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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현장에서]‘정상 통화유출’ 사태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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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간 통화 내용은 '3급 비밀'에 해당

유출 외교관·공개한 강효상 의원 모두 책임

본질 흐리고 정략적 이용하려는 시도 멈춰야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외교부를 취재하는 기자단의 연레행사 중 ‘외교문서 공개’가 있다. 외교문서 공개는 그 방대한 양으로 일단 기자들을 ‘공포’에 떨게한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공개하고 있는데 한번에 공개되는 양이 20만쪽 이상이다. ‘쪽’으로 말하니 와닿지 않는데, 올해 3월에 공개된 1988년도 중심의 외교문서는 25만여쪽으로 12기가바이트(GB)에 달한다.

워낙에 엄청난 분량인데다 깨알같은 글씨로 적힌 어려운 외교용어를 해석(?) 하려다보니 해마다 외교문서 공개철이 돌아오면 외교부 기자들은 ‘다크서클’을 늘어뜨리고 한숨을 쉬곤 한다. 하지만 ‘외교문서 읽기’는 들이는 품에 비해 보람은 크지 않다. 그 많은 외교문서 중에 소위 ‘이야기가 되는’ 건은 극히 일부인데다 좀 중요하다 싶은 사안은 이미 기사로 다 나왔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30년이나 지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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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 내용 유출 사건과 관련,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엄중하게 문책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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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별로 궁금해하지 않을 외교문서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최근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 유출건 때문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 혹은 일반적으로 관심이 높은 내용이 아니라고 해도 외교문서는 국가간의 관계에서 오고가는 내용을 다루는 만큼 30년 동안 비공개에 부쳐진다. 30년이 지난 후에도 전직 외교관(1차), 국제관계 전문가(2차), 문서 생산 담당부서(3차), 간부급 소위원회(4차)의 검토를 각각 거친 후 외교부 1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외교문서 공개 심의위원회가 최종 승인한 후에 공개된다.

황선옥 외교부 외교사료팀장은 “30년이 지난 공개 대상 문서들은 원칙적으로 비밀 자체는 다 해제가 됐지만 공개 여부는 다르다”며 “일반 문서라도 외교문서 특성상 내용이 타국과 관련된 문서가 많기 때문에 현시점에서는 공개하기 곤란하거나, 30년이 지나도 완전히 종결되지 않고 현재까지 계속되는 문제의 경우는 공개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정상통화 유출건에 대해 일반국민이 느끼는 것 보다 외교부 내에서 받아들이는 심각성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외교관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직급이 높을수록 이번 사안에 대해 더 엄중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 간부급 외교부 당국자는 “같은 대사관 내에서도 전문을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경우는 없다”며 “담당하는 업무에 따라 철저히 문서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돼 있는 것이 보통이다. 상당히 예민하게 다루는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4일 취임한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이번 사건을 꼽으면서 ‘있어서도, 있을수도 없는 범법행위’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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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자회견에서 한미 정상회담 조율 과정과 통화 내용을 자세히 공개해 논란을 일으켰던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3일 오전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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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번 사안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비해, 본질은 흐려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번 사안은 ‘3급 비밀’에 해당하는 정상간 통화 내용이 현직 외교관에 의해 유출됐다는 점이 핵심이다. 고위급 외교관이 어떤 경위로 그같은 중대 실수를 저질렀는지, 그 과정에서 외교부 내부 시스템 상의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외부 요인이 있었다면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가려내고 재발 방지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사안의 본질에 집중해 문제 해결에 집중하려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이를 이용해 어떻게든 이익을 보려는 정략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야당 탄압’, ‘굴욕 외교’ 등의 논쟁으로 정치적으로 공방하고 당리당략으로 끌고갈 사안이 아니라는 의미다. 기밀 유출을 유도하고 공개한 당사자가 ‘국민의 알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건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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