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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가 수주째 저커버그 전화 안받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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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펠로시 조작영상 삭제안해

저커버그, 뒤늦게 사과하려했지만 뿔난 펠로시는 전혀 응답 안해

조선일보

펠로시, 저커버그

미국 민주당의 일인자인 낸시 펠로시(79) 하원의장이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35)의 전화를 받지 않고 몇 주째 응답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너그러운 엄마 정치'로 유명한 펠로시가, 자신 지역구(캘리포니아) 내 최대 기업이자 민주당의 최대 후원자인 '손자뻘' 저커버그에게 왜 단단히 화가 났을까.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현지 시각) 저커버그가 펠로시에게 이런 무시를 당한 것은 최근 온라인을 달군 '술 취한 펠로시' 조작 동영상 유포에 페이스북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말 펠로시 의장이 한 행사에서 "트럼프는 뮬러 특검 수사 결과를 은폐하고 있다"고 연설하는 3분여 길이의 동영상이 페이스북에 게재됐다. 허공에 손을 허우적대고 혀가 꼬인 듯한 발음이 영락없이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는 극우 집단이 영상 속도를 늦추고 음성을 변조해 올린 '조작 동영상'이었다.

당시 민주당 측은 페이스북에 "가짜 영상을 즉시 차단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페이스북 실무진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정보가 반드시 사실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이후 두 개의 팩트체크 단체를 통해 거짓임을 확인한 후에야, 영상이 페이스북에 노출되는 빈도만 줄이겠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해당 영상은 수백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루돌프 줄리아니 변호사 등 트럼프 측이 트위터에 공유할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WP에 따르면 저커버그는 펠로시 의장과 이 사건을 '논의'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잘못을 빌려고 한 것이다. 익명의 민주당 관계자는 "펠로시는 설명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면서 아직까지 답을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저커버그의 '굴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펠로시 사태가 휩쓸고 간 뒤, 지난 7일 페이스북 소유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에 '가짜 저커버그 연설 동영상'이 올라왔다. 이 영상은 육안으로 조작 여부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섬세한 인공지능 딥페이크(deep fake) 기법으로 만든 것이었다. 가짜 저커버그는 "상상해보라. 한 사람이 수십억 명에게서 훔친 정보, 그들의 비밀, 그들의 삶, 그들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라고 말한다. 이 영상을 만든 건 진보 예술가 집단으로, 수십억 가입자의 개인 정보를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페이스북의 '횡포'를 풍자한 것이다. 곤혹스러운 처지가 된 페이스북은 "영상을 삭제하지 않고, 다른 모든 영상과 똑같이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커버그는 한때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의 영웅'이었다. 페이스북을 창립해 20대에 억만장자 대열에 올랐고, 사회적 가치를 역설하며 차기 민주당 대선 주자로까지 거론됐다. IT 기업 중에서도 유독 페이스북과 민주당은 정치적, 재정적으로도 끈끈한 관계였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페이스북 직원들의 2016년 당시 정치권 기부액 중 93%인 230만달러가 민주당에 투입될 정도였다.

그러나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가 트럼프 캠프에 유리한 각종 허위 광고를 페이스북에 마구잡이로 유통한 사실이 드러나고, 가입자 개인 정보 대량 유출 사태가 잇따라 터지는 동안 페이스북이 이를 덮기에 급급한 태도를 보이자 진보 진영과 페이스북의 신뢰는 완전히 금이 갔다. 현재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독점 IT 기업을 해체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놓으면서, 정권이 바뀌면 대대적으로 손을 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원우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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