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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여론 반발 커지자… 靑 "김원봉 서훈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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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규정상 안돼"

與관계자 "파장 커지자 규정 개정 일단 미룬 것"

청와대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로 촉발된 김원봉 독립 유공자 서훈 논란에 대해 "국가보훈처의 독립 유공자 포상 심사 조항상 서훈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김원봉 서훈 논란이 계속 확산하자 일단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가보훈처의 독립 유공자 포상 심사 기준 8번 항목을 보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 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을 한 경우 포상에서 제외한다(고 돼 있다)"며 "이 조항 때문에 김원봉 선생은 서훈, 훈격 부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마치 이것을 바꿔서 뭘 할 수 있다든가, 보훈처가 알아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정부와 청와대, 보훈처 방침도 규정에 의해 판단한다. 이것을 당장 고치거나 할 의사도 없고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독립운동 단체가 추진하는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에 대한 정부 지원 여부와 관련,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단체가 개별적으로 기념사업을 할 수는 있으나 정부가 관여하고 지원하는 바는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김원봉이 참여한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라고 언급하면서 서훈 논란이 증폭됐는데, 청와대가 나흘 만에 방침을 밝힌 것이다. 청와대는 최근 보훈처에서 김원봉 서훈 관련 자료를 모두 받아 법률 검토를 하고 인터넷 여론도 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노영민 비서실장 주재 현안 점검 회의에서도 김원봉 서훈에 대한 반대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일부 여론조사 기관은 김원봉 서훈에 대해 "찬성 의견이 이전 조사에 비해 줄었다"는 내용의 결과도 발표했다.

여권 관계자는 "김원봉 서훈 여부는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것이 청와대 생각이었다"며 "이후 반발이 거세지자 서훈을 위한 규정을 개정하는 것을 일단 미룬 것"이라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작년부터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등을 중심으로 김원봉 서훈 추진 문제에 대한 얘기가 오갔던 것으로 안다"며 "김원봉 관련 드라마가 나오고 진보층 내부에서도 찬성 여론이 있었지만 '원칙을 지나치게 훼손한다'는 반발이 예상보다 커 진화에 나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여권에선 '김원봉 서훈 추진 작업'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국방부는 이날 군사편찬연구소가 김원봉 관련 사실을 군(軍) 연혁에 추가할 것을 제안한 데 대해 "김원봉의 활동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부분이라면 어느 정도 기록 필요성은 있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서훈에서는 한 발짝 물러섰지만, 서훈 명분 쌓기용 '복권(復權)'은 계속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한편 김원봉이 6·25전쟁 당시 간첩 남파 작전을 직접 지휘했다는 과거 언론 보도 내용이 10일 발견됐다. 경향신문의 1954년 1월 26일 '어마어마한 간첩단 체포, 김원봉이 직접 지휘' 기사에 따르면, 당시 경찰에 검거된 간첩 김춘옥 등은 "국가 검열상 김원봉의 직접 지휘를 받아 6·25 당시 서울에 침입했고, 이후 평양에 돌아갔다가 다시 북한의 비밀 명령을 받고 남한 간첩단에 자금, 마약, 인삼 등을 공급했다"고 진술했다.

김원봉이 6·25 이전부터 남파 요원을 파견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김원봉 연구'(염인호) 등에 따르면 김원봉은 1948년 10월 자신이 당수로 있던 인민공화당 당원 이만식에게 '대한민국 정부를 파괴·전복하고 인민공화국을 수립하도록 투쟁하라'는 지령을 내린 뒤 부산으로 파견했다. 당시 인민공화당은 "남조선 단독 괴뢰 정부를 타도하자" 등의 내용이 담긴 선전물을 살포하며 경남·창원 지역을 기반으로 당원 포섭 작전을 벌였다.

김원봉은 북한 최초 헌법 제정과 김일성 추대에도 참여했다. 김원봉은 1948년 8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에 선출됐는데, 그해 9월 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 헌법을 승인하고 김일성을 수상으로 추대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었던 김원봉도 여기에 참여한 것이다.

[양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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