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강한 어깨, 뚝심 리드… 공룡구단 비밀무기 '포탄코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포수로도 활약하고 있는 NC 크리스티안 베탄코트. 양광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98년 외국인선수 제도가 생긴 뒤 프로야구에서 한국 무대를 밟은 선수는 382명이다. 하지만 외인(外人)들에게도 포수는 허락되지 않은 포지션이었다. 투수와 호흡이 중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마침내 21년 만에 '불문율'이 깨졌다. 주인공은 NC 다이노스 크리스티안 베탄코트(28)다. 지난해까지 포수 문제로 고민했던 NC는 KBO리그 최고 포수 양의지(32)에 '포탄코트(포수+베탄코트)'란 비밀무기까지 사용하며 시즌 초반 선전중이다.

29일 창원 NC파크에서 만난 베탄코트의 표정은 밝았다. 시즌 초반 입었던 부상과 부진에서 말끔하게 탈출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던 포수로 출전하고 있다는 기쁨이 컸다. 주전 양의지가 무릎 상태가 않으면서 베탄코트는 지난 15일부터 포수로 자주 출전하고 있다.

베탄코트가 포수로 출전한 8경기에서 NC는 5승3패의 준수한 성적을 냈다. 캐칭·블로킹·경기 운영 어느 하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대 도루도 6번 중 3번 막았다. 국내 정상급 포수 저지율이 30%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매우 훌륭하다. 노볼-2스트라이크에서도 과감하게 상대를 공격하는 투수 리드도 눈에 띈다.

NC 투수들은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구단 관계자는 "베탄코트가 조용한 성격이다. 하지만 포수 마스크를 쓴 뒤 활발해졌다"고 귀띔했다. 베탄코트는 "포수는 언제나 자신있다. 평생 해온 포지션"이라며 "하던 일을 했을 뿐이다. 야구 용어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다. 긴 대화를 할 땐 통역이 도와준다"고 했다.

중앙일보

29일 창원 롯데전에서 투수 강윤구와 대화하는 베탄코트.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탄코트는 인구 400만 명의 나라 파나마 출신이다. 파나마 최고의 스포츠는 야구다. MLB 최다 세이브(652개)의 주인공 마리아노 리베라(50·은퇴)가 파나마 대표 스타다. 베탄코트도 자연스럽게 5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베탄코트의 포지션은 포수였다. 베탄코트는 "정확하게 포수를 하게 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포수였다. 내 야구선수 인생 전체가 포수"라고 말했다.

16살 때인 2008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한 베탄코트는 2013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하지만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가는 처지였고, 2016년부터는 투수를 겸업했다. 강한 어깨에서 나오는 최고 시속 100마일(약 161㎞)의 강속구를 뿌렸다.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까지 이리저리 오갔고 1경기에서 4개 포지션을 소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오로지 포수에 쏠려 있었다. 베탄코트는 "투수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팀이 원했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았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포수였다"고 말했다.

2018년을 마이너리그에서만 보낸 베탄코트는 그해 12월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모두 KBO리그를 안다. 제이미 로맥과 아는 사이였는데 SK와 계약한 뒤 관심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그가 NC로 간 건 포수로 뛸 수 있어서였다. KBO에 등록된 베탄코트의 포지션도 포수다. 로티노(전 넥센), 로사리오(전 한화) 등 잠깐씩 포수 마스크를 쓴 선수는 있지만 포수로 등록된 선수는 베탄코트가 처음이다. 베탄코트는 "외국인 포수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중앙일보

3월 23일 개막전에서 KBO리그 첫 홈런을 친 베탄코트. 올해 문을 연 창원 NC파크 1호 홈런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탄코트가 모르던 사실이 있었다. NC가 양의지를 FA로 영입한 것이다. 베탄코트는 "다른 포지션으로 뛸 수 있다는 데는 동의했다. 하지만 양의지가 온다는 건 몰랐다"고 했다. 실제로 베탄코트는 한국에 온 뒤 거의 포수로 뛰지 못했다. 지명타자·1루수·우익수를 오갔고, 수비에서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상까지 겹쳐 2군에도 한 차례 다녀왔다. 이동욱 감독은 베탄코트를 1군으로 올리면서 "완전치 않은 몸으로 1루를 맡겨 미안했다"고 말했다.

베탄코트는 언제나처럼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그는 "감독님이 내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나는 야구를 하러왔다"며 "몸 상태가 항상 100%일 수는 없다. 그래도 근육이 찢어지거나 뼈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뛰는 게 선수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양의지는 정말 좋은 선수다. 어떤 팀이든 그를 원할 것"이라며 "포수로 나가지 못한 것에 화내거나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고 했다.

두 달 간의 기다림 끝에 포수 마스크를 쓴 베탄코트에게 이동욱 감독은 전폭적인 믿음을 보냈다. 외국인 선수지만 전혀 벤치에서 사인을 내지 않는 것이다. 베탄코트가 직접 투수에게 볼 배합을 요구한다. 그는 "전력분석팀에서 항상 상대 타자들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준다"고 말했다. 베탄코트의 플레이를 본 양의지는 "앞으로 자주 지명타자로 나설 것 같다"며 웃었다.

의미있는 기록도 세웠다. 개막전에서 2019 프로야구 첫 홈런을 때린 것이다. 게다가 이 홈런은 올해 새롭게 개장한 창원 NC 파크 역대 1호 홈런이었다. 베탄코트는 "전날 비디오게임을 하면서 문득 '내일 첫 홈런을 치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는데 그게 실제로 이뤄져 너무 기뻤다. 창원구장 첫 홈런이란 사실도 뿌듯했다"고 웃었다. 그는 "야구장이 없어지지 않고, 평생 내 이름이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미소지었다.

중앙일보

시즌 초반 주춤했던 베탄코트를 위해 박민우(오른쪽)를 비롯한 동료들은 힘을 북돋았다. 베탄코트는 "박석민, 손시헌, 양의지 등 동료들이 내게 언제나 말을 걸어줬다.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외국인 선수들이 고생하는 것 중 하나는 한국 문화다. 음식 문제로 체중 감량을 겪는 사례도 있다. 베탄코트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베탄코트는 "부상과 부진을 겪을 때 동료들이 나를 격려해줬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를 가족처럼 대해준다"며 "나도 한국 선수들과 함께 하기 위해 문화를 익히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직접 요리도 하고, 라면 같은 매운 음식도 잘 먹는다"고 웃었다. 구단 통역은 베탄코트가 "밥 주세요, 소금 주세요"란 한국말을 잘 쓴다고 설명했다.

NC는 역대 최고 외국인타자 에릭 테임즈(33)가 활약한 팀이다. 후임자들은 자연스럽게 그와 비교당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베탄코트는 의연했다. 그는 "테임즈는 테임즈이고, 나는 나다"라며 "그에 관한 얘기를 들었지만 각자의 길이 있다"고 했다. '테임즈처럼 MLB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내년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 NC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만 집중하고 있다"고 답했다.

창원=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