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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사무관이 쓴 ‘김앤장→대법원→외교부’ 메모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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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④ 박근혜 외교부와 강제징용 재판 지연

일본 전범기업의 책임 인정한

일제 강제징용 손배 소송

대법원 최종 판결 지연하려고

대법원-외교부-청와대 3각 커넥션

김앤장이 의견서 필요성 제기하면

대법원이 외교부에 요청 ‘쿠션’ 구상

외교부·청와대 전·현직 12명

“판결 번복 의도 없어” “기억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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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 법관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법정에 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진실을 밝히고 유무죄를 따지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법정 르포의 방식으로 ‘사법농단 재판’을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2012년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외교부에서는 반드시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가면 (재판을 늦출) 희망이 있는 것이고, 아니면 끝나는 것 아니냐,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김인철 당시 외교부 국제법률국장)

“당시 전원합의체 회부를 전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외교부가 회의한 건 아니라는 건가요?” (검사)

“네, 그렇죠. 교황의 일은 교황의 일이고, 시저의 일은 시저의 일인 것처럼요.”

지난 9일 ‘사법농단’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인철 당시 외교부 국제법률국장(현 외교부 대변인)과 검사의 신문 내용이다. 그는 재판은 철저히 법원의 영역이라는 의미로, ‘교황(법원)은 교황의 일을 하고, 시저(외교부)는 시저의 일을 해야 한다’는 표현을 썼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외교부·청와대 ‘최고위층’ 공무원들도 같은 취지로 대답했다. 외교부가 의견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대법원 재판 결과에 영향을 끼칠 의도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사법농단’ 관련 재판에서 진도가 가장 빠른 임 전 차장 재판에선 과거 박근혜 정부 당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재판(이하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둘러싼 공방이 한창이다. 임 전 차장 공소장 제일 첫머리에 등장하는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은 사법농단 사태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준다.

2012년 5월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 원심을 파기했다. 이 사건은 서울고법에 갔다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왔지만, 지난해 10월까지 5년간이나 최종 결론을 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이 당시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을 도입하고 법관의 해외 공관 파견을 확대하기 위한 지렛대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활용하려 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갖고 있던 청와대를 위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처리를 뒤로 미루는 한편, 대법관 13명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맡겨 판결 번복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교부가 대법원 심리에 참고할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 지연은 대법원과 외교부, 그리고 청와대로 이뤄진 ‘삼각 커넥션’이 만든 결과물인 셈이다.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싶었다”

전·현직 판사들에 이어, 지금까지 8명의 전·현직 외교부 관료와 4명의 전직 청와대 관계자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의 증언, 당시 작성된 업무일지, 메모, 내부 문건도 퍼즐 조각처럼 법정에서 흩어졌다. 그 조각들을 하나둘 맞춰보면 과거 5년 동안의 전후 맥락이 드러난다.

사건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그해 11월 박준우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은 “대법원을 접촉해 (최종) 판결을 늦춰야 한다”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청와대나 국무총리실은 소문이 날 수 있으니” 외교부가 나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외교부는 “재판이 조기에 선고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달라”는 요구사항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했고 그에 따라 대법원은 2015년 1월 민사소송규칙을 고쳐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를 도입했다. 외교부 의견을 대법원 판결에 반영할 수 있는 길을 닦은 것이다.

2015년 6월 정아무개 당시 외교부 국제법률국 국제법규과 사무관의 업무일지를 살펴보면, 외교부가 구상한 의견서 제출 방식을 가늠해볼 수 있다. 정 사무관은 아래에서 위를 향해 대각선 방향으로 흘려 쓴 글씨로 이렇게 적었다. “임종헌, formula(포뮬러·공식이라는 뜻) 따르겠다, COU 쿠션.” 정 사무관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쿠션(cushion·완충 작용)’을 영어로 쓰려다가 철자가 헷갈려서 다 적지 않고 한글로 마저 적었다고 한다. 상급자 말을 키워드로 추려 급히 받아적다가 생긴 자연스러운 오기로 볼 수 있다. “(일본 전범기업 대리인인)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먼저 (의견서 제출 필요성을) 제기하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서 외교부에 보내면 외교부가 의견서를 제출한다는 것이다. 그 방식이 쿠션 같아서 (그렇게) 적었다”는 설명이다. 같은 달 작성된 “k&c(김앤장을 뜻함) → 대법원 → 외교부”라는 메모도 같은 의미로 설명했다.

그러나 그해는 정부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전력을 쏟아부을 때로, 강제징용 사건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가 의견서 제출 시기와 방식, 파장에 대해 고민하며 의견서 제출을 주저했다고 한다. 2015년 11~12월 황준식 당시 국제법률국 국제법규과장이 남긴 메모지도 그런 흔적이 남아 있다. “한상호 변호사, 장, (중략) 위안부 타결 이후, 로펌 얘기가 빨리하자는 것, 공개되니까 비판, 대법원이 우리 거 받아먹고 판결 안 나오는.”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의 말을 받아적은 것이라고 황준식 과장은 검찰과 법정에서 진술했다. 그의 메모 내용을 풀어보면 이렇다. “강제징용 사건은 ‘위안부’ 합의 타결 이후 처리하면 좋다. 그런데 김앤장 로펌에서 빨리하자고 재촉한다. 외교부가 한일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고 이것이 공개되면 여론 비판받을 수 있다. 대법원이 외교부 의견서를 받고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 대한 판결을 바꾸지 않으면 외교부만 욕먹는 것 아니냐.”

외교부가 이러한 고민으로 의견서 제출을 차일피일 미루자, 이듬해 9월29일 임 전 차장과 이민걸 당시 기획조정실장은 외교부 인근으로 찾아가 의견서 제출을 독촉하기까지 했다. 그날 관련 회의에 처음 참석한 김아무개 당시 외교부 사무관은 ‘회의감’이 들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변호사이기도 한 김 사무관은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는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려는 외교부가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의견서를 제출한다고 해서 법원이 외교부와 상호협의할 리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이유로 “계란에 바위 치기”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회의에 참석한 뒤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법원의 이미지랑 많이 달랐다.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싶었다. 법원과 외교부가 이른바 ‘쌍방향’ 소통하는 자리였고, 제 기본 관념이 무너지는 자리였다.” 두 달 뒤 외교부 의견서가 대법원에 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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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기보다 무능해보이길 선택

임종헌 전 차장은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가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주기 위해 도입된 것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리고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의사는 없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증인으로 나온 외교부·청와대 ‘최고위층’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판결 번복 의도는 없었다”고 강하게 항변하면서도 당시 구체적 정황을 물으면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는 점이 의아했다.

지난 14일 출석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윤 전 장관은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정부 쪽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청와대와 공유한 보고 라인의 핵심이다. 2013년, 2014년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차한성·박병대 당시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이 차례로 참석한 ‘소인수회의’의 멤버이기도 했다. 황준식 당시 국제법률국 국제법규과장이 “대통령 비서실장이 장관과 대법관을 불러서 회의했다고 해서 놀랐다. ‘그런 식의 회의가 가능하냐’는 질문을 했다”고 할 정도로 이례적인, 있어서는 안 될 형태의 회의였다. 하지만 윤 전 장관은 소인수회의에 참석한 사실은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박병대 전 대법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소한 질문조차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윤 전 장관은 결국 재판부와 입씨름을 했다.

“신영철 대법관 퇴임기념 논문 헌정식 당시 박병대 대법관을 알았다는 건가요, 몰랐다는 건가요?” (배석판사 송인석 판사)

“헌정식 때는 2차 소인수회의가 열린 뒤이기 때문에 아마 제가 박병대 대법관 얼굴을 안 상태였다고 생각됩니다.” (윤병세 전 장관)

“박 전 대법관을 알았을 것이라고 ‘기억’이 아니라 ‘추측’하는 것인가요?”

“2차 소인수회의 때 제가 참석했고, 박 전 대법관도 참석해서 정확히 기억은 못 하지만 아마 알았을 것입니다.”

“증인이 기억을 되살리게 된 경위를 다시 한 번 말씀해주세요.”

“검찰 조사과정에서 관련 문건을 보여줘서 기억을 반추해 생각해보니, 일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렇지 않을까 했던 것입니다.”

“그럼 기억을 하는 건 아니네요?”

“일정에 들어가 있지 않아서 2차 회의가 있었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열린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자료에 의한 생각을 묻는 게 아니라, 증인의 기억을 묻는 겁니다.”

“그 기억은 제가 정확하게 없기 때문에….”

‘알고 있다’, ‘기억한다’고 인정하기보다는 무지하거나, 무능하길 택했다. 지난 13일 증인으로 나온 김규현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마찬가지다. 김 전 수석은 청와대가 ‘정부 입장과 배치된다’던 2012년 대법원 판결도 읽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배석판사인 김용신 판사가 “대법원 판결을 읽어본 적이 있냐”고 묻자 “없다”고 답했다. “청와대 외교 안보 수석에 이르기까지 대법원 판결 쟁점 중 하나가 일본 판결의 승인 여부라는 점을 들은 적도 없습니까?”라고 물어도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봅니다”라고 답했다. 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려 했던 김 판사는 “외교안보수석까지 지내셨으니까 당연히 아시리라고 생각하고 여쭤보려 했다”고 난감해하며 2012년 대법원 판결의 쟁점을 기초부터 설명해야 했다.

박근혜 “개망신 안되도록 해라”

‘교황은 교황의 일을 하고 시저는 시저의 일을 한다’고, 사법부는 사법부의 일을, 행정부는 행정부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지난 7일 재판에 출석한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대법원을 접촉해 대법원 판결을 늦춰야 한다고 건의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을 최대한 늦추는 것을 승인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최종 확정돼) 개망신 안 되도록” (김규현 전 수석 업무일지 중 2015년 12월26일치 메모)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외교부에 거듭 지시했다. 검찰은 그런 청와대와 외교부가 단순히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것을 넘어서, 판결 결과까지 번복하려 했다고 본다. ‘지연’이든, ‘번복’이든 청와대와 외교부가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주려 했다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이날 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박 전 수석에게 물었다.

“‘판결을 늦추도록 해야 한다’ 고 발언한 게 사실입니까?” (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

“네 그렇습니다.” (박준우 전 정무수석)

“외교부 등이 대법원과 접촉하면 판결을 늦출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외교부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증인은 외교부가 대법원을 접촉해 판결을 늦추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한 것 아닌가요?”

“제가 사법… 그거를 몰라서, 외교부가 한다고 판결을 당기거나 늦추거나 할 수 있다는 지식은 없습니다. 외교부가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 시간을 벌어서 한일관계를 심층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다급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외교부가 노력하면 대법원 판결을 늦출 수 있습니까?”

“그건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외교부가 대법원을 접촉해서 판결을 늦추도록 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사실이라 했지요? 삼권분립의 원칙이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까?”

재판장의 마지막 질문에도, 박 전 수석은 “그렇기 때문에 소관 부처(외교부)가 그런 의견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답했다. 외교부가 하든, 청와대가 하든 삼권분립 침해이고, 재판상 독립 침해이지만 박 전 수석은 끝까지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겠다’는 식이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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