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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 없어서 못써요” 범인 잡을때까지 집에 안가는 ‘악바리’ 워킹맘 형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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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쓰지 마세요. 다칩니다.”

서울 강서경찰서 형사팀 마약반 소속 공자영 경장(34·여)은 건장한 체격의 50대 남성 팔을 뒤로 꺾은 뒤 이렇게 말했다. 공 경장은 새벽 시간 도로가의 포장마차에 잠복해 있다 이 남성이 나타나자 다가가 단 번에 제압했다. 다른 곳에 잠복해 있다 달려 온 동료 남자 경찰관은 팔이 꺾인 남성에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기술 들어가면 다칠지도 모릅니다”라고 했다.

23일 본보 기자와 만난 공 경장은 아홉 달 전 전과 10범의 마약사범을 잠복 끝에 검거할 당시의 상황을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설명했다. 붙잡힌 마약사범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팔을 꺾은 경찰이 여자라는 걸 확인하고는 멍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공 경장은 2017년 2월 경찰관으로 임용됐다. 무도(武道) 특기자로 채용된 공 경장은 유도 선수 출신이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땄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순경으로 임용된 그는 검거 실적이 뛰어나 1계급 특진을 하면서 2년 만에 경장이 됐다.

최근 한 여성 경찰관이 술에 취한 남성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담긴 이른바 ‘대림동 여자 경찰관 사건’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다. 이 때문에 ‘여경 무용론’까지 제기되면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술 취한 남자 한 명도 제대로 제압하지 못 하는 여자 경찰관은 뽑을 필요가 없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민갑룡 경찰청장은 ‘대림동 여자 경찰관’의 현장 대응은 “나무랄 데 없이 침착했다”며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나약한 여경? 근성의 여경”

올해 3월 현재 1만3594명의 여자 경찰관들이 전국 곳곳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다. 광복 후인 1946년부터 등장한 여자 경찰은 1990년대 들어서야 수사와 정보, 강력계 등의 분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 내근직이었다.

아이를 낳은 뒤에도 강력계 형사로 일하는 ‘워킹맘 형사’들이 있다. 서울 중랑경찰서 강력계 박애화 경사(37·여)는 올해로 강력계 생활 6년째다. 박 경사의 별병은 ‘악바리’다. 용의자를 한 번 쫓기 시작하면 검거할 때까지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해서 동료 남자 경찰관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박 경사는 검도 4단, 태권도 3단, 유도 2단 등 무술 단수가 총 12단이다.

초등학생 딸을 둔 박 경사는 이달 10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박 경사는 오전 7시 초등학생 딸에게 아침 식사를 챙겨준 뒤 경찰서로 출근해 10시간 가까이 폐쇄회로(CC)TV 분석 작업에 매달렸다. 박 경사가 속한 강력계는 70대 노인을 보이스피싱으로 속여 2000만 원을 챙긴 사기범을 검거하기 위해 중랑구 일대 CCTV를 전부 뒤지던 중이었다. CCTV 분석으로 용의자를 특정했다. 박 경사는 용의자가 지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모텔 인근에서 잠복에 들어갔다. 운이 좋았다. 자정을 넘긴 무렵 용의자를 붙잡았다. 잠복이 길어질 때는 며칠 씩 걸리기도 한다.

박 경사의 초등학생 딸 아이는 “밤인데도 엄마는 왜 안 오느냐”며 울며 보챌 때가 있다. 박 경사는 딸을 위해 일을 그만둬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 박 경사는 “남자 경찰은 일을 잘하든 못하든 개인으로 평가를 받는데 여자 경찰은 ‘여경’이라는 집단으로 묶어 평가를 하는 것 같다”며 “‘애 엄마 되더니 별 수 없네’ 하는 얘기 듣기 싫어서 이 악물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중랑서 강력팀장 전윤숙 경감(42)은 “아무래도 아이 엄마는 외근이나 당직이 많은 강력계와 형사팀을 선뜻 택하기엔 아직까지는 어려움이 많은 실정”이라고 했다.

남자 경찰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분야에 뛰어들어 두각을 나타내는 여자 경찰도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순찰대 소속 김수진 경사(40)는 오토바이를 몰면서 VIP(대통령) 근접 경호를 하는 유일한 여성이다. 교통순찰대 근무 9년차인 김 경사는 ‘삼공열둘’로 불린다. 삼공열둘은 김 경사가 모는 300kg 무게의 대형 순찰 오토바이에 매겨진 번호다.

김 경사가 교통순찰대 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 바로 오토바이를 몰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당시 여자 경찰은 오토바이를 몰 수 없었다. 남자 경찰들이 모는 오토바이 옆에 바퀴 세 개가 달린 ‘사이드카’가 붙어있었다. 여자 경찰은 이 ‘사이드 카’에 앉아야 했다. 김 경사는 “여자도 ‘사이드카’가 아닌 오토바이를 몰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무언의 시위를 하듯 매일 아침 대형 오토바이를 몰고 출근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자 선배들이 김 경사에게 ‘오토바이를 한번 타보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김 경사가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로 교통순찰대로 발령받은 후배 여자 경찰은 사이드카가 아닌 오토바이를 타게 됐다. 사이드카는 없어졌다.

1만3594명의 여자 경찰관 중 파출소와 지구대에 근무하는 지역경찰이 4137명으로 가장 많다. 경찰 생활 16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지구대에서 ‘최고령 여성 순찰 요원’으로 일하는 대구 달서경찰서 월배지구대의 최인복 경사(42·여)는 “지구대에서 일하다보면 밤늦게 술취한 사람들을 제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민원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설득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 경사는 지난해 3월 자살하겠다며 스스로 신고를 했던 50대 여성을 설득해 목숨을 구했다. 한달 전에는 자해를 시도한 50대 초반의 여성과 대화를 나눈 끝에 인근 병원으로 보냈다. 최 경사는 “내가 한 것은 ‘많이 외로우셨겠어요’ ‘뭐가 필요하세요’라고 대화를 시도한 것 뿐”이라며 “자살을 시도하는 민원인 대부분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주면 스스로 어떻게 해야할지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경 없어서 못써요”

여성 마약 사범이 경찰서 문턱을 넘는 순간, 일선 경찰서에선 ‘여경 구하기’ 전쟁이 벌어진다. 여성 마약 사범의 몸을 수색하거나 소변검사를 진행할 때면 이 과정을 대신해줄 여성 경찰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근무하는 김소정 경사(37·여)는 지난해 일선 경찰서에서 일할 때 ‘마약 검사’에 여러 차례 동원됐다. 김 경사는 이 경찰서 형사당직팀 경찰관 80명 중 ‘홍일점’이었다. 하루는 마약 수사팀 경찰관이 “여경 빨리 와달라”며 사색이 돼서 달려왔다. 조사실에는 한 여성 마약 사범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눈썹, 다리털 등 눈에 보이는 곳의 체모를 모두 왁싱한 상태라 모발을 통한 마약 검사가 불가능해 보였다. 김 경사는 여성 사범을 여자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리곤 체모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해달라고 맡겼다. 검사 결과 이 여성은 필로폰을 투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평택경찰서 마약수사팀에서 여성 마약 사범의 소변검사를 할 때면, 마약수사팀 소속 이승아 경장(33)이 밀착 감시에 나선다. 여성 마약 사범들이 소변검사를 받으면서 미리 준비해온 다른 사람 소변으로 바꿔치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마약 사범의 집을 급습할 때도 이 경장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선봉’에 서곤 한다. 현장에서 옷을 벗고 있는 여성을 마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장이 집 안에 들어가 여성이 옷을 갈아입도록 하고 내부를 수색한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등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들이 먼저 여경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는 여성 경찰관들의 전문 영역이 된지 오래다.

대구지방경찰청 곽미경 경감(51·여)은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 수사팀에서 일하던 2017년 4월 새벽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새벽녘 20대 여성이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숙직 당번이었던 남성 경찰관과 곽 경감이 함께 출동했다. 그런데 이 여성은 신고 내용과는 달리 두 경찰관에게 “이 남자가 싸우다가 가슴을 쳤어요”라고 말했다. 여성의 말대로라면 추행이 아닌 폭행을 당한 것이었다. 한참 뒤 여성은 곽 경감과 둘이 있는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을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남자 경찰한테는 차마 말을 못했어요”라고 울먹였다. 곽 경감은 “수치스러운 경험을 한 피해자가 남성 경찰 앞에선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다”며 “그럴때면 여경들이 피해자 조사를 맡는다”고 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해바라기센터에도 여성 경찰관들이 근무하며 성폭력 피해자 등의 진술을 받는다. 성폭력이나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이곳에서 여경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면, 여경은 진술 내용을 종합해 일선 경찰서로 보낸다. 서울 노원구, 동대문구 등 6개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 북부해바라기센터의 장연심 경감(51·여)은 “여성들이 수치스러웠던 경험을 남성 경찰관이나 국선변호사에게 털어놓기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래서 센터에 여성 경찰관들을 배치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술을 받으려 한다”고 했다.

●“여성 경찰 위한 실전 교육 있어야”

“경찰관의 힘은 ‘완력’만 있는게 아니예요.”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의 ‘프로파일러’ 한상아 경장(28·여)의 말이다. 한 경장은 “프로파일러는 사건의 논리구조를 만드는 힘을 가져야 한다”며 “범인을 끝까지 추적하는 끈기도 경찰관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강서경찰서의 공 경장도 “경찰이 되기 전에는 나도 경찰관이 범인 잡는 일만 하는 줄 알았다”며 “여성 경찰관들이 여러 분야에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했다.

여성 경찰들 사이에서는 현장에서 저항하는 상대를 제대로 제압할 수 있도록 실무 체포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서울 홍익지구대 A 경사는 “경찰이 되고 나서 체포 훈련을 받을 때 남성과 여성 구분 없이 체포술을 배운다. 하지만 남자 경찰과 여자 경찰의 힘이나 덩치는 완전히 다르다. 여경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지구대 B 경사는 “현장에서 저항하는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실전무술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며 “지금은 여자 경찰들이 개인적으로 체육관에서 주짓수나 복싱을 배우는 수준”이라고 했다.

여성 경찰의 체력 검증 기준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인복 경사는 “일부 누리꾼들 주장처럼 남성과 같은 잣대로 여성의 체력을 평가할 수는 없다. 대신 여성경찰이 땅바닥에 무릎을 대고 팔굽혀펴기 시험을 보는 현실은 바꿔야 한다. 팔굽혀펴기 개수는 남성과 달리 평가하더라도 행위 기준은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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