멀어져도 물체를 명확히 보지 못한다.

해양경찰청 측에서 알려준 준비물은 수영복과 수모, 갈아입을 여벌 옷과 수건 등이었다. 하지만 대한생존수영협회 한병서 회장은 "생존 수영 교육은 실제 사고를 대비해 수경을 쓰지 않고 평소 입던 옷에 양말까지 신고 연습하는 게 정석이다. 수영을 잘해도 젖은 옷이 몸을 휘감으면 당황한다"고 했다.

방향을 보라는 안전 요원의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뒤집어 엎드렸다.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왔다. 또다시 몸이 물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허우적대며 몸을 돌렸다. 10m도 안 되는 거리를 가는데 몇 번이나 물에 빠져 헤맸다. 팔다리에 힘이 다 빠졌다. 강사 이재용(44)씨는 "실제 강과 바다에서는 물살 때문에 체력 소모가 더 심하고 물이 탁해 시야 확보가 어렵다"고 했다. 실제 물에 빠진 상황이었다면 헤엄치다가 체력을 써버리기보다 물에 떠서 체력을 아끼며 구조대를 기다리는 게 낫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수영 잘해도 죽을 수 있고, 수영 못해도 살 수 있다

"수영 잘한다고 헤엄쳐 나오려다가 힘 빠져서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해양경찰이 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교육 참가자 김형범(31)씨는 생존 수영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했다. "평영, 접영까지 할 수 있다고 생존 수영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실력 뽐내지 말고 생존 수영에 맞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강사가 말했다. 그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생존 수영은 영법 수영보다 빨리 익힐 수 있다"고 했다.

"몸에서 힘을 빼고 팔다리를 대(大)자로!" 해경이 생존 수영의 기본 자세라며 말했다. 오래 버티기 위해 체력을 아끼는 요령이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물 위에 누워 팔다리를 쭉 폈다. 물이 얼굴에 들이치니 목에 힘이 들어갔다. "편하게 누우세요." 얼굴이 반 정도 잠겼다. 최고기온이 28도까지 올라가고 햇볕이 따가운 초여름 날씨였지만 물속에 30분 넘게 있으니 몸이 금방 식었다. 이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춥죠? 손을 겨드랑이에 끼세요." 해경은 몸을 최대한 웅크려 체온을 보호하는 자세를 알려줬다. 다리는 가슴 쪽으로 구부리고 머리는 물 밖으로 나오게 했다. 대자로 물 위에 누워 있을 때보다 확실히 따뜻했다. "여럿이 빠졌을 때는 같이 모여 있는 편이 따뜻하겠죠?" 함께 물에 빠진 사람들과 손을 잡고 모여 체온을 나누는 것이다. 함께 모여 있다가 구조 신호를 외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해경은 덧붙였다. "하나, 둘, 셋!" 해경의 구령에 맞춰 배에 힘을 꽉 주고 외쳤다. "살려주세요!"

강사는 구명조끼를 벗고 '누워 뜨기' 연습을 하던 참가자들에게 2L짜리 빈 페트병을 나눠줬다. '누워 뜨기'는 하늘을 보고 누워 가슴에 숨을 채워 물 위에 뜨는 생존 수영법이다. 맨몸으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아 연신 물을 먹고 있었다. 빈 페트병을 끌어안으니 요령 없이도 물에 떴다. 다만 페트병은 부력이 강해 쉽게 품에서 빠져나갔다. "페트병 몸통을 잡으면 미끄러져요. 주둥이 쪽을 잡아줘야 합니다." 강사의 말에 주둥이를 잡고 겨드랑이에 끼워 이중으로 병을 잡았다.

페트병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훈련에서 다시 등장했다. "페트병이 잘 날아가게 삼분의 일 정도를 물로 채워주세요." 주위에서 끈을 찾을 수 없으면 운동화 끈이라도 풀어 페트병 주둥이에 묶으라고 했다. 끈을 준비하는 동안 물에 빠진 역할을 맡은 해경이 소리쳤다. "얼른 살려주세요. 제 몸 조금 뒤로 던지면 됩니다." 마음이 급해져 바로 페트병을 던졌는데 주둥이에 묶은 끈이 풀려 페트병만 날아갔다. 긴급한 순간이라도 단단히 끈을 묶어야 했다. 다시 던져 해경을 뭍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생존 수영, 어른이 더 몰라

"친구가 구명조끼를 바르게 입었나요?" "아니요!" 강사의 질문에 어린이 참가자들 사이에서 한목소리로 답이 터져 나왔다. 정답은 구명조끼 뒤편에 달린 '다리 줄'을 다리 사이로 빼 구명조끼 앞쪽에 채워야 안전하다는 것. 강사는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생존 수영 교육이 의무화돼 어른보다 애들이 오히려 더 잘 안다"고 했다. 낮 12시 교육에 참여한 51명 중 성인은 21명이었다. 이날 수업에 남편과 참여한 최정은(51)씨는 "수영을 오늘 처음 배워 어려웠다"며 "어린이들과 함께 배우려니 민망했다"고 했다.

최고령자였던 박형수(62)씨는 아이들 사이에서 물을 먹으며 연습하는 게 멋쩍은 듯 웃었다. 질문은 누구보다 많았다. 해경과 강사에게 바다에 빠지면 누워 뜨기와 엎드려 뜨기 중 어떤 자세로 버텨야 하는지, 균형을 어떻게 잡는지 등 질문을 쏟아냈다. 박씨는 "헝가리 유람선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도 언제든 당할 수 있다"고 했다.

육현철 한국체대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과거엔 수영이 학교 의무 교육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영 못하는 성인이 많다"며 "목숨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 수영장에선 수강료를 깎아줘서라도 성인들이 생존 수영을 배우게 해야 한다"고 했다. "책을 열 권 읽어도 이론만 알아서는 절대 물에 못 떠요."

◆ 한강공원 수영장서 하루 2번 교육… 해양경찰에 교육 신청생존 수영을 배우고 싶다면 매년 여름 해양경찰이 한강공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눈여겨보자. 인천해양경찰서 한강파출소는 여의도 야외수영장에서 오는 28일부터 8월 말까지 매일 오전·오후 1시간 30분씩 생존수영을 교육한다. 강습은 무료. 수영장 입장료는 각자 지참해야 한다. 한강파출소에 전화해 사전 신청하거나 현장에서 신청할 수 있다.

한국해양소년단연맹이 수영장이 아닌 바다와 강에서 교육하는 생존수영 프로그램도 있다. 교육장은 강원 강릉 해양스포츠 향호 활동장, 경북 상주 상주보수상레저센터· 낙단보수상레저센터, 부산 송도해양레포츠센터 4곳. 교육 일정은 체험장과 협의해야 한다. 교육은 무료로 진행되나 시설사용료 5000원을 내야 한다. 나이 제한과 최소 모집 인원은 교육장마다 달라 해양레저스포츠 홈페이지를 확인해야 한다. 전화 신청만 가능하다.

[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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