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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잔혹함의 끝' 전남편 살해사건…반복되는 부실 초동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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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기자의 사후담] 제주 고유정 사건

잔혹하게 살해한 뒤 시신 훼손…바다와 김포시에 유기

사전에 범행 정보 수집하고 흉기 등 구매…"계획범죄"

재혼가정 지키려 피해자 살해 추정…수면제 이용 범행

'덮치려 했다'는 고유정 진술 의존하다 시신 유기 방치

작년 게스트하우스 살인사건에 이어 부실 수사 '도마 위'

변명으로 일관 경찰…국민 생명보호 기본원칙 되새겨야

제주CBS 고상현 기자

노컷뉴스

7일 공개된 고유정의 얼굴. (사진=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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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시사매거진 제주-고 기자의 사후담>
■ 채널 : 표준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17:05~18:00)
■ 방송일시 : 2019년 6월 12일(수) 오후 5시 5분
■ 진행자 : 류도성 아나운서
■ 대담자 : 제주CBS 고상현 기자

◇ 류도성> 제주지역의 사건사고 뒷이야기를 들여다보고, 행정 당국의 후속 대책을 점검하는 '고 기자의 사후담'. 오늘은 어떤 주제를 들고 오셨나요.

◆ 고상현> 네. 요즘 범행의 잔혹성 때문에 떠들썩했던 사건이죠. 제주 전 남편 살인 사건을 들고 왔습니다.

◇ 류도성> 고 기자가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이후 2주 가까이 취재를 해왔어요. 많은 분이 궁금한 사항이 많을 거 같은데, 오늘 자세한 얘기 들어보죠.

◆ 고상현> 네. 피의자 고유정의 신상이 언론에 공개됐고,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지금까지 경찰 수사 내용과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류도성> 먼저 사건부터 소개해주시죠.

◆ 고상현> 고유정은 지난달 25일 저녁 제주시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여러 장소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 류도성> 혐의만 살인 외에도 사체 훼손, 사체 유기, 사체 은닉입니다.

◆ 고상현> 네. 고유정은 살해한 직후에 펜션에서 시신을 심하게 훼손했습니다. 무려 하루 동안 시신을 훼손했습니다.

◇ 류도성> 그 이후엔 훼손한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나요?

◆ 고상현> 범행 사흘째인 27일 정오쯤 고 씨는 훼손한 시신을 종이상자와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서 차에 싣습니다. 다음날엔 제주시의 한 마트에 들러 여행용 가방과 종량제 봉투 30장을 삽니다.

◇ 류도성>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나눠 담은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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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밤 완도행 여객선에서 내린뒤 잠시 차를 멈춰세운 고유정. (사진=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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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현> 네. 28일 저녁 제주항에서 완도행 여객선에 오르기 전에 인적이 드문 곳에 가서 훼손한 시신을 종량제 봉투에 나눠 담습니다.

◇ 류도성> 배를 타고 가면서 1차적으로 시신 유기가 이뤄졌죠?

◆ 고상현> 배에 탄 지 1시간쯤 지났을 때 여행용 가방에 담았던 훼손한 시신을 7분 가량 바다에 버립니다. 그 모습은 여객선 CCTV 영상에도 잡힙니다.

◇ 류도성> 배에 내린 뒤 고유정의 행적은 어떻게 되나요?

◆ 고상현> 고유정은 차를 몰고 경기도 김포시 아버지 소유의 아파트로 향합니다. 29일 새벽 이 아파트에서 남은 시신 일부를 재차 훼손합니다.

◇ 류도성> 완도행 여객선을 타고 가면서 전기톱을 추가로 인터넷 주문했다고 들었어요.

◆ 고상현> 네 바로 그 전기톱으로 피해자 시신을 2차 훼손한 겁니다. 그러고 나서 31일 새벽 훼손된 시신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버립니다.

◇ 류도성> 그러다 1일 충북 청주시의 주거지 주차장에서 경찰에 긴급체포 됐죠?

◆ 고상현> 네. 범행 장소인 펜션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확인된 혈흔이 다량 발견됐고, 주거지에서 경찰이 흉기와 톱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 류도성> 범행 동기가 가장 궁금한데, 고유정은 뭐라고 주장했나요?

◆ 고상현> 고유정은 경찰 조사 내내 피해자가 덮치려 해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류도성> 그 주장이 사실인가요?

◆ 고상현> 아닙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범죄로 보고 있습니다. 고 씨의 주장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 류도성> 어떤 계획범죄 정황들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확인됐나요?

◆ 고상현> 먼저 고유정이 범죄를 계획한 건 지난달 10일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살해도구라든가 사체 훼손과 유기 방법 등의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수집하거든요.

◇ 류도성> 범행에 사용한 톱도 지난달 18일 제주로 내려오기 전에 구매했다고 들었어요.

◆ 고상현> 네. 맞습니다. 피해자에게 먹인 수면제인 졸피뎀도 전날 청주시의 한 병원에서 처방받아 약국에서 사서 왔습니다.

◇ 류도성> 제주에 와서도 추가로 범행도구를 구매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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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전인 지난달 22일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흉기와 표백제 등을 구매하는 고유정. (사진=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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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현> 네. 범행 직전인 22일 밤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흉기, 표백제, 고무장갑, 청소도구 등을 구매했습니다.

◇ 류도성> 사건 당일 미리 준비해온 범행도구를 차에 싣고 피해자를 만나러 가죠?

◆ 고상현> 네. 그 날이 피해자가 2년 만에 6살 아들을 보는 자리였는데요. 오전에 서귀포시의 한 테마파크에서 피해자와 고유정, 아들이 처음 만납니다.

◇ 류도성> 테마파크에서 처음 만난 뒤 범행 장소인 펜션으로 바로 이동한 건가요?

◆ 고상현> 바로 간 건 아니었고, 중간에 제주시의 한 마트에 들러서 함께 장을 봅니다. 이전까지는 각자 자신의 차를 타고 움직였는데 펜션으로 갈 때는 피해자가 고유정의 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 류도성> 고유정이 범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피해자를 자신의 차에 태웠군요.

◆ 고상현> 네. 펜션도 무인으로 운영되고, 모형 CCTV만 있는 곳인데요. 고유정이 피해자에게 얘기도 없이 예약해서 데려갔다고 합니다.

◇ 류도성> 사전에 범행도구를 준비하고 무인 펜션을 예약한 것도 그렇고, 얘기만 들어도 계획범죄 가능성이 농후하네요.

◆ 고상현> 네. 그래서 경찰이 피해자가 자신을 덮치려 해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고유정의 주장을 믿지 않는 겁니다.

◇ 류도성> 그럼 경찰이 파악하는 고유정의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요?

◆ 고상현> 고유정이 1차 진술을 고집해 경찰이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범행동기를 파악했습니다. 그 결과 가정사 문제로 범행했다는 최종 결론을 내립니다.

◇ 류도성> 가정사 문제요?

◆ 고상현> 아까 피해자가 아들을 보러 갔다가 변을 당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사건 당일이 지난달 9일 가정소송에서 면접교섭권을 얻어 2년 만에 아들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 류도성> 범행 동기와 면접교섭이 관련 있는 건가요?

◆ 고상현> 네. 경찰이 추정하기론 고유정이 피해자와 아이의 면접교섭으로 현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깨질 수 있다고 우려해 살해했다는 겁니다.

◇ 류도성> 고유정이 피해자와 아이 문제로 갈등이 있긴 했습니다.

◆ 고상현> 네. 고유정은 재작년 피해자와 이혼한 직후 현 남편과 청주시에서 재혼했는데요. 아이를 제주시내 친정집에 맡겨놓고 청주시에서 생활할 정도로 현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집중했습니다.

◇ 류도성> 면접교섭으로 정기적으로 피해자에게 아이를 보여주게 되자 부담을 느낀 건가요?

◆ 고상현> 네. 경찰은 피해자의 존재로 갈등과 스트레스가 계속될 거라고 느껴 살해했다고 최종 판단했습니다. 박기남 제주동부경찰서 서장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녹취 : 박기남 서장] "(고유정이) 현 남편과의 완벽한 가정을 꿈꾸고 있는데, 면접교섭권이 인정돼서 그사이에 낳은 아들을 보여줘야 하지 않습니까. 전 남편이 현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하는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나…."

◇ 류도성> 그렇군요. 호리호리한 고유정이 어떻게 자신보다 몸집이 큰 피해자를 제압했는지 의문이 많았어요.

◆ 고상현> 네. 경찰은 고유정이 범행 과정에서 수면제를 사용해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 류도성>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가 무엇이죠?

◆ 고상현> 일단 피해자의 혈흔에서 수면제인 졸피뎀 성분이 검출됐고요. 범행 장소의 혈흔 형태도 방어흔만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 류도성> 정황상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 받았을 가능성이 큰 거군요.

◆ 고상현> 네. 하지만 고유정은 현재 약물 사용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면제를 처방받은 사실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 류도성> 경찰은 고유정의 정신질환 가능성도 부정했습니다.

◆ 고상현> 네. 사이코패스의 경우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데, 고유정이 가족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는 정황을 봤을 땐 사이코패스는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경계성 성격 장애는 관찰됐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 류도성> 현재까지 피해자 시신은 발견되지 않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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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의 한 재활용업체에서 고유정이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를 찾고 있는 경찰들. (사진=제주동부경찰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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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현> 네. 경찰이 인천시의 한 재활용업체에서 고유정이 버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일부를 발견해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지만, 피해자의 것으로 확인될지 미지수입니다.

◇ 류도성> 왜 그렇죠?

◆ 고상현> 이미 소각 처리된 터라 유해에 DNA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작기 때문입니다. 또 경찰은 펜션 하수구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 50여 수를 확보했지만, 이마저도 피해자의 것일지는 불투명합니다. 범행 다음 날에도 펜션에 손님이 머물렀었거든요.

◇ 류도성> 고 기자가 여러 차례 단독 보도했지만, 시신이 아직도 발견되지 않는 거 보면 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가 아쉽네요.

◆ 고상현> 네. 유가족이 고유정이 시신을 훼손한 뒤 펜션을 빠져나온 27일 저녁에 실종신고를 하거든요. 당일 경찰이 고유정과 통화까지 했고요.

◇ 류도성> 그런데 경찰은 왜 의심하지 않았나요?

◆ 고상현> 고유정의 진술을 그대로 믿어버린 겁니다. 그때도 고유정은 전 남편이 자신을 덮치려했다가 미수에 그치자 25일 밤 먼저 펜션을 나갔다고 했습니다.

◇ 류도성> 피해자 동선 파악이 중요했을 텐데요.

◆ 고상현> 네. 일단 고유정의 진술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피해자가 25일 밤 펜션을 빠져나왔는지 확인했어야 했는데 제대로 확인을 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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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이 경찰에 위치를 알려준 펜션 인근 주택 CCTV. (사진=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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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도성> 고유정의 진술이 허위라는 것을 확인했던 펜션 인근 주택 CCTV 영상도 유족이 찾아줬다면서요?

◆ 고상현> 네. 그렇습니다. 또 피해자 차량이 사흘째 마트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는데도 블랙박스 영상조차 확인 안 했습니다. 이것도 유족의 요청으로 나중 돼서야 경찰이 확인했습니다.

◇ 류도성> 경찰이 실종 신고한 유가족에게 고유정의 주장을 얘기했다면 사건이 조기에 형사과로 인계됐을 텐데요.

◆ 고상현> 네. 경찰은 고유정의 진술만 믿고 실종신고 다음날까지 피해자의 휴대전화 기지국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제주시 이도1동을 중심으로 수색을 벌이며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 류도성> 그런데 최종 기지국 신호가 이도1동으로 잡혔던 건 고유정이 조작 문자를 보내서였죠.

◆ 고상현> 네. 고유정이 자신의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이 지역에서 피해자 휴대전화로 취업도 해야 하니 덮친 거로 고소하지 말아 달라고 자신에게 문자를 보낸 거거든요.

◇ 류도성> 경찰이 허둥대는 사이 고유정은 훼손한 시신을 차에 싣고 제주도를 유유히 빠져나가 시신을 수일에 걸쳐 유기했습니다.

◆ 고상현> 사실상 초동수사는 유가족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 때문에 유가족도 분통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녹취 : 피해자 유가족] "실종신고 이후에 여성청소년과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어요. CCTV 확인해서 범죄 가능성이 있다 판단해서 형사과로 빨리 넘겼으면 시신이라도 찾았을 텐데…."

◇ 류도성> 안타깝네요.

◆ 고상현> 관할서인 제주동부경찰서는 작년 2월 게스트하우스 살인사건 때도 부실한 초동수사로 유력 용의자 한정민을 놓쳤었거든요. 실수가 되풀이되는 모양새입니다.

◇ 류도성> 그런데도 변명으로 일관한다면서요?

◆ 고상현> 네. 물론 지난달 30일 사건이 형사과로 넘어간 뒤로는 경찰이 신속하게 고유정을 긴급체포하고, 범행 관련 증거물품을 상당 부분 확보했습니다. 형사 전원이 투입되며 사건을 검찰에 넘기기 전까지 제대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고생한 것도 압니다.

◇ 류도성> 네. 그렇겠죠.

◆ 고상현> 다만 경찰이 초동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시신을 유기하기 전에 막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는 겁니다. 경찰은 실종신고 매뉴얼에 따라 제대로 수사했다고만 해명하고 있습니다.

◇ 류도성> 유가족의 마음은 찢어지고 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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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남 제주동부경찰서 서장. (사진=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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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현> 네. 사건을 수사한 동부경찰서의 박기남 서장은 지난해 부임하면서 본관 로비에 로버트 필의 9가지 경찰 원칙을 게시했습니다. 이 원칙을 준수하겠다고 게시한 거겠죠.

◇ 류도성> 로버트 필이요?

◆ 고상현> 근대적 경찰제도의 기초를 확립해 경찰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인데요. 9가지 원칙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시민의 지지는…(중략)…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경찰이 변명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이번 사건 초동수사에서 노출된 문제점을 인정하고,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 류도성> 네. 지금까지 고상현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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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제주로 압송된 고유정. (사진=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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