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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김지연의 미술소환]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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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헨리 테일러, 또 다른 잘못, 2013, 캔버스에 아크릴릭 ⓒ헨리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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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살아남을 일이다.” 라디오에서 한 출연자가 말했다. 억울하더라도 살아야 한다고, 억울할수록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다. 시대가 잠시 눈감을지라도, 결국 누군가는 목격하고, 증언한다.

자신의 회화세계를 ‘탐욕스럽다’고 표현하는 헨리 테일러는 시대의 증인으로서 캔버스 앞에 선다. “회화는 심미적인 작업이 아닙니다. 이 이상하고 적대적인 세계와 우리 사이의 매개자가 되도록 고안된 마법 같은 형식입니다. 우리의 공포와 욕망에 형식을 부여해서 권력을 장악하는 방법입니다.” 피카소가 깨달았다는 이 회화의 의미는 헨리 테일러에게 이어진다. 그는 궁핍한 사람부터 성공한 사람까지, 친한 주변 사람들부터 전혀 모르는 사람들까지 화면에 끌어들인다. 그가 모은 얼굴들은 그들이 겪었을 사건마저 불러낸다. 그는 개인의 초상이든, 집단의 모습이든 자신이 포착한 인물들을 통해 지역과 역사를 이어주는 것, 미국 땅에서 흑인으로 살면서 겪은 바를, 그와 주변인들이 경험한 미국 사회의 부조리한 면면을 정직하게 묘사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지역사회에서 점점 더 눈에 띄는 인종 간의 갈등과 긴장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연민과 사랑을 담는다. 사건의 장면은 사진처럼 고스란히 담기기도 하고, 작가의 감정에 따라 확대되거나 잘려나가기도 한다. 마치 농구 경기를 할 때처럼,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속도를 늦추면서 그는 그가 목격한 에너지를 정직하게 화면에 담는다.

수갑을 찬 채 두 명의 경찰에 의해 화면 앞으로 끌려나오고 있는 한 남자의 고개 숙인 몸짓을 보면서 그 뒤에 있었을 사건을 상상해본다. 그가 은폐했을, 왜곡했을, 더럽혔을 시간을 돌고 돌아 끌려나오기까지, 불안한 순간들로부터 눈 돌리지 않고 화가는 여기 있었다. 세 사람 뒤로 쭉 뻗은 길은 너무도 반듯하고 잔디는 푸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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