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 도예가 김시영 인터뷰
일본에선 찻잔 하나에 1000만원 호가
전통에서 추상으로 스펙트럼 넓혀
김시영_달항아리_20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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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62) 작가는 조선시대에 명맥이 끊긴 고려 흑자(黑磁)를 빚는 도공이다. 흑유자, 또는 흑자라 불리는 도자는 이름처럼 먹색의 빛을 띤다. 문헌상으로 고려시대에 청자와 함께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지만, 조선시대에 그 명맥이 끊겼다. 지금도 우리는 고려 청자, 조선 백자만 기억할 뿐 고려 흑자는 생경하다.
흑자기를 굽는 김시영 도예가가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테헤란로 슈페리어 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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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기를 굽는 김시영 도예가가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테헤란로 슈페리어 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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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_대발2_201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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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보다 불의 온도가 정말 중요하죠. 백자보다 가마 온도가 더 높아야 반짝반짝 아름다운 색을 얻을 수 있는데, 전해진 기록도 스승도 없으니 어떤 온도에서 어느 정도 구워야 내가 원하는 색이 나오는지 스스로 연구할 수밖에 없었죠.”
김 작가는 세상의 모든 색을 다 품고 있는 흑자의 신비한 검은색이 불의 마술에 의해 탄생한다고 했다. “불을 다루지 못했다면 완성하지 못 했을 거예요.”
김시영_다완_2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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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의 빛은 검은 유약과 불이 만나 탄생되는 것이라 우연성이 있죠. 그래서 불의 온도가 중요해요. 어떤 온도일 때 어느 빛을 띠는지 수십 만 번의 실험으로 데이터가 쌓여야 비로소 불을 조절해 원하는 검은색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공업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금속을 전공했고, 학교 안에 있는 용광로의 불빛에 홀렸었다는 그는 ‘불의 마술사’가 되기 위해 지금껏 수많은 실험을 반복해가며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국내에는 흑자의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일본에선 김 작가의 흑자에 열광하는 이들이 많다. 일본미술구락부가 낸 ‘미술가명감’ 2011년판은 그가 만든 찻잔 하나를 100만엔(약 1000만원)으로 감정했다. 그가 빚은 달 항아리는 점당 3000만원을 호가한다.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이자 일본 최고의 도자 명가인 심수관 가문의 14대 심수관은 “김시영의 흑자에서 한국 도자기의 미래를 봤다”고까지 평했다.
김시영_다완_19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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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_달항아리_201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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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_3차원평면_201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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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빙산이 녹아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듯, 김 작가의 손에서 새롭게 성형된 흑자들은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간다. 그 속에서 흑자 특유의 검은 빛 또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뿜어낸다.
김시영_순간_201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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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를 가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 아이들이 자연스레 미대를 가고, 덕분에 세계적인 회화·조각가들의 작품을 저도 알게 됐죠. 전통 자기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새로운 작업을 해보자는 숙제가 생겼어요. 달 항아리를 굽다가 불 속에서 형태가 무너지는 걸 보고 ‘이것 자체가 추상적인 조각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그 재미에 푹 빠졌죠.”
흑자기를 굽는 김시영 도예가가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테헤란로 슈페리어 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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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는 단순한 흙이 불을 잘 만나 이루는 엄청난 신비스러움의 결과죠. 고려시대에 이 맥을 잘 살렸다면 지금 흑자가 청자에 결코 밀리지 않았을 겁니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신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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