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6·25때 국군수송작전 벌이다 전사… 문산호 11인에 '늦은 훈장' 바칩니다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91세 노병의 집념… 민간선박 선원들, 69년만에 화랑무공훈장

'단기 4283년 9월 1일 임명과 동시에 배치. 9월 16일 해임(전사).'1950년 가을, 우리 해군을 도와 인민군과 싸우다 침몰한 민간선박 문산호 선장·선원 11명의 복무 기록이다. 군과 함께 싸우다 숨진 이들이지만 격전 중이라 시신도 못 건졌고, 군인이 아니라 훈장도 못 받았다.

조선일보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은 지난 21일 경기도 고양시 자택에서 "문산호 선장과 선원들은 군인 못지않게 싸웠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6·25 때 이들과 나란히 싸운 최영섭(91) 예비역 해군 대령이 문산호가 잊힌 걸 안타까워하다가, 2012년 이들의 기록을 찾아내는 걸 자기 인생의 '버킷 리스트'로 삼았다. 해군 문서고를 뒤져 2016년 복무 기록을 찾아냈다. 국방부는 최근 이 기록을 바탕으로 문산호 선원 전원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했다. 행정안전부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지난해 선장인 고(故) 황재중씨에게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된 데 이은 조치다.

최 대령은 문산호 선원들과 1950년 7월 여수에서 만났다. 문산호 선원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여수 부두를 지키며 퇴각하는 국군장병을 부산으로 수송했다. 최 대령은 "우리 병사를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하려고, 적군이 500m 거리에 밀려와 총을 쏠 때까지 문산호 선장이 램프를 부두에 대고 기다렸다"고 했다. 마지막 병사가 총에 맞은 동료를 끌고 달려오는 걸 부둥켜안아 배에 태우고 출항했다. 배 양쪽에 포탄이 떨어졌다. 이후 최 대령은 서해에서 인천상륙작전에, 문산호는 경북 영덕군 장사리 앞바다에서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됐다. 이 둘은 그해 9월 15일 한반도 동서에서 동시에 벌어진 작전이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적의 허를 찌르고, 장사상륙작전으로 적을 교란하는 구도였다.

조선일보

1950년 9월 15일 경북 영덕군 장사리 앞바다에 좌초한 문산호. /영덕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는 유엔군과 해군 군함 수백 척이 동원됐다. 장사상륙작전은 민간 선박 문산호 한 대가 맡았다. 문산호는 10대 학도병 772명과 해군 56명을 태우고 전날 오후 부산항을 출발해 이날 새벽녘 인민군이 점령 중인 경북 영덕군 앞바다에 닿았다. 태풍과 적군의 포격으로 배가 좌초하고 간신히 뭍에 닿은 학도병도 수없이 쓰러졌다. 그래도 끝까지 싸워 적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해군·학도병·선원을 합쳐 139명이 목숨을 던진 결과였다.

문산호는 1947년 한국 정부가 미군에게 사들인 수송선 여덟 척 중 한 척으로, 전쟁 전까지는 국방부가 아닌 교통부 소속이었다. 최 대령은 "해군 기록에는 이들이 1950년 9월 1일 전선에 투입됐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6·25 발발 직후부터 줄곧 해군과 함께 다녔다"고 했다. "선장도 선원도 20대, 30대 젊은 사람들이었어요. 군인 못지않게 싸웠는데 이런 사람들을 잊으면 어떤 놈이 나라를 위해 싸우겠소."

문산호의 전공(戰功)은 많은 노병이 기억했다. 하지만 물증을 찾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최 대령은 2012년부터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듯 기록을 뒤졌다. 장사상륙작전 때 전사한 학도병 중에 대구 계성고 출신이 많다는 걸 알고 이 학교 교지를 뒤져 생존자 회고담을 찾았다. 교지에서 선장 이름 석 자를 알아낸 뒤, 행안부 등 각 부처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임성채 해군역사단 군사편찬과장이 최 대령을 도와 선장 포함 11명의 이름이 모두 적힌 복무 기록을 찾아냈다. 장사상륙작전 한 달 뒤 해군 인사참모부에서 작성한 서류였다. 모두 민간인 신분이었다. 이를 토대로 지금까지 전사자 11명 중 4명의 유족을 찾았다. 그중 한 명인 이호선(71)씨가 "아버지 이름 석 자랑 전쟁 때 돌아가셨다 카는 것만 알았는데, 최 대령님이 '내가 느그 아부지랑 같이 싸웠다'고 하시니까 꼭 우리 아버지가 온 것 같아 '아부지, 아부지' 하고 붙들고 울었다"고 했다. "엄마가 스물세 살에 혼자 돼 저랑 유복자 남동생 키우셨어요. 엄마 재혼 안 하셨냐고요? 아이고, 마지막까지 쪽 짓고 비녀 꽂고 사시다 3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씨의 부친은 고 이수용(전사 당시 28세)씨다. 나머지 선원들도 유족을 찾아 훈장 서훈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최 대령의 '버킷 리스트' 다음 단계다.

문산호 전사 11명의 이름은 복무 기록 순서대로 선장 황재중(黃載中), 선원 이찬석(李賛錫), 이수용(李秀用), 권수헌(權守憲), 부동숙(夫東淑), 박시열(朴時烈), 윤은호(尹殷鎬), 안수용(安水鎔), 이영용(李英龍), 한시택(韓時澤), 김일수(金日守)씨다.

[김수혜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