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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삶 최전선 ‘소액재판’] 3000만원이 소액?…3분 재판에 판사도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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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분류되는 소액사건, 판결문엔 판결이유 없이 결론만

-대법원, 소액재판 범위 2000만→3000만원 상향에 재판업무 ‘과중’

-하루 100건 넘는 재판… 패소 이유 모르니 항소 이유 적기도 난감

헤럴드경제

민사법정의 모습(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연합]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최근 민사소송을 낸 A씨는 패소한 뒤 판결문을 받았지만, 도저히 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판결문에는 상세한 설명 없이 ‘청구를 기각한다’는 정도만 간략하게 기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는 A씨가 낸 소송처럼 소가 3000만 원 이하의 사건은 결론만 기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법원이 판결 이유를 적지 않는 ‘소액재판’ 사건이 늘고 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2017년 1월1일부터 기존 2000만원이던 소액사건 기준을 자체 규칙에 따라 3000만원으로 올렸다. 현재 민사사건은 소송가액 3000만원까지는 소액사건, 3000만원 초과 2억원까지는 단독사건, 2억원 초과는 합의부사건으로 분류된다.

소액재판 범위가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사건 수도 증가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2016년 한 해 동안 27만2994건이던 소액사건은 2017년엔 32만8450건으로 약 5만5000건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소액재판부 판사는 22명에서 25명으로 단 3명이 늘었을 뿐이다. 대법원이 당시 3000만원으로 소가를 올린 근거 논리는 ‘한정된 사법자원의 효율적 활용 및 배분을 통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행정처 출신의 한 변호사는 “당시 배경이 된 게 ‘(단독)1심 충실화ㆍ집중화’다. 단독판사들 입장에서 2000~3000만원 사건 수를 줄여줘 단독 사건 심리를 충실히 하라고 소액 사건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앙지법 단독사건은 2016년 4만6797건에서 2017년 3만5166건으로 1만건 이상 감소했다.

일반 서민들의 생계와 밀접한 3000만원 이하의 사건이 ‘소액’으로 분류되면서 그만큼 재판도 부실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실제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 소액사건 법정에서는 단독판사 한 명이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100건이 넘는 재판을 진행했다. 원ㆍ피고가 자리에 미처 앉기도 전에 “원고 승소입니다, 돌아가세요” 선고가 나오는 등 재판은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졌다. 변호사를 따로 선임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 재판장이 ‘직권’으로 조정을 강요하거나, 사건 방향에 대한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사사건은 양 당사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토대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재판장이 주관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것은 부적절하다. 민사소송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판사가 일이 너무 많으니까 조정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이 나오는 것”이라며 “이는 당사자에겐 불안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변호사업계에서는 소액사건 범위를 3000만원으로 상향한 게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2000만원에서 3000만원 사이의 사건도 복잡하고 쟁점이 많아 충실한 심리를 필요로 하는 사건이 많다”며 “1심이 소액사건이 되면 상소를 해도 대법원 재판은 받을 수 없게 되는 등 권리 제약이 생긴다. 여러모로 당시 결정은 시기상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현곤(50ㆍ29기) 새올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항소를 하려고 해도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 수 없어 항소심에서 뭘 다퉈야 할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소액사건은 단독사건ㆍ합의사건과 달리 판결문에 판결이유를 적지 않아도 된다. 이 변호사는 “당사자 입장에선 아무래도 판사가 이름을 걸고 판결이유를 쓰게 되면 좀 더 증거자료나 법리적인 부분을 명확히 해서 판단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렇지 않은 소액사건에선 재판장 맘대로 판결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걱정과 우려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소액재판부가 과중한 업무부담으로 부실한 심리를 계속 할 경우 ‘사법불신’이 싹 틀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변회장을 지낸 김한규(49ㆍ36기)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소액사건이야 말로 일반 국민 삶과 직결된 소송”이라며 “일반인들이 2억원 이상 합의부 재판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그건 정말 생사가 걸린 정도의 소송“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서민 삶과 가장 밀접한 사법영역인 소액사건에서 부실 재판이 이어진다면 ‘양승태 사법농단’보다 더 체감 정도가 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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