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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빵점짜리' 여행, 자꾸만 마음이 간다[체헐리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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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지난해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안다며, 공감(共感)으로 서로를 잇겠다며 시작한 기획 기사입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자식 같은 기사들이 나갔습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땐 설레기도 했고, 소외된 이에게 200여통이 넘는 메일이 쏟아질 땐 울었습니다. 여전히 숙제도 많습니다. 그래서 차마 못 다한 이야기들을 풀고자 합니다. 한 주는 '체헐리즘' 기사로, 또 다른 한 주는 '뒷이야기'로 찾아갑니다. 

[계획도, 준비도, 정보도 없이, 생전 처음 들어본 바다로…모르니까 더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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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와온(臥溫) 해변에 누워,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봤다. 누울 와(臥)에 따뜻할 온(溫), '선착장에 등을 대고 누우면 누구나 따뜻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그 뜻은 정작 여행에서 돌아온 뒤 검색하고 나서야 알았다. 스마트폰을 두고 갔기 때문에./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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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4일 밤 10시. 현관에 신발을 고이 벗어 놓았다. 그제야 여행이 끝났단 실감이 났다. 여행지(地) 어디선가 묻은, 흙먼지가 졸졸 따라와 있었다. 치우지 않고 잠시 그대로 뒀다. 그것 또한 여행의 여운(餘韻)이었다.

15시간쯤 숨 죽이고 있던 스마트폰을 켰다. 뒤늦게 확인한 메시지들에 답장을 했다. '오늘 스마트폰을 두고 여행을 다녀왔다. 답장이 늦어 미안하다'고. '그랬구나'란 맞장구와, '잘 다녀왔냐'는 물음과, '고생했다'는 격려를 본 뒤에야 미안했던 맘이 놓였다.

씻으러 들어가 옷을 벗고 나니 켜켜이 쌓인 여행의 흔적들이 드러났다. 와온(臥溫) 해변 바닷바람이 휘감아 남긴 몸의 짠내와, 순천만 정원 햇볕 덕에 그을린 팔과 목덜미, 그리고 사서 고생하느라 등에 말라 붙은 땀까지. 아직 찬물은 시린 5월이라, 미지근한 물로 개운하게 다 쓸어 내렸다.

"여행은 어땠느냐"는 아내의 말에 "그냥 좋았다"며 웃고 말았다. 그러자 "기사 쓸만한 게 있겠냐"는 물음이 이어졌다. 취재가 맘처럼 안됐을까 걱정하는 그 마음이 따뜻했다. "괜찮다"고 안심시킨 뒤, "바다를 보는데 '같이 왔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치?"하며 서로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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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서 부둥켜 안고 있는 이들의 사연이 궁금해졌다./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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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 편히 누워, 그날 다녀온 '전남 순천'이 어떤 데인지 검색했다. 꼼꼼이 찾고 계획을 짠 뒤 여행을 떠났던, 평소 순서와는 완전 거꾸로였다. 찾아보니, 명소(名所)며, 카페며, 맛집이며, 이런 것들이 촘촘히 떴다.

잠깐, 지난주 기사를 못 봤던 독자를 위해 설명하면, 여긴 서울역에 가서 즉흥적으로 정한 여행지(地)였다, 서울역 직원 추천으로. '와온 해변'이 좋단 말에, 무작정 전남 순천으로 향했다. 처음 들어보는 그 해변의 동글동글한 발음이 그저 좋아서. 그만큼 계획도, 준비도 없이 갔다. 스마트폰도 두고 갔다. 최소한의 정보도 없이. 그저 사람에게 묻고, 기대고, 발길 닿는 대로 따라 갔었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집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그날 했던 여행은 '빵점짜리'였다. 순천에 도착해 점심으로 먹은 간장게장 식당은 검색해도 잘 안 나왔고, 특산물이 '짱뚱어'인줄도 몰랐으며, 맛집과 카페는 가까이 머물렀음에도 가뿐히 스쳐지나갔다.

뭣보다 그날 순천을 찾은 가장 큰 이유였던, '와온 해변'은 글쎄 일몰이 무척 예쁜 곳이란다. 전혀 몰랐다. 해가 아직 쨍쨍한 오후에 와온 해변에 갔다가, 해가 지기 전인 저녁 6시21분 기차를 타고 돌아왔으니. 이 무슨 바보 같은 여정인가. 기막힌 일몰 사진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기억에 오래 남았다. 떠나온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그 곳에 계속 마음이 간다.

빼곡히 기록했던 취재수첩을 안 보고도 기사를 썼다. 평소 같으면 어려웠을 일이다. 그만큼 생생했다. 입석 열차의 공기와, 순천만 햇볕의 온도와, 투박스럽게 달리던 버스와, 차창 밖으로 스쳐갔던 시골 길과, 배를 보이고 낮잠을 즐기던 누렁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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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여행 다니니, 홀로 셀카 놀이. 전남 순천만 정원에서./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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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설레었다. 상대방 사진을 안 보고, 소개팅을 나간 것처럼.

특히 와온 해변에 갔을 때. '와온이 대체 무슨 뜻일까' 무척 호기심이 일었다. '누울 와(臥)'에 '따뜻할 온(溫)'일 거라 제멋대로 짐작하고, 부두에 누웠다. 그러니 해변 이름과 비슷하게, '안온(安穩: 조용하고 편안)'해졌다.

집에 와 검색해보니, 신기하게도 그 뜻이 맞았다. 새로 안 것도 있었다. 마을이 '소가 누운 형상'이라 와온 마을이라 한단다. 그리고 '선착장에 등을 대고 누우면, 누구나 따뜻한 사람이 된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담아온 추억이 좀 더 특별해졌다.

계획도, 준비도, 정보도 없었던 여행은 그리 끝이 났다. 첨엔 헐벗은듯 불안하고 낯설었다가, 다니면서 궁금해하고 상상했고, 돌아와선 편안하고 특별해졌다.

기사가 나간 뒤엔 이에 공감해주는 독자들의 여행기(記)를 보며, 또 한 번 웃고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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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에서 만난 신기한, '신기' 버스정류장./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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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독자는 "어렸을 때 가족여행 떠나면 길도 헤매고 중간에 차 세워서 전국 지도도 봤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아빠에게 '택시기사에게 길 물어보자' 하면 '남자의 자존심'이라며 끝까지 버텼다"고.

2년 전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는 독자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무작정 갔는데, 숨겨진 고대유적으로 통하는 듯한 계단이 있었다"며 "거기서 본 작은 호숫가의 에메랄드 빛 물과, 원시적인 바위 모습이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 섬세한 독자(네이트 아이디 siwa****)의 댓글까지 충분히 덧붙이고 싶다. "이젠 안전의 수단도 되는 스마트폰이기에, 어딘가 갈 때는 자신의 행적을 꼭 알리는건 필수일 것 같아요! 행여라도 가족, 친구에게 걱정이 되면 안되니까요^^"

이 고마운 댓글을 본 뒤 꼭 전하고 싶었다. 혹시나 따라할 지 모를 독자들이, 진심으로 안전(安全)한 여행을 하길 바라기 때문에.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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