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구석기시절부터 살아온 '존 올드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SF영화 '맨 프럼 어스'의 한 장면. 올드먼은 송별회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동료들의 추궁을 당한다. [사진 Youtube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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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말을 잃었다. 황당해하는 동료들에게 그는 자신이 약 1만 4000년 전부터 살아온 크로마뇽인이라고 털어놓는다. 더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탓에 주변 사람들의 의심이 끊이지 않아 10년마다 거처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콜럼버스와 항해하고, 부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를 서구에 전파하려다 예수로 불리게 됐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에 동료 교수들은 화를 내기도 하고, 자신의 전문 지식을 동원해 그의 말을 분석하기도 한다.
이른바 ‘불로불사’의 남자 존 올드먼의 이야기를 담은 공상과학(SF) 영화 ‘맨 프롬 어스(2007)’는 주인공들의 대화만으로 구성됐지만, 흡입력이 큰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영생(永生)이라는 소재가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영화 맨프럼어스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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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세기를 살아온 올드먼 만큼은 아니지만,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과학계의 시도는 현재진행형이다. 국내에서는 ‘노화 세포’ 제거 물질을 찾아낸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연구진의 성과가 대표적이다.
김채규 UNIST 자연과학부 교수는 “노화세포는 나이가 들수록 체내에 축적돼 신체 조직 곳곳에 염증인자를 유발한다”며 “젊었을 때는 면역 시스템이 자연적으로 노화세포를 제거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기능이 떨어진다” 연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특히 노화세포가 만드는 염증인자는 뇌에서는 파킨슨 병과 치매를, 눈에서는 백내장·황반변성 등 노인성 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에 수명에 관여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노화세포는 젊을 때는 면역체계에 의해 잘 제거되지만, 나이가 들면서 면역 기능이 떨어지며 노화세포도 체내에 잘 축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UNIST 연구진은 염증을 일으키는 노화세포를 제거하는 물질을 찾아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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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결과는 당시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발표됐을 뿐 아니라 미국 실리콘밸리의 생명과학 스타트업 기업인 ‘유니티 바이오테크놀로지’에 기술 이전도 완료된 상태다. 김 교수는 “미국 최대의 노화연구소인 ‘벅 노화연구소’에서는 이 물질을 이용해 노인성 뇌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실험도 진행 중”이라며 “퇴행성 관절염에 대해서는 현재 1상 임상연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쁜꼬마선충은 인간과 50%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며 수명이 짧아 수명에 관한 연구에 유리하다. [사진 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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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폴딘-6를 장수 연구에 특화된 예쁜꼬마선충에 적용해 보니 수명이 2배가 늘어났다. 기존 수명이 30일밖에 되지 않은 선충이 약 60일을 살게 된 것이다. 프레폴딘-6가 HSF-1과 FOXO의 연결고리처럼 작용해 두 유전자가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예쁜꼬마선충이 인간과 50%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어 장수 연구에 특화돼있는 생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인간에게도 응용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DAF-2 유전자를 억제함으로써 예쁜꼬마 선충의 수명을 2배로 늘린 UCSF의 신시아 케니언 교수가 TED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Youtube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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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규 UNIST 교수는 “특정 유전자를 조절해 동물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수명 연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향후 이같은 메커니즘을 적용한 기술 개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벌거숭이 두더지쥐는 몸길이 8cm의 볼품없는 외모를 가졌지만, 보통 쥐에 비해 5~10배를 산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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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장수하는 동물을 통해 생명 연장의 비밀을 밝히려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2013년 ‘인간 500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캘리코 사(社)는 지난해 1월 다른 쥐보다 최대 10배까지 사는 ‘벌거숭이두더지쥐’에 대한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이라이프’를 통해 발표했다.
보통 쥐는 약 4년을 살았지만 벌거숭이두더지쥐는 35년 이상을 살았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82.7세인 것을 감안하면 827세까지 사는 인간 종(種)이 있는 셈이다.
캘리코 연구진이 약 3000여 마리의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일생을 관찰한 결과, 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사망 위험률이 전혀 높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나이가 들수록 사망할 확률이 증가한다는 ‘곰퍼츠의 사망률 법칙’을 따르지만,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경우 30세 이후 8년마다 2배씩 늘어나는 사망 위험률이 두더지쥐에서는 1만분의 1로 일정하게 유지됐다.
벌거숭이 두더지쥐가 장수하는 것은 단백질이 완벽하게 접히도록 돕고, dna를 신속하게 회복하도록 하는 '샤프롱단백질' 덕분인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서울대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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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진행한 로셸 버펜스타인 박사는 당시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노화의 징후가 거의 없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며 “장수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있어 특별히 중요한 동물”이라고 밝혔다.
노인에게 젊은 피를 수혈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스타트업 '암브로시아'의 광고. 그러나 지난 2월 이같은 서비스는 임상적으로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미국 식품의약처에 의해 금지됐다. [사진 암브로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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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하버드대 연구진 역시 비슷한 연구를 통해 “젊은 쥐의 혈액 속에 있는 GDF11을 늙은 쥐의 피에 넣어주자 근육의 힘이 세지고, 새로운 혈관이 잘 형성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위 두 연구는 각각 네이처 메디슨과 사이언스에 발표되기도 했다.
이 같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암브로시아’라는 스타트업이 창업됐다. 2017년 11월의 일이다. 창업자인 제시 카마진(34)은 16~25세의 젊은이들에게서 매입한 혈액에서 혈장을 분리해 리터당 8000달러(약 950만원)에 제공했다. 그가 스탠퍼드 의대 재학시절 참여한 관련 연구와 암브로시아가 자체 진행한 임상시험의 효과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식품의약처는 지난 2월, 암브로시아의 이런 혈장 주입 행위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일부 연구들에서 ‘젊은 피 수혈’의 효과가 미미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안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당시 블룸버그를 비롯한 외신에 따르면, FDA는 성명서를 통해 “치료 또는 예방을 위해 젊은 사람들의 혈장을 주입하는 것은 입증된 임상적 이득이 없을뿐더러 어떠한 혈장 제품일지라도 사용과 관련된 위험이 있다”라고 밝혔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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