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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판다]'권리금은 평생 건물주 책임' 대법원 파격 판결 어떻게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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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라 기자의 판결 다시보기



최근 대법원의 권리금 판결 후폭풍이 거셉니다. 지난 16일 대법원은 부동산 업계를 뒤흔들 새로운 원칙을 정립했는데, 요약하면 ‘임대차 기간과 상관없이 건물주가 임차인들간 권리금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겁니다. 앞으로 건물주가 임차인을 쫓아내려면 적어도 그가 손해본 권리금은 돈으로 보상해줘야 합니다.

관련 기사에는 수 천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건물주는 구경도 못해본 권리금을 보상하게 생겼다”부터 “이제 건물주가 을, 임차인이 갑이다” 등 비판이 대다수입니다. 한편 “건물 재건축 등 사정이 있으면 어떡하냐” “항상 월세를 연체하는 ‘악덕 임차인’도 보호해줘야되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대법원이 획기적인 판결을 내리기까지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요. 하나하나 짚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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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원에서 억대에 달하는 권리금. 보호해야 할 가치일까, 거품에 불과할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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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이 된 김모씨는 2010년 10월~2015년 10월까지 5년 동안 공모씨의 건물에서 횟집을 운영해왔습니다. 그동안 2차례 계약을 연장했지만 5년 이후에는 건물주가 건물을 비워달라고 하면 나가야 합니다. 법에서 건물주가 임차인을 마음대로 쫓아내지 못하도록 ‘계약 갱신 요구권’을 5년까지 보호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부터 이 기간이 10년으로 늘었습니다.

김씨는 계약 만료 직전 다른 사람에게 권리금 1억 4500만원을 받고 음식점을 넘기기로 했습니다. 그는 새 임차인과 권리금 계약서까지 써놓은 상태였는데, 건물주 공씨가 뜻밖의 통보를 합니다. 건물이 25년이나 됐으니 재건축을 해야 한다며 새 임차인이 들어오는 걸 거절한 겁니다. 억대의 권리금이 물거품이 될 상황입니다.



2015년 '합법'된 권리금, 근데 기한은 언제까지?



마침 그 해에 부동산 업계에는 엄청난 변화가 불어옵니다. 기존까지 불법이었던 권리금이 ‘합법’으로 바뀐 겁니다. 상가임대차법에 ‘임대인은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추가됩니다. 건물주가 계약을 연장 안해주는 것도 일종의 방해로 치기 때문에, 김씨도 이 규정에 기대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 법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습니다. 바로 기한을 명확히 안 정해 놓은 겁니다. 아까 법에서 딱 ‘5년(지난해부터 10년)’까지만 건물주가 의무적으로 계약을 연장해줘야 한다고 한 걸 기억하시나요. 그럼 권리금 보호 책임 역시 5년 또는 10년까지만 져야 하는 걸까요?

만일 그렇게 되다면 많은 자영업자들은 억울해 할 겁니다. 3,4년 영업하고 재빨리 이사하는 업주들은 권리금을 회수하고 나가는데 오히려 한 자리서 오랫동안 상권을 조성해놓은 ‘토박이’들은 권리금을 못 받게 되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건물주가 평생 권리금 보호 책임을 진다면 어떨까요. 계약 갱신 요구권에 대해 5년, 10년 기한을 정해놓은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반발이 나올만 합니다.

일선 법원도 큰 혼란을 겪어왔습니다. 판사들마다 ‘권리금 회수 보호 조항’의 적용 기한을 각자 다르게 해석해서, 오늘은 건물주가 승소했는데 내일은 임차인의 손을 들어주는 상황이 벌어진 거죠. 김씨 사건은 이런 시점에서 대법원 판단의 첫 시험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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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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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2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권리금 보호 기간을 김씨의 ‘계약 갱신 요구권이 소멸된 5년까지’로 해석했습니다. 그 뒤에도 건물주가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없다면 “건물주의 재산 사용ㆍ수익 권한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그 결과 계약 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내걸게 돼 임차인만 불안정해질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계약 갱신 요구권 기한을 5년 또는 10년으로 정한) 상가임대차법 제10조 2항의 취지를 무시해버리는 것”이라는 우려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도 건물주가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의무를 부담한다”며 반대로 해석했습니다. 한 가게의 신용ㆍ거래처ㆍ고객 등 ‘권리금’으로 대변되는 무형의 가치는 오래도록 지속되는 법인데, 이를 5년ㆍ10년 기준으로 딱 잘라 없애버릴 수 없다는 거죠. 상권이 망해버리는 등 권리금의 가치가 소멸되지 않는 이상은 건물주가 이를 기한 없이 보장해줘야 한다고 못박은 겁니다.

건물주가 그다지 손해를 입는 것도 아니라고 봤습니다. 법에서는 재건축이 정말 시급할 때나, 임차인이 월세를 3개월 이상 연체하는 등 불량한 태도를 보이면 언제든지 계약 연장을 거부하도록 ‘예외’를 인정해주기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영업을 보장하려는 ‘계약갱신 요구권’과 반영구적으로 존재하는 무형의 가치를 보호하는 ‘권리금 회수 보호 조항’은 그 목적이 달라 서로 충돌되는 제도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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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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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선고 전 ‘권리금 제도’를 본질적으로 보호하는 게 맞는지 고심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 조사 결과 우리나라 권리금 평균이 서울 기준 3280만원이었는데, 지나치게 거품이 많이 끼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다만 권리금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기형적인 제도는 아닙니다. 영국은 ‘영업권(goodwill)’이라는 이름으로 보호하고 있고, 미국과 프랑스도 비슷한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대법원도 그 가치를 인정하되, 현재 60%대에 불과한 권리금 회수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것으로 권리금 논쟁이 종결된 건 아닙니다. 권리금을 대법원 판단대로 사실상 ‘평생’ 보장해주는 게 맞는지 학계에서도 논란이 뜨겁습니다. 극단적으로 보면 건물 무너지기 전까지는 건물주가 자기 건물 임차인도 마음대로 못 고르는 셈인데, 헌법상 재산권 침해로 위헌 소송이 잇따를 거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실제로 공씨를 대리한 신용석 변호사는 “파기환송심에서 상가임대차법 권리금 회수 보호 조항에 대해 최초로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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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 상점. 대법원은 영국판 권리금인 'goodwill'제도가 더욱 확대되어온 사례를 참조했다고 한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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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사건엔 다른 쟁점도 남아 있습니다. 1심과 2심은 단지 5년 기한 문제만 가지고 건물주 손을 들어준 게 아닙니다. 앞서 언급했듯 건물주에게도 계약 갱신을 거절할 몇 가지 예외 사유가 존재하는데, 1ㆍ2심은 김씨가 그 사례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그가 주선한 새 임차인이 제대로 가게를 운영할 능력이 되는지 아무 정보를 건물주에게 넘기지 않았고, 월세도 몇 차례 연체했으며, 심지어 김씨가 옆 건물에서 다시 가게를 열었다는 숨겨진 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씨 주장대로 정말 급박한 재건축 필요성이 있는지도 확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대법원은 이런 점들에 대해선 결론짓지 않았기 때문에, 네 번째 재판인 파기환송심에서 승패가 다시 갈릴 수도 있습니다. 복잡한 권리금 제도.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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