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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희호, 대통령 부인보다 시대의 선생님으로 기억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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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빈소에 조문 물결

1세대 여성운동가 삶 재조명

“여성 노동자 얘기 들어주며 위로”

김현철, 추궈훙 중국대사도 조문

“이희호 ‘여사’란 호칭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12일 이희호 여사의 빈소를 찾은 박순희(73)씨는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 아닌 ‘이희호’ 개인의 삶을 제대로 돌아봤으면 하는 바람이어서라고 했다. 이날 이틀째를 맞은 고(故)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는 ‘영부인’이 아닌 ‘자연인’ 이희호를 추모하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들의 기억 속 이희호는 주체적으로 사회 변화를 이끌었던 1세대 여성운동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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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문객이 12일 오후 고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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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원풍모방 노조 부지부장으로 활동했던 박씨는 “여성들이 권리를 찾지 못해 짓밟힐 때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해줬다. 지금의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처음 출발할 때도 이희호 여사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 여사의 보라색 한복을 상기했다. 이 여사는 197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3·1 민주구국선언(김대중·윤보선·문익환·김승훈 등 사회 지도층이 박정희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선언문을 발표한 사건)을 한 뒤 재판을 받을 때마다 보라색 한복을 입고 재판에 참석했다. 보라색이 ‘고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만큼 대중에게 온몸으로 투쟁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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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이희호 여사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 사진은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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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의 유일한 자서전 『동행』을 집필한 유시춘 EBS 이사장은 조문 뒤 “이 여사는 이 땅의 사회적 약자와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있는 여성을 위해 일했다. 영부인 이희호는 그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10% 정도일 뿐 90%는 사회운동가, 인권운동가의 모습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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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이희호 여사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 사진은 고건 전 총리.[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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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수 YWCA 회장은 “이 여사가 YWCA 사무총장을 할 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어려움을 당하는 여성들을 보고 혼인신고 강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여성인권 운동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고 회고했다. 이희호 여사는 이후 ‘축첩한 자를 국회에 보내지 말자’ 캠페인에 앞장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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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이희호 여사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 사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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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지금 ‘여성운동가 이희호’의 면면이 주목받는 것과 관련, 전문가들은 변화된 사회 분위기의 반영이라고 분석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운동의 큰 별이 진 거다. 여사보다는 한 세대의 선생님으로 기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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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이희호 여사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 사진은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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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빈소엔 각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씨는 빈소를 찾아 “매 신년이면 동교동으로 인사하러 가곤 했다. 여권과 인권 신장에 한평생 헌신하셨는데 너무 애석하다”고 밝혔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인 이순자 여사도 조문했다. 홀로 국화를 들고 빈소로 들어와 헌화한 이 여사는 김홍업 전 의원 등 유가족과 짧게 악수한 뒤 빈소를 나갔다. 이후 고건 전 총리와 이수성 전 총리, 김명수 대법원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외교가에선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총리가 빈소를 방문했다. 저서 출판기념회 참석차 방한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여사님의 유언대로 한반도의 평화가 이뤄지고 국민들께서 여사님을 오랫동안 사랑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희호 여사의 장례는 이낙연 총리 등을 장례위원장으로 하는 사회장(발인 14일)으로 치러진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이날 ‘이희호 여사 생애 사진 100선’을 공개했다.

이우림·이가영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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