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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황영미의영화산책] ‘행복한 가정’이라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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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로 시작한다. 누구나 행복한 가정을 바라지만, 겉으로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라 할지라도 나름의 불행한 구석은 있기 마련이다.

일상 속 작은 순간의 소중함을 포착해 왔던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는 싱글맘 가족의 애환을 담고 있다. 여섯 살 메이슨(엘라 콜트레인)과 큰딸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를 키우는 엄마 올리비아(퍼트리샤 아켓)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남편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힘들게 할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 남편(이선 호크)은 번번한 직업도 없이 음악을 한다며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다 이따금 아이들을 만나러 집으로 찾아온다. 두번째 남편도 걸핏하면 술주정에 폭력까지 행사하는가 하면, 머리가 길어 여자애같이 보인다며 메이슨의 머리를 맘대로 삭발시키기도 한다. 고지식하고 생활력 있는 세 번째 남편과의 생활도 그녀의 가정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

제목이 의미하듯 이 영화는 소년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 영화의 특이점은 12년 동안 같은 배우와 함께 찍어 리얼리티를 더한 점이다. 그래서 평범하게 사는 것은 질색인 메이슨의 어릴 적부터 대학에 갈 때까지의 모습에 관객의 공감도를 높였다.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통념은 자유롭고 싶은 그를 억압했다. 엄마 올리비아가 보기에 가장 한심한 친아빠가 오히려 산으로 들로 캠핑도 함께하고 스포츠도 즐기는 등 그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었다. 새 아내가 생긴 친아빠마저 그에게 실망만 안겨다 주지만 메이슨은 조금씩 성장해 간다. 그가 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는 날, 엄마 올리비아는 자신의 삶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교수가 되고 아이들을 대학을 보내면서 더 나은 뭔가가 있을 줄 알았다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가정을 행복하게 꾸린다는 것이 쉽진 않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에 삶이 담겨 있다는 것을 영화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듯 그려낸다. 부족한 인간이 자식과 부모로 만나 살아가는데 행복하기만 한 가정이 과연 존재할까.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꿈꾸어 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가정이란 현실의 삶을 지탱해주는 나무 같은 것이기에.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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