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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인류학자 이민영의 미식여행]⑤미식여행은 ‘남는 장사’그것을 증명한 두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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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미쉐린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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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여행을 간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럽씩이나 가서 하나라도 더 보고 더 배워와야 하지 않아?’ ‘음식 따위에 쓰는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아?’ 이런 공격적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미식여행이야말로 가장 값진 학습이라고. 특히 프랑스가 미식문화를 글로벌하게 판매하는 세련된 방법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은 문화자본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음식에 스토리와 서비스를 창의적으로 입혀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만드는 디테일은 실제 현장에서 오감으로 체험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다고. 한마디로 미식여행은 돈 낭비가 아니고 오히려 남는 장사라는 얘기다.

이런 주장이 흥미로운 분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 여행은 전 세계에 미식 비즈니스 제국을 건설한 프랑스 셰프들의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는 여행이다. 전 세계에서 미쉐린 스타를 가장 많이 받은 셰프인 조엘 로뷔숑(Joel Robuchon·2018년 사망 당시 31개)과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현재 21개)의 레스토랑은 음식도 좋지만, 경영학적으로 연구하고 벤치마킹할 요소들도 충분하다. 이들의 레스토랑 각각은 그 장소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고,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던 창조적인 콘셉트를 음식, 인테리어, 서비스로 만들어낸다. 누구나 한 번쯤 그곳에 가보고 싶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당연히 세상의 관심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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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의 미쉐린 스타를 보유한 알랭 뒤카스의 레스토랑 ‘르 뫼리스’는 우아하게 연출된 분위기에 걸맞은 요리로 ‘위대한 프렌치 레스토랑의 완벽한 전형’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샐러드와 디저트빵과 곁들인 넉넉한 치즈 5종 세트와 알랭 뒤카스 초콜릿회사에서 만든 초콜릿 선물까지 고객 서비스도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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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스타 21개’ 뒤카스

베르사유 궁전 본뜬 ‘르 뫼리스’

“프랑스 레스토랑의 완벽한 전형”

진짜 베르사유 궁전에도 레스토랑

18세기 왕실의 맛·분위기 복원


먼저 미쉐린 스타 수는 조엘 로뷔숑보다 적지만, 소득은 월등히 높은 알랭 뒤카스의 레스토랑부터 살펴보자. 내가 찾아갔던 파리의 ‘르 뫼리스’(Le Meurice)는 미쉐린 가이드북에서 이렇게 극찬했던 곳이다. ‘이 상징적인 럭셔리 호텔의 중심에 있는 레스토랑은 위대한 프렌치 레스토랑의 완벽한 전형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평화의 방’(Salon de la paix)을 본떠 만든 식당은 그야말로 궁전처럼 호화롭다. 게다가 식당이 위치한 르 뫼리스 호텔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등장한 ‘팔라스 호텔’(프랑스의 이미지를 드높일 수 있는 높은 품격을 가진 호텔이라고 정부에서 인증하는 호텔. 파리에는 10개가 있다)이다. 그러니 베르사유 궁전의 역사성, 미쉐린 2스타의 권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감성, 프랑스의 대표적인 셰프 알랭 뒤카스의 명성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기면서 근사한 사진까지 많이 남기고 싶은 여행자들이 찾아올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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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전 안에 있는 ‘뒤카스 오 샤토 드 베르사유’(Ducasse au chateau de Versailles)는 호화로움뿐 아니라 ‘시간 여행’이라는 요소까지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일반 여행자들의 관람이 끝나는 저녁 시간부터 프라이빗 그룹 예약을 받아 18세기 중반 왕실에서 즐겼던 요리를 제공한다. 벽난로와 거울 등이 남아 있는 17세기 살롱, 18세기 장식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화려한 식기들, 당시에 쓰였던 식재료만으로 구성된 메뉴, 당시의 복식을 갖추고 서빙하는 직원들을 상상해보라! 다른 어떤 곳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관광상품 아닌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7년 5월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이곳으로 초청해 점심을 함께하기도 했다. 어떻게 이렇게 대표적인 국가문화재에 최고급 레스토랑을 유치할 생각을 했는지, 모든 것이 참으로 프랑스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국은? 경복궁이나 창덕궁같이 유서 깊은 장소에 미쉐린 스타를 받은 한식 셰프들의 최고급 식당을 유치하고, 일반 관람이 끝난 시간대에 프라이빗 디너 행사를 여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2018년 오픈한 센강 유람선 레스토랑인 ‘뒤카스 쉬르 센’(Ducasse sur Seine)은 ‘공간 여행’을 드라마틱하게 펼쳐냈다. 이 보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 통유리 바깥으로 루브르 박물관과 노트르담 대성당 등 센 강변 유적지들을 구경할 수 있다. 파리에 가면 누구나 타보려 하는 센강 유람선과 파리의 명소들, 프랑스 최고의 미식을 곁들인 관광상품인 셈이다.

이 전에도 알랭 뒤카스의 수완이 빛나는 관광상품이 있었다. 바로 에펠탑 2층에 있는 레스토랑 ‘쥘 베른’(Jules Verne)이다.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 123m의 아름다운 전망에 프랑스 최고의 미식을 곁들인 것이다. 뒤카스는 10년간 경영진으로 참여해 마크롱 대통령 부부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동반 만찬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동업자들과의 법적 분쟁에서 지는 바람에 경영 일선에서 밀려났고, 그래서 만든 새 레스토랑이 유람선 위의 뒤카스 쉬르 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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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뫼리스와 쥘 베른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방문기가 넘쳐난다. 대부분 그 레스토랑의 스토리와 호화로움에 감탄하고, 최고의 기념일이자 평생 남을 추억을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내용이다. 파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알랭 뒤카스 레스토랑에 대한 만족스러운 후기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알랭 뒤카스가 여행과 식사의 본질, 그리고 소비자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일본에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 샤넬과 제휴해 ‘베이지 알랭 뒤카스 도쿄’(Beige Alain Ducasse Tokyo)라는 레스토랑을 오픈하기도 했으니까.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기획 외에도, 알랭 뒤카스가 전 세계 25개 지역 레스토랑에 14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한 ‘뒤카스그룹’을 조직·운영하는 방식 또한 연구 대상이다.

스타 셰프들의 성공 노하우를 분석한 음식연구가 ‘츠지 요시키’의 저서 <세계를 움직이는 미식의 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알랭 뒤카스의 핵심 기술은 ‘조직력’이다. 그는 세계 각지에 있는 뒤카스그룹의 레스토랑을 돌며 직원들에게 개방적 사고를 기르고 지식을 넓히도록 훈련시킨다고 한다. 그의 인재 채용과 양성 방식, 다른 문화권에서 영감을 차용하도록 북돋우는 교육 방식,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을 통해 아이디어를 실현해가는 과정 등은 면밀히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뒤카스는 프랑스 음식의 스타일과 가격대 등을 세심하게 분화하여 정통, 컨템포러리, 클래식, 전통 비스트로 콘셉트, 베이커리와 델리, 오베르주(레스토랑이 함께 있는 프랑스 전통 숙소)라는 다양한 카테고리의 레스토랑을 만들고, 나아가 초콜릿 공방, 카페, 교육기관, 컨설팅 회사, 출판사 등 계열사로 확장했다. 파리, 뉴욕, 런던, 모나코, 도쿄, 홍콩, 마카오 등으로 뻗어나가는 조직 경영 능력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콘셉트를 만들고, 전 세계로 진출하는 거대한 한식 그룹이 탄생할 수 있을까? 뒤카스의 레스토랑을 둘러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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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작고 당시 역사상 가장 많은 미쉐린 스타를 보유했던 조엘 로뷔숑의 세련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레스토랑 ‘라틀리에 드 조엘 로뷔숑’. 검은색 테이블매트 위에 자리한 화려한 접시, 금박을 얹는 과감한 플레이팅, 적절한 조명까지 어우러져 요리는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인물 사진은 조엘 로뷔숑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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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스타 31개 최다 보유’ 로뷔숑

생제르맹 ‘라틀리에 드 조엘 로뷔숑’

블랙 & 레드 미니멀한 인테리어

일식당 같은 활기찬 분위기 매력

프랑스 음식문화의 ‘세계화’ 느껴져


이번에는 전 세계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미쉐린 스타 수를 보유했던 조엘 로뷔숑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1990년에 프랑스의 레스토랑 가이드 ‘골&미요’(Gault&Millau)로부터 ‘세기의 요리사’로 공식 선정되었으며 파리, 모나코, 홍콩, 라스베이거스, 도쿄 등에 39개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나는 파리 생제르맹에 있는 ‘라틀리에 드 조엘 로뷔숑’(L’ Atelier de Joel Robuchon)과 마카오에 있는 ‘로뷔숑 오 돔’(Robuchon au Dome)을 다녀왔다. 라틀리에 드 조엘 로뷔숑은 화실·사진 스튜디오라는 ‘아틀리에’의 사전적 뜻답게 시각적으로 멋지고 트렌디한 감성을 추구한다. 조엘 로뷔숑의 다른 클래식한 식당이 아니라 라틀리에를 찾은 것은 다른 셰프들과 비교할 수 없는 이런 감성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리(2곳)뿐 아니라 도쿄, 홍콩, 뉴욕 등 세계적인 대도시에 위치해 있다.

라틀리에 드 조엘 로뷔숑 생제르맹 지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인테리어에 압도당했다. 블랙&레드의 미니멀한 색감, 전 좌석이 오픈 키친을 향한 바(bar) 형태의 인테리어는 극도로 세련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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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 아니라 채소를 비롯한 식재료들을 색깔을 맞추어 디스플레이한 감성 또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공간은 유명한 건축가 피에르 이브 로숑의 작품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일반적인 서비스 방식과는 달리 활기차고 캐주얼한 서비스도 인상적이었다. 직원들은 환하게 웃으며 손님들에게 윙크를 보냈다. 셰프가 거의 5분에 한 번 큰 소리로 구령을 붙이면 전 직원이 기합을 넣으며 화답하는 분위기는 일본 식당에서 ‘이럇샤이마세(어서 오세요)’라고 외치며 손님을 맞는 분위기를 따온 듯했다. 우아하게만 여겨지던 프랑스 음식 문화가 글로벌하게 ‘힙’한 문화로 분화해가는 현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프랑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보지 못한 젊은 손님들, 힙한 예술가, 어린 아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사업가들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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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뒤카스와 조엘 로뷔숑의 이름을 기억하고, 앞으로 세계 곳곳에서 만나게 될 그들의 식당에도 반갑게 들어가보기를 권한다. 특히 이 업종 종사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미식문화를 기반으로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관광상품,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키는 아이디어를 현장에서 경험하고 돌아와 함께 나누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나라 문화·관광의 품격도 높아지지 않을까.

▶필자 이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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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일치를 꿈꾸는 관광인류학자. KBS 여행 전문 팟캐스트 <여행상상> 진행자. 여행작가·해외여행인솔자로 70여개국을 다니며 미식, 스쿠버다이빙, 자전거, 요가, 순례 등 다양한 테마여행을 탐구했다.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인의 해외관광문화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이민영 |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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