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서명식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명을 돕고 있다.[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정부는 11일 오전 연락사무소 회의 때 이 여사의 서거 소식이 담긴 부고를 북측에 전달하고, 북한의 조문단 파견에 대비해 왔다. 고인은 남북 첫 정상회담이었던 2000년 6ㆍ15 정상회담 영부인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또 “국민과 평화통일을 기도하겠다”고 밝히는 등 남북 관계 개선에 열정을 보였다. 특히 북한은 6ㆍ15공동선언을 통일 지침이자 강령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겠냐는 예상이 많았다.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문제와 관련한 이 여사의 역할과 상징성을 고려하면 북한에서 조문단을 보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북한이 부고를 접수하고도 12일 관영 매체에 이 여사의 서거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서 북한이 조문단 파견에 소극적인 입장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남측 언론들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데 이 여사 서거 직후 관련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14일 발인이라는 소식도 전달한 만큼 조문단을 보내려 했으면 11일 밤늦게라도 반응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 영정과 위패가 놓여있다. 김상선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북한이 조화로 대신한 것을 두고는 최근 경색된 남북 관계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북한은 4월 이후 일체의 남북접촉을 피하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연일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부정하며 ‘당사자’ 역할을 주문하는 등 비난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신년사(1월 1일)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조건 없이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대남 사업 관계자들에겐 정책 지침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진전이 없고, 북ㆍ미 정상회담 결렬로 김 위원장의 무오류성이라는 이미지에 상처를 입자 한국과 ‘거래’를 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문단이 올 경우 당국 간 접촉이 불가피하고, 남북 정상회담이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논의의 기회로 비칠 수 있다. 실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방한했던 북한 대표단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전하며 남북관계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09년 북한은 조문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 조문 사절단으로 명칭을 바꿨다”며 “조문하는 기회에 남북관계를 논의하겠다는 의지였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북한 입장에선 조문단 파견이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북유럽을 순방 중이고, 남북관계 물밑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서훈 국가정보원장도 해외 출장 중이라는 점에서 마땅히 만날 사람이 없는 상황도 고려한 것으로 관측된다.
정용수·백민정 기자 nkys@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