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1 (일)

[김택근의 묵언]달동네에서 달을 보았는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은 서울에서 마지막 남은 달동네이다. 주소가 산104번지라서 그렇게 불렸다. 불암산 밑자락의 백사마을이 머잖아 재개발의 첫 삽을 뜬다고 한다.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달동네는 진정 사라지는 걸까. 이제 달동네에서는 달을 볼 수 없는가.

경향신문

달동네는 거의가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이 모여 살았다. 특별시민이 되었지만 막상 기다리고 있는 것은 특별한 냉대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둥지는 보이지 않았고, 할 수 없이 산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서울에는 그나마 큰 산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인왕, 북한, 도봉, 관악, 청계, 불암, 수락…. 산자락에 얼기설기 허겁지겁 잠자리를 만들었다. 눈뜨면 새 집이 생겨났다. 지붕에 지붕을 맞대며 집들이 산을 기어올랐다.

1960년대 정부는 공업을 받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도시의 불빛과 공장의 기계를 동경했다. 농어촌은 점차 버림을 받았다. 낙담한 사람들은 죽기 전에 수도꼭지 한번 빨아보자며 서울로 진격했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가. 가슴에 비수 하나씩 품어야 했다. 힘을 주다보니 눈에 핏발이 가시지 않았다. 산자락에 집을 짓고 내 집이라 우겼다. 그래도 당국은 모른 체했다. 정부는 도시 빈민층을 감당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핏빛 설움과 분노를 건드릴 수 없었다. 또 산업화를 위해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오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다. 무허가 산동네를 적당히 방치했다.

비탈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위태로웠다. 큰비라도 오면 금방 쓸려 내릴 듯했다. 그럼에도 수마(水魔)는 산동네를 범하지 못했다. 오묘했다. 산속 마을이지만 나름 이리저리 물길을 냈다. 집 하나가 나무 한 그루였는지도 모른다. 비가 아무리 사납게 내려도 산사태로 산동네가 쓸려 내려간 적은 없었다.

삶도 집처럼 비탈에 있었다. 널빤지로 가난을 가렸지만 이내 모두 드러났다. 서로 고향 자랑을 하다가, 서로 사투리를 흉보다가 곧 그것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다. 산동네에서 과거 자랑을 하면 현실이 더욱 초라해졌다. 그래서 허세가 발을 붙이지 못했다. 풍겨 나오는 음식냄새만으로도 그 집 벌이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이사를 가면 이웃들이 산 아래로 이삿짐을 날라주었다. 물 걱정, 연탄 걱정 없는 곳에서 잘 살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바람이었다.

판자촌, 산동네를 어느 때부턴가 달동네라 불렀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이니 달빛이 그득했다. 그 달빛에는 푸르스름한 슬픔이 들어있었다. 달 속에서 누구는 고향을, 누구는 사랑을, 누구는 어머니를 보았다. 산 아래 도심에는 밤마다 휘황한 불빛이 고여 있었다. 그 욕망의 거리에 섞이지 못했지만, 그곳으로 조소를 흘려보낼 수는 있었다.

내 젊은 날도 산 중턱에 떠있었다. 백사마을과 그리 멀지 않은 불암산 자락에서 1970년대 초반을 보냈다. 불암산 달동네 사람들의 하루는 비슷했다. 햇살이 들기 전 일터로 나가서 해가 떨어져야 돌아왔다. 날마다 도심의 불빛에 쫓겨났다. 만원버스에서 짐짝처럼 흔들거리다가 종점 부근에서 내려 다시 산을 올라야 했다. 집마다 불이 켜지면 비로소 동네가 살아났다. 사람들은 이내 지쳐서 잠이 들고 대신 산이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달이 사람들 잠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살았던 ‘납대울마을’은 이제 사라진 이름이지만 그때 주민들은 진정 정겨웠다. 달동네와 고단했지만 따스한 사람들을 소재로 글을 지었다.

“산은 잠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사람 사이로/ 소리 없이 떠올라/ 불암산이 된다, 허리가 따스한 산// 가을중턱까지 내려갔던 산그늘이/ 다시 어둑어둑 산을 기어오르고/ 모여 있던 집 하나둘 산속으로 들어선다/ 납대울마을, 표지판까지 입산을 끝마친다// 사람들이 돌아온다/ 사람 하나둘 산속에서 깜박거린다/ 사람은 잠을 자고 산은 꿈을 꾸고”(졸시 ‘사람은 잠을 자고 산은 꿈을 꾸고’)

납대울마을이 있던 곳에는 지금 고층아파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입주민들은 달동네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 시대 재개발이란 원주민 내쫓기였다. 많은 이들이 지하방, 옥탑방, 비닐하우스, 쪽방 등에 흩어져 살다 세상을 떴을 것이다.

달동네는 없는 사람들이 서로가 그 ‘없음’을 덮어주는 마지막 공동체였다. 불암산 바위를 의지하며 더 이상 밀려나지 않겠다던 백사마을 주민들. 그들은 이미 쫓겨난 적이 있는 철거민들이다. 그들은 다시 어디에 둥지를 마련할까. 모두가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달동네에서 달을 본 적 있는가. 모두 가난해서 가난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삼가 기린다.

김택근 시인·작가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