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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현대중공업 주총]노조 “수시로 말 바꾼 회사 못 믿겠다…그 어느 때보다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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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구조조정·2017년 4사분할 당시 고용보장·단협 승계 약속 안 지켜” 동참자 증가

“노조 무력화 우려” 외침에도 하청 노동자 참여 미지근…이번 사태에 노조 신뢰 회복 달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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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의 법인분할을 맞아 노조의 명운이 걸린 듯 싸울 태세다. “노조원들의 참여 분위기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알려졌다. 노조가 이처럼 투쟁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1987년 노조 창립 때부터 활동해온 노조원들은 “회사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1989년 노조 창립 멤버가 된 후 2002년 민주노총 소속 정규직 노조의 마지막 위원장을 지낸 김덕규씨(60)는 “노조를 처음 만들 때 분위기 같다”며 “현장이 상당히 고무된 상태고 조합원들이 적극 따라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속한 90명 규모 부서에서 처음에는 5~6명만이 동참했는데 현재는 50명까지 참여한다.

김씨는 연말이면 정년을 맞는다. 1988년 128일 파업 때 오른 주먹을 치켜들고 구호를 외치는 김씨의 사진 한 장이 남았는데 노동계에선 유명한 그림인 ‘노동해방의 그날까지’의 원본이 됐다.

김씨는 “물적분할에서 가장 큰 걱정은 단체협약이 없어지고 노조가 없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적분할은 하나의 회사를 두 개 이상으로 나누는 것을 말하는데, 기존의 회사가 새로 생긴 회사를 100% 지배하게 된다. 약 500명이 근무할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이 기존 법인의 지위를 가지고, 사내 하청 노동자를 포함해 3만명이 근무하는 현대중공업을 지배하는 셈이다. 32년 역사의 현대중공업 노조도 새로 만들어진 회사의 노조가 된다. 현행법과 판례상 회사가 분할계획서에 단협 승계를 명시하지 않았다면 단협이 신설 법인에 승계될 이유는 없다.

회사는 처음엔 “근로조건을 승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단협에는 근로조건만 있지 않다. 조합비 거출 등 조합의 기본 활동과 전임자 수, 사내에서 이용 가능한 복지시설의 범위도 단협이 정한다. 2017년 현대중공업의 4사 분할 당시에도 회사는 ‘근로조건 승계’를 약속했지만, 신설 법인 3곳의 노동자들은 시설이용의 범위가 좁아지는 등 단협을 온전히 승계하지 못한 바 있다.

그는 “회사에 대한 노조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며 2015년의 구조조정 과정을 얘기했다. 당시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은 “역량을 모으기 위해 인력 구조조정을 중단한다”는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직후부터 본격적인 감원 바람이 불었다. 2017년 분할이 남긴 상처도 크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 사업회사와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현대중공업 지주 4개사로 인적분할을 단행했다. 이후 현대중공업 지주는 주식교환으로 사업회사 3곳의 주식을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아무런 자금유출 없이 지주사의 지분율을 10.2%에서 25.8%까지 끌어올렸다. 동시에 현대중공업 지주는 우량회사인 현대글로벌서비스(AS사업), 현대오일뱅크(정유사업)를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1987년 노조의 창립 멤버로 현재도 노조 간부로 있는 조성익씨(53)는 “가장 호황일 때 미래를 대비하자며 오일뱅크를 사들였지만 결국 구성원에게 이득이 될 것은 없었고 이익은 자본만 봤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뭘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서 종업원을 희생시키지 말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김형균 현대중공업 노조 정책실장은 “법인 분할이 이뤄지면 현대중공업은 경영부실에 따른 임금 삭감과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질 게 뻔하다”며 “대우조선 인수 후 부분별 통합작업으로 대규모 해고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노조에도 고민은 있다. 정규직 노조의 결집은 기대 이상이지만 파업에도 불구하고 공장은 정상 가동되고 있다. 1986년 입사해 이듬해부터 노조 활동을 시작한 남구보씨(55)는 “1995년까지는 정규직이 많아서 노조가 파업을 하면 공장이 멈췄다”며 “노동자의 힘은 공장을 멈출 때 나오는데 그때 이후로는 비정규직이 많아져 파업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했다. 1만4000명에 달하는 사내 하청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데 실패하면서 정규직 노조의 힘은 약화됐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200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초기부터 강한 탄압을 받았다. 하청업체 소속으로 노조에 가입한 사실이 알려지면 원청에서 출입증을 발급해주지 않았다. 그즈음 하청지회의 바람막이가 돼 줬어야 할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민주노총에서 탈퇴하며 오히려 회사에 협조적이었다. 하청노동자 박일수씨가 2004년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 사망하자, 당시의 정규직 노조는 “개인적 이유로 자살했다”고 주장하며 하청노조의 결집을 방해했다.

이번 싸움이 확전 양상을 보이는 데는 노조의 질곡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겨우 자리 잡은 노조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노조원 사이에서는 2015년부터 시작된 구조조정과 2017년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노조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덕규씨는 “90년대 초반 이후로 지금이 가장 뜨거운 시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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