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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참교육’ 내걸고 굴곡진 30년…‘쉼교육’ 화두로 조직 활력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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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성과·시련·도전



경향신문

30주년 교사대회 지난 25일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열린 전교조 결성 30주년 기념 전국교사대회에서 참가자들이 30년 전 참교육 실천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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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한여름 더위가 찾아온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5000여명의 교사들이 모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전국교사대회’가 시작됐다. 참석자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30년 전에도 그랬다. 전교조가 첫걸음을 내딛던 1989년 5월28일에도 “교사들이 무슨 노동조합이냐”는 비난과 편견이 가득했다.

현재도 전교조는 엄연히 존재하는 교원노조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법외노조’다. 전교조는 1999년 합법적인 노조로 인정받았고, 10년 넘게 합법노조로 활동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해직 교사가 조합원으로 있다는 이유를 들어 2013년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

국민들이 직접 뽑는 전국 시·도교육감의 과반에 전교조 출신 교육감들이 당선되고, 전교조 해직 교사가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수장(김진경 의장)을 맡는 시대가 됐는데도 전교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교조는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맞게 변화하라는 거센 요구에도 직면하고 있다. ‘민주교육’은 더 이상 젊은 교사들을 전교조로 이끄는 동력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름만 빼고 다 바꾸겠다”며 출범한 전교조 현 지도부의 어깨가 어느 때보다 무겁다.

■ 6월 민주항쟁, 전교조의 시작

전교조의 뿌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이다. 민주항쟁 이후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가 교육민주화 실현을 내걸며 출범했고, 약 2년간의 투쟁과 준비를 거쳐 1989년 현재의 전교조가 창립됐다.

당시 창립선언문 내용을 보면 오늘날 학교와 교단이 마주한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교육의 자율성 실현, 학습권 침해의 문제, 과도한 입시교육 등이다. 최근 “스승의날을 없애달라”는 교사들의 청원과 그 궤적을 같이하는 물음 역시 창립선언문에 등장한다. “누가 우리더러 스승이라 부르는가?”

무지막지한 교내 체벌·촌지

운동장 애국조회 등 사라져

학생인권조례 도입 이끌고

무상급식·무상교육 현실화


그럼에도 전교조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학생들이 뙤약볕 아래 서서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듣지 않아도 되도록 ‘운동장 애국조회’가 없어졌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던 무지막지한 교내 체벌이 사라졌고, 영문도 모른 채 단체로 체벌을 받아야 했던 ‘극기훈련’도 사라졌다. 촌지가 없어졌고, 각종 성금·모금·어린이신문구독 등으로 나가던 학부모 지출도 크게 줄었다. 전교조가 뿌린 ‘혁신교육’의 씨앗은 어느덧 10년을 넘겨 국가교육정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긴 하지만 강제 야자(야간자율학습) 폐지, 일제고사 폐지 등도 전교조가 이끌어낸 변화다.

학교에서 학부모와 학생이 목소리를 내고 존중을 받게 된 데도 전교조의 공헌이 크다. 법으로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를 보장해 학부모들이 교육현장에 참여할 길을 열었다. 진보 교육감들이 민선으로 당선된 뒤 학생들의 교내 인권 보호를 위한 ‘학생인권조례’ 도입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장관호 전교조 정책실장은 “교육현장에 교사·학생·학부모라는 ‘교육 3주체’의 개념을 세우고 이를 실현할 여러 제도를 만들어낸 것이 최대 성과”라며 “무상급식, 무상교육 등 전교조가 추구했던 정책들이 계속 현실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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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는 색깔 칠하기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는 ‘전교조 척결’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 유세에서는 “전교조, 민주노총, 종북세력을 때려잡겠다”고 했다가 대선이 끝난 직후 전교조와 민주노총으로부터 피소당하기도 했다. 극우보수세력에 전교조는 종북의 ‘아이콘’이고, 이는 전교조를 절대로 합법화해서는 안되는 가장 큰 논리로 자리 잡았다.

전교조의 전체 강령과 참교육실천강령에는 그 어디에도 종북이라 할 만한 내용이 없다. 전교조가 이적행위로 기소되거나 처벌받은 전력도 없다. 2013년에 인천 지역 전교조 교사 4명이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긴 했지만, 아직 대법원 선고가 나지 않은 데다 일각에선 당시 사건 자체가 공안검찰의 기획사건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중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전교조가 종북이 된 것일까. 장 실장은 “2004년 시작된 사학법 개정 논란이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2004년 10월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사립학교법(사학법) 개정안을 확정하면서 찬반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전교조는 사학법 개정안을 주도하고 지지한 단체였다. 사학에 맞서 비리를 폭로하고 양심선언에 나서다 해직당한 교사들도 나왔다. 일부 전교조 교사들은 학교에서 사학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수업을 하다가 사학과 충돌하기도 했다.

반대편에서는 한나라당이 총대를 멨다. 국회 담장을 넘어 사학법 문제가 이념 대결로 번지면서 극우보수에 전교조는 ‘교실에서 공산주의자를 양산하려는’ 종북세력이자 ‘공공의 적’이 됐다. 한나라당은 공공연하게 “전교조와 붙겠다”고 했고, 이를 거리투쟁으로 끌고나와 지지세력 집결에 성공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보수의 ‘아이콘’이 돼 결국 대통령이 됐다.

보수세력 색깔론에 시달려

박근혜, ‘법외노조’로 만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첫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다.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은 전교조가 법외노조 통보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서자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통해 사건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잊히는 존재, 교육 의제 주도할 비전 제시해야”

전교조 조합원은 2003년 10만명에 육박했지만 최근에는 6만명 수준까지 줄었다. 조합원 연령대도 40~50대와 20~30대 비율이 7 대 3 정도로 노쇠화가 뚜렷하다. 교사 평균연령이 40대를 넘어선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중장년층 조합원 비율이 너무 높다.

젊은 교사들 “강성 이미지”

조합원 6만명 수준까지 ‘뚝’

해직 교사 등 내부 문제 집중

교육 현안 의제에 소홀 지적


젊은 교사들 사이에서 전교조는 잊혀져가는 존재다. 20대 초등학교 교사 ㄱ씨는 “전교조가 가진 강성 이미지도 거부감이 들고, 전교조에 가입해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돼 가입하지 않고 있다”며 “실제 수업이나 연수에 도움이 되는 다른 교사단체들에 더 호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전교조가 투쟁의 목적으로 삼았던 ‘민주교육’이나 ‘학원민주화’ 등 화두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일정 부분 달성되면서 더 이상 젊은 교사들의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법외노조로 묶여 있는 탓에 순수한 ‘노동조합’으로서 조합원을 끌어들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20~30대 교사들의가입이 전보다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전교조가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본다”며 “지도부가 의지를 갖고 변화를 추구한다면 자연스럽게 젊은 교사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비전교조 교사들과의 갈등이 누적되면서 기존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외연 확대에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있다. 한 40대 교사 ㄴ씨는 “나이가 들면서 개인의 승진이나 영달을 위해 전교조를 이용하는 전교조 교사들을 적잖이 봐왔다”며 “요샌 자신이 전교조라고 떳떳하게 밝히는 교사들을 찾아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전교조가 법외노조나 해직 교사 문제와 같은 내부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다보니 시대 흐름과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교조 출신인 한 고위 교육공무원은 “교원노조로서 원활히 활동하려면 일단은 법적 지위가 확보돼야 하니 법외노조 문제에 집중하는 건 이해가 된다”면서도 “다만 너무 합법화 문제에만 매달린 나머지 교육 현안에 대한 의제를 제시하고 이를 선점하는 역할에는 소홀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이 24일 열린 전국교사대회에서 결의문을 통해 새로 꺼내든 화두는 ‘교사의 노동기본권·정치기본권 확보’ ‘쉼이 있는 배움, 삶을 위한 교육’ 등이다. 권 위원장은 “교사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낡은 교육체제를 혁파하고, 성과급제와 교원평가를 폐지시켜 교육 공동체를 지켜낼 것”이라며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교육에서 교육과 삶이 행복한 사회로의 변화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전교조가 새 화두를 내놓긴 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까진 제시하지 않았다. 일단은 법외노조 문제부터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 당분간 ‘투쟁’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권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절차에 돌입한다고 해놓고선 법외노조를 즉각 취소하지 않은 것을 볼 때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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