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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최종구-이재웅 설전’을 보며 AI기자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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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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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금융당국 주최로 처음 열린 핀테크(금융+기술) 축제인 ‘코리아 핀테크 위크’에서 얼굴인식 결제를 경험해보았습니다. 처음에만 3D 카메라로 얼굴 정보를 등록해두면, 다음부터는 맨손으로 매장에 와서 점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물건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당장 7월부터 일부 편의점에서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시스템을 개발한 카드사 관계자들은 “24시간 편의점의 경우 야간노동에 대한 인건비 등을 줄여줘, 부분적으로나마 무인점포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물건의 바코드를 찍을 필요도, 신용카드를 받아 긁어줄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해당 기기는 약 120만원 남짓인데, 많이 생산하면 가격이 더 낮아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할증이 붙은 알바생 야근수당보다 이편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걸 굳이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알겠더라고요. 신기술에 대한 경탄과 함께 ‘노동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아 조금 멍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을 담당하고 있는 박수지입니다. 이번주의 ‘말말말’을 꼽는다면 단연 “무례하고 이기적이다”라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22일)이 아닐까요. 정부 장관급 인사가 특정 기업인을 콕 집어 이렇게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당사자, 이재웅 쏘카 대표 역시 “출마하시려나”(페이스북)라고 바로 받아쳤고, 정부와 혁신업계 간의 갈등이 터져 나왔다는 분석이 쏟아졌습니다.

이번 ‘설전’의 직접적인 배경은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기사 포함 렌터카 서비스 ‘타다’(VCNC)의 모회사 쏘카의 이재웅 대표가 택시업계와 정부를 비판한 것입니다. 이 대표는 잇따르는 택시기사 분신 사건과 관련해 지난 17일 “죽음을 이익에 이용하지 말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썼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달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겨냥해 “부총리 본인 의지만 있다면 혁신성장을 더 이끌 수 있을 텐데 지금 이렇게 혁신성장이 더딘 것은 부총리 본인 의지가 없어서일까요”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종구 위원장의 발언은 다소 생뚱맞았습니다. ‘타다’의 주무 소관 부처는 금융위가 아닌 국토교통부이기 때문입니다. 최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23일 핀테크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교통문제에 대한 주무부처는 아니지만 금융위가 어느 부처 못지않게 혁신사업을 지원하는 일을 많이 해왔다. 혁신에 따라오는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 늘 생각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최 위원장의 출마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서 얼굴인식 결제를 해보면서 혁신과 그에 따른 그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실 금융 분야에서는 택시업계 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기존 산업 노동자와 신생 사업자의 갈등이 덜 불거지는 편입니다. 기존 산업계인 은행이나 카드사 등은 신생 핀테크업체와 비교하면 훨씬 규모도 크고 경제력도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별 노동자의 면면을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특히 정규직 고용 형태가 아닌 카드모집인, 대출모집인, 보험설계사 등은 온라인 금융 활성화 등 기술변화에 따라 직접 피해를 보는 직종입니다. 다만 택시업계처럼 조직화하지 못한데다 중년 여성이 많아 목소리가 덜 들릴 뿐이죠. 소비자들은 온라인 금융거래 덕에 수수료가 낮아졌지만, 다른 한편에서 소득 감소를 감내하거나 일자리를 옮겨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젠 더 나아가 금융업과는 관련 없어 보이던 편의점 알바생까지 일자리 위기를 맞게 됐고요. 지금 택시기사들이 처한 상황은 많은 일자리에서 이미 겪고 있거나 조만간 겪게 될 일일 겁니다. 저 역시 ‘인공지능(AI) 기자로 대체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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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위원장은 핀테크 행사 개막식에서 정부의 ‘혁신과 포용의 균형’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혁신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소외되는 분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분들의 사회적 충격을 관리하고 연착륙을 돕는 것과 같은 혁신의 ‘빛’ 반대편에 생긴 ‘그늘’을 함께 살피는 것이 혁신 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사회의 발전은 혁신에서 시작되지만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충분한 안전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비로소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귀결됩니다.” 기업인과 소모적인 설전을 벌이기보다는, 이런 균형과 안전장치를 어떻게 구현할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주고, 국민을 설득하고 업계의 참여를 끌어내는 게 정부의 역할이겠지요.

박수지 경제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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