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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반도체 노동자…‘산업 역군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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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새로운 애국가 배경영상을 공개했습니다. BTS 공연 장면이 들어가서 화제가 됐었죠.

다른 애국가 배경영상이 그러하듯 우리나라의 자랑거리가 한가득입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씩씩한 군인, 환호하는 스포츠 스타, 민주화 운동의 기억도 담겼습니다.

그리고 3절, 어김없이 반도체 공장과 방진복 차림의 반도체 노동자가 등장합니다. 반도체야말로 대한민국 1등 특산품이라는 자부심을 담은 거겠죠.

아마 대부분은 이 영상을 보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떠올릴 겁니다. 그런데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혈액암에 걸린 노동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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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배경영상에 등장한 반도체 공장과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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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외쳤지만 외면당한 세월

2007년, 반도체 노동자들이 암에 걸려 쓰러지는 문제가 처음 공론화됐습니다. 삼성전자 기흥 공장에서 일하던 23살 황유미 씨가 혈액암으로 숨지면서부터입니다.

그날 이후 반도체 공장 화학물질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주장이 계속됐습니다. 그러나 기업은 외면했고 국가도 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미 씨가 숨진 지 12년 만인 5월 22일, 반도체 노동자들의 주장이 맞다는 정부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연관기사]
①“반도체 근로자, 혈액암 사망 위험 최고 3.7배”…10년 만에 공식 인정
② “이제 겨우 한 발자국”…“희귀암, 하청근로자도 조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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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현직 반도체 노동자 20만 명을 10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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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발표 뒤 조사대상 6개 업체에 연락해봤습니다. 이번 결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보상계획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대기업 2곳은 피해자 보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작업환경과 발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고 도의적 차원이라고 합니다. 다른 기업들은 내놓을 입장이 없다거나, 끝끝내 전화를 피하거나, 아예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다들 잊어버린 일일지 몰라도 저희한테는 너무 큰 소식이거든요

신발장과 짐이 빼곡한 고시원 계단을 걸어올라 5층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서울 사당동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이곳이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 '반올림'입니다.

상임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는 "피해자들이 주장해왔던 게 연구결과에 그대로 담겨있잖아요" 라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습니다.

연관성을 인정한 정부 공식 조사가 나왔으니 이제 끝난 걸까요? 이종란 노무사는 이제 시작이라고 합니다.

피해자는 아직도 무엇 때문에 암에 걸렸는지 모른다

이번 조사에서 정부는 어떤 물질이 정확히 암을 유발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오래전 자료를 확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종란 노무사도 이 부분이 답답합니다.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서만 800여 가지 화학물질들이 클린룸(반도체 생산 작업장)에서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중에 45%나 되는 물질이 영업비밀로 감추어져 있고요. 문제가 심각합니다."

어떤 물질이 사용되고 있고 그중에 무엇이 문제인지 밝혀내지 못하면, 노동자 피해는 반복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업들은 화학물질 노출치가 관리 기준 이하라서 문제가 없다는 식이에요. 그런데 직업병 문제들은 바로 그 관리 기준 이하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거든요. 기업들은 관리기준 이하라면서 직업병이 아니라고 발뺌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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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사무실 옆 작은 방에 마련된 故 황유미 씨 추모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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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도 위험의 외주화...클린룸 속의 김용균

이번 조사에서 빠진 반도체 하청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청 노동자들은 유독물질을 이용한 세정 등 고위험 작업을 주로 맡습니다. 물론 클린룸에도 들어갑니다. 위험에 노출된 건 정규직원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하청이라는 이유로 안전관리는 허술해집니다. 이종란 노무사는 "하청업체 노동자를 위한 안전 투자는 열악하다, 그래서인지 2010년 이후에 하청업체 노동자들도 암에 걸렸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2011년 이후 혈액암 발생이 줄었다는 이번 조사 내용을 두고, 작업환경이 개선돼서 앞으론 문제없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하지만 반올림은 이런 해석을 경계합니다. 암 발병 위험이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다 떠넘겨진 것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또 위험의 외주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하청업체 직원 김용균 씨 사연을 취재할 때의 먹먹함이 다시 느껴졌습니다.

반도체 사랑에 빠진 나라, '산업 역군의 눈물'

온 국민이 반도체를 외칩니다. 반도체 수출이 줄어서 나라 살림이 어려워진다고 걱정입니다. 정부는 차세대 3대 주력산업으로 비메모리 반도체를 선정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 참석했습니다. "(삼성의) 원대한 목표 설정에 박수를 보내며 정부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힘을 실었습니다. 앞서 SK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준공식에도 참석했습니다.

반도체로 돈을 버는 재벌 총수들은 청와대에서 농을 주고받을 정도로 분위기가 유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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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청와대 회동. 이재용 부회장이 반도체 경기가 어렵지만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올 것이라고 말하자 최태원 회장은 “삼성이 이런 얘기하는 게 제일 무섭다”며 농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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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가 삼성전자 취업을 보장하는 반도체 학과를 신설하겠다고 하자 학부모들의 시선이 온통 여기로 쏠립니다.

반도체에 대한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조금이라도 떼어서 반도체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어떨까요.

9시뉴스 보도가 나간 뒤 "삼성이 망하길 바라는 거냐", "삼성이 공장 옮겨서 나라 망하길 바라냐" 는 반응이 유독 많았습니다.

'산업의 쌀'이라는 반도체, 남의 집 귀한 아들·딸의 목숨과 바꾼 거라면 맛있게만 먹을 수 있을까요? 반도체가 국가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은 만큼, 반도체 근로자들에게도 안전한근무 환경, 정확한 피해 실태 조사가 우선돼야 합니다.

변진석 기자 (lam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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