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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간호섭의 패션 談談]〈20〉런웨이를 지휘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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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간호섭과 패션 디렉터 톰 포드(오른쪽). 간호섭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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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우리에게는 디렉터라는 단어보다는 감독이라는 말이 익숙할 듯합니다. 현장에서 일이 잘되도록 관리하는 행위 자체를 ‘감독한다’고 하지만 일을 지휘하는 사람도 감독이라고 합니다. 그 분야는 무궁무진합니다. 체육은 거의 모든 종목에 감독이 존재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은 역시 2002년 월드컵 때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아닐까요. 예술계에서도 거의 모든 분야에 감독이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그 영향력이 절대적입니다.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과 베를린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1989년 서거하자 그 후임으로 누가 음악감독을 맡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으니까요. 20세기 대중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뒤흔든 감독도 있습니다. 바로 영화감독이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실화 또는 꿈꾸고 싶은 허구를 바탕으로 세상에 없던 창조물을 만들어 냅니다.

패션은 영화와 굉장히 닮았습니다. 디렉터가 곧 영화감독이죠. 패션기업의 오너나 대표에게 의뢰받는 요구는 늘 두 가지입니다. 멋져야 하고 소비자의 호응이 있어 유행이 돼야 합니다. 영화가 재밌어야 하고 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흥행해야 하듯 말이죠. 영화를 찍듯 패션 디렉터는 패션쇼를 기획합니다. 영화에 시나리오가 있듯 패션쇼는 그 시즌의 테마를 토대로 옷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시나리오가 글로 완성된다면 옷은 색상의 선택과 직물의 조합 그리고 레이스나 스팽글 장식 같은 부자재를 통해 완성됩니다. 또 배우를 캐스팅하듯 모델을 캐스팅합니다. 영화에서 주연 배우가 중요하듯 패션쇼의 메인 모델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소위 잘나가는 모델은 겹치기 출연으로 패션쇼를 펑크 내기도 합니다.

미국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톰 포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쓰러져 가던 구찌를 다시 세계적인 브랜드로 일으킨 디렉터였습니다. 그 성공에 힘입어 구찌는 패션 그룹으로 성장해 여러 럭셔리 브랜드를 인수했습니다. 그 브랜드 중의 하나가 바로 알렉산더 맥퀸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맥퀸’에서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패션 디렉터가 돼 브랜드를 맡으니 직원들 때문에 일을 관둘 수가 없다. 그들이 내야 할 건강보험료, 주택 대출금 등 그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내가 쉴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패션계의 악동이었던 그였지만 디렉터로서 진지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미술계의 비엔날레처럼 패션위크에 총감독제를 도입했습니다. 패션위크에 참여하는 여러 디자이너와 관련 분야 종사자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패션 디렉터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 듯합니다. “패션 디렉터가 뭐 하는 사람이냐”라고 묻는다면 “패션인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답하겠습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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