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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전문가 "김원봉 언급, 가장 이상한 추념사...또다른 역사뒤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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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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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에서 6·25 전쟁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국군 창설의 한 뿌리로까지 인정하는 언급을 내놓은 데 대해 전문가들은 "분단 체제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모적 이념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광복 이전 김원봉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지만, 6·25 전몰자를 기리는 현충일에 대통령이 이같은 언급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는 "통일을 지향한다면 좌파 독립운동가도 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현충일은 전통적으로 대통령이 북한의 남침에 맞선 호국영령들을 기리고, 나라를 지키는 것을 항상 강조한 날"이라며 "3·1절 등 다른 날이라면 몰라도 현충일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9·19 남북군사합의도 그렇고, 군(軍)의 방어 태세 이완을 지도자가 방조하는 느낌"이라며 "역대 현충일 추념사중 가장 이상한 추념사일 것"이라고 했다.

남 교수는 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6·25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김원봉을 재평가하는 언급을 한 것을 두고 "역사뒤집기를 염두에 뒀다는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주도 세력을 현재뿐 아니라 과거의 인물 차원에서도 바꿔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런 차원이 아니라면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부각시킨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북한의 남침(南侵) 역사는 뒤로 제쳐두고 북한 체제 수립에 공헌한 김원봉을 띄우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예비역 육군대령인 윤형호 건양대 교수도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이승만 계열, 김구 계열, 김원봉 계열, 신채호 계열 등 정치적 지향이 다른 다양한 독립운동 세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세력에서 김원봉은 포함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김원봉이 항일 무장투쟁을 한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북한 정권에서 훈장을 받았는데 대통령이 공식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건국과 연결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김원봉 관련 언급이 한국의 이념적 갈등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는 일제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고 지금도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또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선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가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빨갱이' '친일' '독재의 후예'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서 정치적 반대 진영을 '적폐'로 몰아가려는 의도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는데, 김원봉 발언도 좌우 진영 간 갈등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독립 이전의 행위가 정당했다고하더라도 분단과 전쟁 과정에서 대한민국을 부인하고 적대하는 세력이었다면, 분단과 전쟁이 아직 청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진보·보수간 소모적인 이념갈등만 야기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대통령의 '진보·보수를 넘어서야한다'는 언급을 오히려 무색하게하는 주장"이라고 했다.

다만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원봉은 원래 공산주의자가 아닌 무정부주의적 민족주의자이고 저쪽에서 숙청되고 배척받은 인물"이라며 "북한 정권에 관여했다고 해도, 숙청되거나 과거에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포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통일정부를 지향한다면 좌파적 애국자든 우파적 애국자든 모두 아우르는 게 맞는다"며 "북한이 '통일전선'을 이야기할 때 우리도 '역(逆)통일전선'을 이야기한다. 북한도 민족주의 인사들에 대해 처음에 부정적이다가 나중에 통일전선적 관점에서 그런 사람들을 포용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3·1운동에 기여한 분들 일부가 이후 변절했지만, 3·1운동에 기여한 부분도 있다"며 "과거 독립운동에 기여한 분들의 공과를 나눠 인정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성숙된 방향으로 가야한다. 그런 성숙한 자세가 3·1 운동 100주년 시점에 필요하다"고 했다.

[유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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