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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제품에서 한국산 표시 뺐다" 日진출 기업 '냉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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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전경련 "절반 이상 기업이 한일관계 악화 따른 악영향 호소"…정부 개선 노력·경제계 민간교류 활성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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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38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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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진출한 국내기업 A사는 최근 자사 제품을 홍보할 때 한국산이라는 점을 알리지 않는다. 제품에서도 한국산 표시를 뺐다. 일본 소비자들의 한국제품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K-팝 중심의 한류바람 덕에 한국산 제품이라는 걸 적극적으로 홍보하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라며 "일본 소비자들이 한국제품이라는 걸 알고 집었던 물건을 내려놓는 것을 보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기업의 절반 이상이 최근 한일관계 악화로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주일한국기업 64개사를 대상으로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영향을 설문조사해 발표한 결과다.

◇ 거래처 발굴 곤란·日소비자 인식 악화…"속만 타" = 전경련에 따르면 주일한국기업의 53.1%가 한일관계 악화로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매우 부정적'이라고 답한 기업도 6.2%에 달했다.

특히 신규 거래처와 신사업을 발굴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응답이 37.3%로 가장 많았고 한국산 제품에 대한 일본 소비자의 인식이 악화됐다는 답변도 28.8%에 달했다. 증빙서류 강화 등 일본 정부의 재량권이 엄격해졌다는 답변이 15.3%로 뒤를 이었다.

새로운 먹거리를 끊임없이 발굴해야 하는 기업의 특성상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기업이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사 기업의 31.2%는 매출 감소까지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매출이 20% 이내 감소했다는 기업이 85.0%로 가장 많았고 21~40%에 이르는 기업도 10.0%로 우리 기업의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판매법인 B사는 최근 입찰 성공률이 부쩍 하락하면서 한국산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B사 관계자는 "공개입찰에서 같은 값이면 한국산 제품보다 다른 나라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며 "보이는 피해도 문제지만 이처럼 보이지 않는 피해가 더 아프다"고 말했다.

주일한국 물류업체 C사는 일본 통관 텃세에 최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통관에 필요한 서류를 추가적으로 요구하거나 절차가 지연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C사 관계자는 "항상 해오던 업무였는데 추가 서류를 요청하거나 통관 절차가 기존보다 1~2주 이상 지연되는 경우가 최근 늘었다"며 "답답함을 호소하려 해도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이라 속만 탄다"고 말했다.

◇ "관계개선 기약 없어"…정부·민간 노력 필요 = 이들 기업 관계자들은 더 큰 문제로 이런 상황이 언제 다시 좋아질지 기약이 없다는 점을 꼽는다. 주일한국기업의 53.1%가 향후 한일관계가 지금과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과 봐 현재의 냉각기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관계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응답도 26.6%였다.

양국관계가 개선되는 데 2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응답이 46.0%로 가장 많았고 1년~2년이라는 응답이 42.9%로 뒤를 이었다. 1년 이내에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은 11.1%에 불과했다.

경제계에선 일본의 경제보복이 가시화할 경우 반도체, 스마트폰 등 우리 경제의 주력 품목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 시리즈는 일본의 산업용 장비 제조사 화낙의 절삭기가 없으면 생산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소재 가운데 불화수소는 스텔라, 모리타 등 일본 업체가 독점 생산한다.

기업인들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양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선의지가 가장 필요하다고 봤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67.5%로 가장 높았고 경제계 차원의 교류 활성화(18.8%), 한일간 근본적인 과거 청산(7.5%), 관광 활성화 등 민간교류 확대(6.2%) 등이 뒤를 이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양국이 공동책임 분담의 원칙에 기반한 대안을 마련하고 정치·외교적 갈등이 한일 경제협력에 직접적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피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정책당국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경제계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교류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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