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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 선동에 불안심리만 키운 리디노미네이션 추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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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PB "유튜브 보고 금·실물자산 묻는 고객 늘어"

경제수장들 "검토 안해" 선긋기에도 불씨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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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정수연 기자 = 정부와 통화당국의 거듭된 전면 부인에도 불구하고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화폐단위 조정) 추진설과 관련한 추측과 불안 심리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모습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한 나라의 통화를 실질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 단위를 일정 비율로 낮추는 조치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화폐단위 명칭 변경이 수반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천원을 1환으로 바꾸는 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통화 중 달러당 통화가치가 4자리 수인 통화로는 원화가 유일하다 보니 리디노미네이션은 관계 당국자의 언급이 있을 때마다 뜨겁게 회자하곤 하는 이슈였다.

앞서 리디노미네이션 이슈가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때는 2004년이다. 불씨를 댕겼던 것은 박승 당시 한국은행 총재였다.

박 전 총재는 200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화폐제도 개선 문제는 선진국 진입을 위해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한은 금융망을 통해 한 해 거래되는 금액이 경(京) 단위를 넘어섰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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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퇴임 후 낸 회고록에서 2002년 취임 직후 한은 내부에 화폐개혁 추진팀을 꾸려 리디노미네이션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한은이 검토한 화폐개혁안은 5만원권을 도입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정부가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선 실익 대비 불확실성에 따른 부작용이 너무 크다며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이 최근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지난 3월 25일 이주열 한은 총재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한번 논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하면서부터였다.

이 총재는 "질문에 대한 원론적 차원의 답변이었다"고 진화했지만, 이달 중순 리디노미네이션과 관련한 국회 정책토론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를 둘러싼 관심도는 최고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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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5일 국회 기획재정위 업무보고에 참석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은은 지난 2016년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의 기대효과로 계산·지급의 편의성과 원화의 대외 위상 제고 등을 든 바 있다.

부작용으로는 ▲ 새로운 화폐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불편 ▲ 경제 주체의 심리적 불안감 확산 ▲ 화폐 교체에 따른 비용 발생 ▲ '메뉴비용' 등에 따른 물가상승 개연성을 꼽았다.

메뉴비용이란 재화나 서비스의 판매가격을 조정하는 데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말하는데, 통상 기업들은 메뉴비용을 고려해 가격을 자주 조정하는 대신 한 번 올릴 때 크게 올리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리디노미네이션의 영향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가 있기도 전에 불안 심리만 널리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리디노미네이션의 실익과 부작용에 대한 차분한 분석과 논의보다는 정치적 선동이나 투기심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콘텐츠가 난무하며 불안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 뱅커(PB)는 "유튜브 등에서 리디노미네이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선 불안감을 느끼고 금이나 달러, 실물자산에 관심을 보이는 고객들이 많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중에 불안 심리가 커지자 경제수장들은 앞다퉈 리디노미네이션 논의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이 총재는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은 기대효과는 있으나 그에 못지않게 부작용도 많기에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 "엄중한 경제 현실을 고려할 때 지금은 경제의 활력과 생산성 제고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신중론을 강조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같은 날 "정부가 경제활력을 높이기 위해 전력투구해야 하는 입장에서 지금 리디노미네이션을 논의할 단계는 전혀 아니다"면서 "정부는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두 수장의 강력한 부인 발언에도 리디노미네이션을 둘러싼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홍 부총리는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에 대해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하며 거듭 사태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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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경제수장들의 잇따른 진화 발언에도 불안 심리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데 대해 "지하경제 규모가 너무 커졌고 저물가가 계속되다 보니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하기에 시기적으로 적절한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리디노미네이션이 단행됐다. 1953년에는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100원을 1원으로, 1962년에는 경제개발 재원 확보를 위해 10원을 1원으로 조정한 바 있다.

두 차례의 리디노미네이션은 당시 정치·사회적 특성상 모두 공론화 없이 전격적으로 단행된 이력이 있다.

달러와 유로 등 주요국 통화 대비 원화의 액면 가치가 1천분의 1을 밑돌면서 국격과 편의성을 위해 화폐 단위 조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경제전문가 사이에선 리디노미네이션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리디노미네이션의 편익을 인정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일어날 불확실성과 혼란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쉽게 가늠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화폐 단위 변경에 대비해 설비투자 확대 등 일시적인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런 이유로 리디노미네이션을 검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SG) 이코노미스트는 "터키나 베네수엘라 등 리디노미네이션을 했던 국가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나라들"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이를 추진하면 공연히 긁어 부스럼만 만드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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