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2703200 0012019052652703200 07 0701001 6.0.14-RELEASE 1 경향신문 0

이모티콘이 ‘전화 공포’ 막아줄까요

글자크기
경향신문

샤이니의 키가 ‘전화 공포증’이 있다고 밝힌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 장면. / KBS 화면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휴대폰에 전화만 오면 가슴이 떨려요. 부모님을 제외하고 모든 전화가 올 때 두려워요.”

지난 3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 키는 자신의 ‘전화 공포증’에 대해 밝혔다. 전화가 걸려오면 받아서 상대방과 대화하는 일이 어려운 정도를 넘어 떨릴 정도라는 것이다. “문자메시지는 오면 생각을 하고 적을 수 있는데 전화는 바로 말을 책임져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전화 공포증 낯설지 않은 젊은 세대



방송을 본 대학생 이모씨(22)는 자신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서 오는 전화는 받아도 아무렇지 않지만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나 사이가 친밀하지 않은 상대가 건 전화는 받을지 말지 고민하다 끊어지는 일이 숱하다. 이씨는 “전화가 끊기고 난 뒤 시간이 좀 지나서 ‘모르고 못 받았다’며 문자나 카톡을 보내는데, 그때는 그렇게까지 긴장되지 않는다”며 “배달주문 전화도 걸기가 어려워서 배달앱으로만 주문한다는 얘기를 하면 자기도 그렇다며 공감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전화 공포증’은 실제 정신질환으로 분류될 정도의 공포증은 아니지만 시대의 특징을 반영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들은 간접적인 인간관계에 익숙하기 때문에 대화 상대나 주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중간에 끊기도 어렵고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는 전화통화의 불편함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관계를 맺으면서 상황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필요로 하지만 전화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전달하는 매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모티콘이 인기를 끄는 배경에도 이렇게 즉각적인 의사소통을 어려워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글로 대화를 이어가면 의사소통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전화통화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실시간 상호작용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글로 표현하기 부족한 감정표현을 이모티콘이 보완해주기 때문에 이모티콘을 선호하는 현상이 더욱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면서도 “이모티콘을 이용한 소통에도 얼굴을 맞대거나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상호작용을 대신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영상통화가 일반화될 정도로 데이터 네트워크가 갖춰진 시대지만 오히려 통화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난 점은 이모티콘의 진화와 무관치 않다. 이미 30대 초반까지의 연령대는 청소년기에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대화하며 자란 ‘엄지족’ 세대다. 더 어린 연령대인 20대 이하로 내려가면 스마트폰과 모바일 메신저가 대중화된 이후 화면으로 보이는 글자와 이모티콘을 통해 소통하는 방식이 일반화돼 있다. 때문에 나이가 어릴수록 대체로 대화나 대면 커뮤니케이션에서 즉각적인 반응과 상황 대처능력이 떨어지게 되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모티콘 시장이 떠오르는 이면의 이와 같은 문제는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잘 드러난다.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7월 전국의 19~59세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모바일 메신저는 음성통화보다 더 일반적인 의사소통 방식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조사됐다. 평소 연락을 주고받을 때 주로 이용하는 방법으로 모바일 메신저(44.9%)를 이용하는 비중이 음성통화(38.1%)에 비해 더 높았던 것이다. 모바일 메신저는 젊은 층(20대 56.3%, 30대 50.1%, 40대 37.2%, 50대 36%)에서, 음성통화는 중·장년층(20대 30.2%, 30대 35.6%, 40대 44.7%, 50대 42%)에서 더욱 많이 이용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직접적 상호작용 줄어드는 부작용 우려도



전반적으로 전화로 목소리를 들으며 대화하는 일이 확연하게 줄어든 점을 넘어 ‘음성통화가 부담스러워 일부러 전화를 피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65.1%를 차지하고 ‘음성통화보다 모바일 메신저로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58.8%에 달한 점은 변화가 모든 연령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음성통화 대신 모바일 메신저를 선호하는 장점 중 ‘동시에 여러 사람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다’(35.7%)는 점에 이어, ‘이모티콘으로 훨씬 풍부한 감정 전달이 가능하다’(28.6%)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혔다. 음성통화에서 글로 쓰면서 이모티콘도 곁들이는 대화로 소통방식이 변하는 양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이러한 현상 자체는 단순한 변화일 수도 있지만 우려할 만한 지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위의 설문조사에서도 음성통화가 감소한 원인으로 ‘음성통화를 부담스러워하는 주변 사람들이 많아졌다’(30.3%),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20.4%)며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을 원인으로 지목한 비율을 더하면 절반을 차지한다. 모든 연령대에서 이 같은 변화에 익숙해지면 상대의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일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일도 모두 어려워져 인간관계에서 근본적인 문제에 맞부딪친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나은영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는 “메신저로 전달되는 글자로는 담기 어려운 말의 억양이나 높낮이처럼 비언어적 표현을 주고받는 데 익숙해지지 않게 되면 상대의 의사와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내 뜻을 제대로 전달하기도 어려워진다”며 “어릴 때부터 직접적인 의사소통에 제한을 경험한 상태에서 자란 세대가 성인이 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 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