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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세상읽기]인도적 지원은 정쟁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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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는 대북 식량지원 방침을 밝혔다. 기본입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치적 문제와 인도적 문제를 분리하고, 둘째, 국민과 정치권의 의견을 수렴하고, 셋째,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식량조사 결과와 인도주의적 필요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시기·규모·방식을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과거 경험적 사례에 비춰보면 인도적 지원과 대북 제재와의 관계, 인도적 지원과 북한 인권과의 관계, 인도적 지원과 북한 도발과의 관계 등에서 선후관계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있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북한의 태도변화가 먼저냐, 인도적 지원이 먼저냐의 논쟁이다.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에는 대북 제재가 취약계층의 주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인권법 제7조에도 재해 등으로 북한 주민들의 긴급한 위기 시에는 지원을 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인도주의 정신은 재난이나 무력충돌이 있을 때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정신이다. 인도주의는 종교·이념·체제를 뛰어넘는 절대적 가치이다. 그래서 정치적 사안과 분리하면서 최우선 가치로 두는 것이다. 절대적 가치를 선후논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인도주의 정신에 대한 몰이해이다.

WFP와 식량농업기구(FAO)는 대북 인도적 긴급지원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지원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양 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북한의 식량 사정이 최근 10년간 최악의 수준이고 부족분은 139만t이라고 밝혔다. 배급에 의존하는 주민 750만명과 열악한 농장원 260만명 등 1010만명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혹자는 북·중 간 무역통계와 북한의 물가동향을 근거로 북한의 식량난이 최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몇 가지 수출입 통계만을 나열한 국제무역센터(ITC) 자료를 가지고 북한의 식량난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중 간의 전반적인 교역액을 보여주는 중국 해관총서의 내용 분석이 중요하다. 혹자는 북한 장마당의 식량가격 하락론을 주장하면서 북한 식량위기가 허위라고 비판한다.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식량가격은 안정화될 수 있다. 북한 당국의 가격통제, 수요와 공급의 동시 감소, 밀수에 의한 시장공급, 주민 스스로 소비량 감소, 쌀 대신 밀가루·옥수수의 소비 대체 등으로 안정화시킬 수 있다. 과거 9차례의 대북 식량지원 전후로 북한의 식량 가격은 오르기도 했고 내리기도 했다. 식량위기 및 지원과 식량가격이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대북 식량지원 방식은 정부의 직접 지원,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 민간단체를 통한 지원 등이 있다. 정부의 직접 지원은 우리가 남북관계를 주도할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이끌 수도 있다. 과거 대북 식량지원은 차관 형태였기 때문에 모니터링에 어려움이 있었다. 국제기구를 통한 방식은 분배투명성(모니터링)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다. 북한과 국제기구는 모니터링에 대한 양해각서를 주고받는다. 국제기구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으면 지원할 수 없는 원칙을 가진다. 국제기구가 지원지역과 대상을 정한다. 북한 상주 국제기구 직원이 24시간 내 북한 당국에 통보하면 북한은 가정이나 시장, 그리고 시설 방문을 허용해야 한다. 국제기구는 방문 장소를 무작위로 선택한다. 지원물자에 대해 위치추적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군용차량의 사용은 금하고 있다.

북한은 대남 선전매체 ‘메아리’를 통해 ‘생색내기 지원’ 운운하면서 대남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메아리는 아리랑협회라는 임의의 기구에서 운영하므로 북한 당국의 공식입장으로 보기 어렵다. 북한은 유엔기구를 통해 지원을 공식 요청했고 심지어 현지 조사까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있을 수 있다. 불만도 도가 지나치면 북한 자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인도주의 정신의 절대적 가치 존중과 함께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책무도 있다.

남북관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현 정세와 별개의 사안은 그리 많지 않다. 인도적 사안을 통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이끌겠다는 것을 정쟁의 도구 또는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비판자들은 긴급성 지원이 북한 당국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재난당한 주민들에 대한 지원임을 인식해야 한다. 식량지원이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남북관계 발전의 분위기 조성에는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정부는 북한이 추가적인 긴장고조 행위를 하지 않도록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의 불씨를 살리는 데 배가의 노력을 해야 한다. 북한과 물밑 접촉을 하든, 특사를 파견하든 6월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기회를 잘 살려 나가야 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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