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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 반대하면 수탁위 나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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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찬진 참여연대 변호사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들을 전원 물갈이해야 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위원들이 재계 측에 서서 스튜어드십 코드 활용에 신중론을 펼쳤다는 이유에서다. 수탁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전담하는 전문가 기구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최근 3차 기금운용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했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주요 주주권 행사가 끝난 직후 열린 회의다. 해당 회의에서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과정을 주도한 수탁위 구성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왔다. 일부 기금위원들은 현재 수탁 위원을 전원 해촉하고 새로운 인물들로 구성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수탁위원 임기는 2년인데 아직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특히 이 같은 요구는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소속 위원들이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일부 수탁위원들이 스튜어드십 코드 활용에 신중한 모습을 취하면서 진보·시민단체가 주장한 주주권 행사에 다소 제약이 있었던 것을 해소하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실제 참여연대 등에서는 국민연금이 한진그룹 오너 일가에 대한 해임·직무정지 요청, 독립적인 사외이사 후보 추천 등 좀 더 적극적인 형태의 주주권 행사를 주문하기도 했지만 수탁위 내부에서 반대 여론이 컸다.

이찬진 참여연대 변호사는 "(수탁자책임전문 위원장과) 국회에서 패널로 같이 토론했던 경험이 있는데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게 (이분의) 학자적 소신이었다"며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해 철학이나 이런 부분들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으로 구성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재 수탁위를 불신임하거나 전원 해촉해 버리고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 역시 "수탁위원들은 (스튜어드십 코드에) 동의하는 위원들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원칙과 세부 기준 준수를 서약하고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갑론을박을 하니 사실상 수탁위 회의가 전쟁터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는 스튜어드십 코드 활용에 소극적인 의견을 보이는 재계 측 추천 위원들을 수탁위 논의 과정에서 전면 배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주장은 기금위 내부에서도 반발을 낳았다.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위원회를 구성할 경우 위원회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본부장은 "정부 위원회 여러 군데에 참여해 봤지만 그 위원회 자체 토픽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만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며 "다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논의하는 것 자체가 위원회로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지적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개인의 양심의 자유도 있을 수 있고 어떤 위원회에 참여할 때 원칙에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무례한 요구일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수탁위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 수탁위원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극적인 활용에 신중론을 보이는 위원들 중 제도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며 "국민연금이 국내시장에서 너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자칫 문제 기업에 대해 여론 재판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래 취지가 주주가치 제고에 있고, 수익률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데 다양한 의견 개진은 정파적인 이해에 대한 견제 장치도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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