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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신율의 정치 읽기] 독재자의 후예 vs 좌파 독재 ‘프레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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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

“(자유한국당이) 전두환 전 정권이, 독재자의 후예이자 후신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냐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좌파 독재가 막바지에 올랐다… 죽기를 각오하고 정부의 경제 ‘폭망’, 민생 ‘폭망’, 안보 ‘폭망’과 좌파 독재를 막아내겠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매경이코노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8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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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때아닌 ‘독재 공방’이 오가고 있다. 1987년 체제로 불리는 현 체제가 탄생한 이후 우리는 분명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치권에서는 아직도 독재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공방을 벌이고 있으니 상당수 국민은 어리둥절하다. 왜 지금 이 시점에 독재라는 단어가 등장하는가. 그 이유는 아마도 총선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선거에서 프레임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가 선거에서 프레임을 선점하느냐, 그리고 누가 프레임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구도를 만드느냐가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선거 프레임은 단순해야 한다. 프레임을 먼저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시하는 프레임 자체가 단순 명료해야 한다. 프레임 내용을 상징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어를 통해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은 불만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불만의 원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치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만이나 경제적 차원의 불만 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 국민이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정당이 국민 불만의 원인을 한마디로 콕 집어 말해준다면, 국민은 불만의 원인을 알게 될 뿐 아니라 그 정당 주장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국민의 막연한 불만의 원인을 단순하고 명확한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황하게 설명하려 든다면 국민의 관심을 끌지도 못하고 공감대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과거 방송가에서 통용되던 말이 있다. 아마추어일수록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 장황하게 자신의 주장을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일반 시청자가 시사 프로그램 패널 말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보통 1분 30초라고 하는데, 아마추어는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기 위해 혼자 3~4분씩 떠들어댄다. 이렇게 되면 시청자들은 패널 주장에 공감하기는커녕,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짜증만 낸다.

이런 방송가 통념과 선거 프레임은 유사한 측면을 갖는다. 특정 정당이 아무리 자신들 주장이 옳다고 설명해도 그 설명이 장황하고 복잡하면 일반 국민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데 장황한 ‘자기변명’을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간단 명료한 프레임을 만들기에는 아무래도 여당보다 야당이 유리하다. 국민이 갖는 막연한 불만은 일반적으로 여권의 권력 행사 과정과 정책 추진 과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또 야당이 여당보다 프레임을 만들기 손쉬운 이유는 야당은 공세적 입장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방어에 치중하다 보면 자신들 입장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고, 제대로 된 프레임을 만들기도 어렵다.

2010년 6월에 있었던 지방선거는 천안함 폭침이라는 엄청난 안보 이슈 직후에 치러졌다. 이런 와중에 선거를 하면 당연히 보수 정당이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는 그렇지 않았다. 야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한 가지는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슬로건이었다. 당시 보수 정권의 잘못된 대북정책이 결국 안보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을 단순하게 표현한 이 슬로건 덕분에 야당인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잘 만든 프레임은 선거 판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다.

지금의 경우도 유사하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은 현 정권의 경제적 무능을 지적하며 동시에 ‘좌파 독재’ 주장을 반복할 것이다. 한국당이 ‘좌파 독재’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반복에 의한 프레임 형성’에 있다. 처음에는 국민이 별로 동조할 생각이 없다가도 자꾸 듣다 보면 “진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특히 신재민 전 사무관 같은 ‘양심선언’이 또 터져 나오면, 그때는 “정말 그렇구나!”로 바뀔 수도 있다. 한국당은 이런 이유로 단순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경제적 무능은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경제는 국민이 피부로 절감하는 것이지 설득한다고 다르게 생각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경제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국민이 ‘느끼는’ 존재다. 그렇기에 야당 입장에서 경제는 프레임으로 만들기 아주 좋은 소재다.

반면 여권은 ‘한국당은 과거 독재자의 후예’임을 강조하는 프레임으로 나아가려는 것 같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야당의 ‘좌파 독재 프레임’은 현재에 관한 것인 반면 여당의 ‘독재자의 후예 프레임’은 과거 역사와 관련된 문제다. 과거 역사와 관련된 사안을 주장하려면 일정 부분 설명이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 한계가 있다.

여당의 ‘힘 있는 분’들이 외치는 ‘과거와 미래의 싸움’ 프레임도 마찬가지다. 지금 국민 입장에서는 여당이 ‘미래’를 주장하지만, 허구한 날 과거 얘기만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적폐 청산도 과거에 관한 문제고, ‘독재자의 후예’ 프레임도 역사 관련 문제다. 그뿐 아니라 지금 여권이 몰입하는 문제의 50% 이상이 과거에 관한 사안이다. 이렇듯 과거에 올인하면서 자신들이 ‘미래 세력’이라 주장하면, 국민 입장에서는 당혹스럽다.

경제적 실정과 무능에 대한 부분에는 여권이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5월 19일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 수석은 기자간담회에서 “각종 통계를 종합해보면 고용 상황은 2018년보다는 개선되고 있고 어렵기는 하지만 희망적이다. 그 배경에는 정책 성과도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획기적’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청와대의 이런 언급은 아마도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제기될 경제 실정과 무능 논란에 대해 선제적으로 쐐기를 박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주장을 많은 국민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 수치만 봐도 그렇다. 5월 19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4월 전문대를 포함한 대졸 이상 실업자 수는 1년 전보다 2만9000명(5%) 증가한 60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그뿐 아니라 ‘투잡(two job)’ 희망자와 잠재구직자 등을 합한 청년층 체감 실업률은 25.2%로 역대 최고치다.

정부기관에서 나온 통계는 최악의 경제 상황을 증명하는데 청와대는 딴소리만 한다. 장하성 주중대사가 청와대에 있을 때 “올 연말이 되면” “올 하반기가 되면” 경제가 나아진다는 소리를 수없이 외쳤는데, 결국 거짓임이 증명됐다. 이를 기억하는 국민은 청와대의 이런 소리를 ‘또 다른 거짓’ 정도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일반 국민은 지금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경제는 체감적 존재지 설득의 대상이 아니다.

만일 청와대나 여당이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말함으로써 국민이 자기 최면에 걸릴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사막에서 알라딘 램프의 등장만을 기다리는 꼴이 될 것이다. 실적 없이 ‘공허한 주장’만 반복한다면 ‘반복에 의한 프레임 형성’은커녕, 국민을 정말 짜증 나게 만드는 꼴이 되는 것이다. 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프레임 전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다. 프레임은 현실 왜곡 혹은 현실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실 직시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를 잘 고민해야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0호 (2019.05.29~2019.06.04일자) 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0호 (2019.05.29~2019.06.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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