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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황교안, 文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에 침묵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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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김원봉' 언급에 黃 대표 "언급하지 않았어야 할 이름" 외엔 입장 안 밝혀
한국당 겨냥한 친일·막말 프레임 말려들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메시지 조절하는 듯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의 6·25 남침 공로로 김일성 훈장을 받은 김원봉의 광복군 합류를 평가했을 때 정치권에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반응에 주목했다. 황 대표는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의 추념사를 다른 정당 대표들과 함께 행사장 맨 앞줄에서 육성으로 들었다.

하지만 황 대표는 이날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에 대해 직접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취임 100일째였던 이날 페이스북에 ‘초심(初心)을 다시 생각합니다'라는 글을 올렸을 뿐 김원봉 관련 입장을 따로 밝히진 않았다. 지난달 민생투쟁 대장정 때는 많으면 하루에 한 번, 적어도 이틀에 한번씩은 페이스북에 자신의 생각을 올리던 것과는 달랐다.

조선일보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오른쪽부터),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 내빈들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듣고 박수 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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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에 대한 황 대표의 입장은 하루 뒤인 지난 7일 나왔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자기 입장을 내놓기보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6·25 희생자들을 기리는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았어야 할 이름을 언급했다"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추가 설명은 하지 않았다.

한국당 안팎에선 '공안(公安) 검사' 출신인 황 대표의 이런 반응에 뭔가 의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황 대표는 현충원에서 문 대통령의 김원봉 발언을 듣고 아마 귀를 막고 싶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직접적인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황 대표가 이 문제에서 뒤로 빠진 사이 한국당에선 나경원 원내대표와 당 대변인들이 나서 문 대통령의 김원봉 관련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 한국당 관계자는 "황 대표가 직접 나서지 않는 건 모든 사안에 당대표가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차원으로 보인다"고 했다. 황 대표의 측근 인사도 "그동안 너무 많은 사안에 대해 직접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참모들의 조언이 있었다"며 "황 대표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될 사안이라고 판단되면 당대변인 등 주요 당직자들을 통해 메시지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당내 일부에선 황 대표의 이런 태도에는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과 관련해 그 의도를 분석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란 말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애국 앞에 보수·진보가 있을 수 없다"고 했지만,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콕 집어 거론한 것이 3·1절 100년 기념식에서 친일 잔재라며 '빨갱이론'을 거론하고 5·18 39주년 기념식에서 '독재자의 후예'를 거론한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여당에선 김원봉 추념사에 대한 비판에 '노덕술에 뺨 맞고 월북한 애달픈 독립투사' 이미지를 들고 나왔는데 '친일' 프레임으로 분노의 블랙홀을 만들어 한국당을 끌고 들어가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당은 일련의 문 대통령 언급이 역사 논쟁에 불을 지펴 '경제 실정(失政)론'을 비껴가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황 대표의 한 참모는 "경제난에 따른 민심 이반에 현 정권은 재정 풀기 외엔 마땅한 해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한국당의 총선의 성패는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심판 여론을 얼마나 결집해내느냐에 달린 만큼 이슈가 엉뚱한 역사 논쟁에 빨려드는 걸 막기 위해 황 대표가 발언을 자제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황 대표는 지난 7일 오후 차명진 전 의원의 '문재인 빨갱이' 발언이 막말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막말'이라는 말부터 조심해야 한다. 말의 배경이나 진의가 무엇인지 잘 보라"고 했다. 차 전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막말 논란으로 당원권 정지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김원봉 관련 발언에 대해선 황 대표가 선뜻 막말로 규정하는 데 선을 그은 것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황 대표의 침묵에는 한국당을 향한 막말 프레임 시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뜻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김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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