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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힐링 핫스폿] 곡성에 다시 가면 `똥국`을 하루 한번씩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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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침실습지의 아침 풍경.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향이 독특했다. 비릿한 흙 냄새와 텁텁한 공기, 강한 햇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서울과 완전히 다른 곳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곡성 땅을 밟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했다. KTX를 타고 내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역은 예스러웠다. 곡성역이라고 투박하게 한글로 쓰여있는 현판이 마음에 들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기차마을 주변 패러글라이딩. 굽이굽이 차를 타고 올라가는 길이 아찔했다. 고도가 550m라더니 생각한 것보다 훨씬 무서웠다. 출발 전,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들었지만 막상 하려니까 심장이 두근댔다. 이 몸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달리기 시작했더니 거짓말처럼 몸이 하늘에 붕 떴다. 막상 하늘에 뜨니까 신선놀음을 하는 것인 양 편안했다. 하늘 위에서 바라본 곡성은 광활하고 또 귀여웠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과 논밭이 '이웃집 토토로'에 있을 법했다. 그 옆으로 흐르는 섬진강은 얼마나 평화로웠는지.

곡성의 5월은 화창하다. 공원 곳곳에는 신경 쓴 흔적이 가득하다. 1004종이나 되는 다양한 품종의 장미가 있으며 분수, 전각 등 자연 속에서 마음을 풀어놓을 공간이 잘 마련돼 있다. 장미를 주제로 형형색색 꾸며진 포토존도 포인트다. 장미공원 한편에는 증기기관차와 레일바이크가 있다. 기적소리가 울리면 섬진강변을 향해 달려가는 증기기관차를 볼 수 있다. 섬진강 둘레를 따라 기차를 타고 여유를 즐기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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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의 명물 패러글라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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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 공기는 맑고 가볍고 시원했다. 종종 등장하는 벌레들과 친구를 맺으면서도 강변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시간이 좋았다. 잡념이 사라지고 내 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강변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었다. 같이 간 이들과 함께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거리면서 강 주변을 돌며 자전거를 탔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스칠 때마다 웃음이 새어나왔다. 곳곳에 피어있는 라벤더 향기가 기분 좋았다. 자전거를 탈 때야말로 늦봄과 초여름에 곡성을 가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시간이었다.

섬진강 주변에는 보물 같은 장소가 많다. 그중 하나가 두가헌이다. 2012년 대한민국 한옥 건축대상을 수상한 곳이라고 해서 방문했지만 들어가는 순간 그런 수상실적은 무의미한 것이 됐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 함께 온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 등이 어땠는지에 따라 다른 기억으로 남을 만한 곳이었다. 그만큼 장소가 자아내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전에는 펜션으로도 운영됐지만 지금은 카페로만 운영하고 있다.

곡성에서 먹었던 음식 중 참게탕은 단연 으뜸이었다. 참게탕은 섬진강에서 갓 잡아올린 참게를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함께 끓인 탕이다. 참게는 털게 일종인데 꽃게 맛을 상상하고 먹었다 가는 깜짝 놀랄 것이다. 꽃게에 비해 굉장히 딱딱한데, 그 안에 살이 가득 차 있다. 특히 해물탕 특유의 비린내가 없어서 좋았다. 첫 맛은 해물탕처럼 시원했고, 시래기 국처럼 끝 맛은 구수했다. 밑반찬도 정말 맛있었는데, 매실장아찌와 전의 궁합은 환상이었고 봄철 나물 요리는 입맛을 돋웠다. 그리고 전라도의 상징 잎새 소주를 반주 삼아, 섬진강 풍경을 안주 삼아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저녁을 즐겼다.

똥국을 먹으러 가자는 지인의 말에 경악했다. "무슨 국요?" 재차 물었지만 빙그레 웃기만 하는 모습에 영 불안했다. 알고 보니 선지순댓국을 뜻하는 곡성식 표현이었다. 그래도 선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불안했다. 하지만 국물을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불안감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너무 맛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밥의 뒷맛은 텁텁함인데 맑고 고소했다. 들깻가루와 같은 조미료를 최소화하고 육수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았다. 채소순대와 선지순대를 반반 섞은 3번 메뉴를 골랐는데, 채소순대 또한 기가 막혔다. 속초의 아바이순대가 생각날 정도로 사이즈가 큰 순대였는데 두 개쯤 먹으니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선지순대도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아서 좋았다. 대체 어떻게 했길래 냄새를 잡은 건지 내내 궁금해하면서 먹었다. 곡성에 다시 가면 똥국은 하루에 한 번씩 먹을 것이다.

전국 토란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 지역이 곡성이다. 그런 만큼 토란으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들이 많다. 우리가 간 곳은 기차마을 바로 옆에 있는 한 카페. 토란 버블티와 토란 스콘을 판매한다고 큼지막히 적혀있다. 곡성에 온 기념으로 한번 먹어보고 싶어서 주문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맛있지는 않다. 담백하고 퍽퍽한 식감인데 그것대로 매력 있다. 사실 처음 입에 넣었을 때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한 입 두 입 먹을수록 특유의 퍽퍽함에서 나오는 '맛'이 있다. 마치 건빵같이 계속 먹고 싶어진다. 크랜베리와 달짝지근한 겉이 매력적이다. 토란 스콘은 토란 버블티보다는 카페라테와 궁합이 좋다. 다음 날, 또 토란 스콘을 먹었으니 아마도 맛있었던 것 아닐까. 곡성에 왔으니, 기념으로 한번 먹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한번쯤, 세상과 단절되고 싶을 때가 있다. 세상사에 지쳐서 잠수를 타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할 때 우리는 여행을 꿈꾼다. 곡성은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인 것 같다. 에디터는 곡성을 다녀오고 잘 살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잘 쉬는 것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확인하고 왔다.

[곡성 = 김아현 여행+ 인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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