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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엽의 세상읽기] 김대중의 유언을 이명박이 들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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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의에 서거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 몸의 반쪽이 무너져내린 것 같다"고 했다. 독재와 기득권에 맞서온 닮은 꼴의 그들이다. 노 대통령 유족들은 김 전 대통령이 추도사를 해주기 바랐지만, 정권이 반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무엇이 두려웠던가. 병석의 DJ가 정치적 후계자를 애도할 틈도 주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지독한 진영논리에 빠져 전 정권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다. 재임 초기부터 이른바 ABR(Anything But Roh! ; 무조건 노무현과 반대로!) 노선을 밀어붙였다. 반대 목소리에 귀를 닫더니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공영방송 기자들을 직장에서 쫓아냈다. 전두환의 1980년 언론 통폐합 이후 처음이었다. 그들에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집권기는 '잃어버린 10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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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노무현의 장례식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오열했다. 그에게 못다 한 추도사를 하게 해주고 싶었다. 마침 인터뷰 프로그램 제작을 맡고 있었다. 최경환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일단 날짜를 잡았다. 정권의 눈치를 보던 회사는 반기지 않았다. DJ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가 될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 명색 언론사라 특종을 외면할 수는 없었던지 허락이 떨어졌다. 질문지를 난도질당했지만, 꾹 참고 추진했다. 그 전해 후배 6명이 부당해고를 당할 때 유일하게 보직을 사퇴한 서영석 전 그래픽 팀장이 타이틀을 만들어주었다.

문익환 목사의 귓속말을 들으며 파안대소하는 DJ의 사진을 쓴 타이틀은 결국 방송되지 못했다. 신장 투석을 받으며 버티던 DJ의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6월 9일이었던 것 같다. 인터뷰 2시간 전에 동교동 자택 앞에 중계차를 대기시켰는데 최 비서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주일 뒤가 6.15 남북공동성명 9주년 기념식인데, 오늘 인터뷰를 하면 거기서 연설할 기운이 없을 것 같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취소하자"는 거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6월 15일의 그 연설은 김대중의 마지막 공적 발언이자 유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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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설에는 남북관계에 대한 간곡한 호소가 있었다. "전직 대통령 둘이 합의해 놓은 6.15와 10.4를 이 대통령은 반드시 지키십시오. 그래야 문제가 풀립니다." 그때만 해도 북한의 핵 능력은 낮았다. 2006년 첫 핵실험은 도화선에 불을 붙여본 수준이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 국장 기간에 2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은 이후 10년을 핵 무력 완성에 매진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을 선언하고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이제 핵을 쥔 북한과 전보다 훨씬 어려운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DJ의 충고를 외면하고 10년을 허송세월한 결과다.

최근 아베 일본 총리가 "북한 김정은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2002년 9월 북미 관계가 풀려가는 듯 하자 당시 고이즈미 총리가 전격 방북해 조기 국교정상화에 합의한 일이다. 물론 다음 달 북한이 제임스 켈리 특사에게 '고농축우라늄 (HEU)' 개발을 시인하면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악당'과도 타협하겠다는 일본의 실리주의가 약간은 부럽다.

6.15 연설 두 달 뒤인 8월 18일 DJ는 운명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바란 그의 유언은 10년의 공백기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 의해 다시 추진되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가지기 전에 관리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문 정부를 포함해 앞으로 정권을 맡는 정파들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송태엽 해설위원실장 [taysong@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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