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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1원’ 리디노미네이션 전문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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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원화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4월에도 홍 부총리는 "사회적 충격도 큰 사안이고 국민적인 공감대와 사전 연구도 굉장히 필요한 사안"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적 있습니다. 한 달여 사이에 두 번이나 리디노미네이션을 언급한 겁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건 지난 3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한다."고 말한 이후부터입니다. 논란이 커지자 이 총재는 세 차례에 걸쳐 "검토한 적도 없고 추진계획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에 공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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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노미네이션이란?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액면가격을 바꾸는 일입니다. 1,000원을 1원으로 바꾸거나 아예 화폐단위를 바꿔서 1,000원을 1환으로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53년에 100원을 1환을 바꿨고, 1962년에도 10환을 다시 1원으로 변경했습니다. 단순히 화폐의 단위만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화폐의 가치 자체가 올라가거나 떨어지진 않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을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는 터키입니다. 2005년 1월부터 기존 화폐를 100만분의 1로 낮추면서 화폐 명칭을 '리라'에서 '신 리라'로 바꿨습니다. 2001년 68.5%까지 치솟았던 터키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05년 8.2%로 내려갔습니다.

반면에 짐바브웨와 북한, 베네수엘라 등은 실패한 사례로 꼽힙니다. 짐바브웨는 2006년부터 3차례에 걸쳐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지만 연 2천만%에 달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고 결국 미국 달러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북한도 2009년에 화폐가치를 100분의 1로 낮추는 화폐개혁을 실시했지만 물가가 폭등하고 식량과 생필품이 부족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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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리디노미네이션을 해야 할까요? 하지 말아야 할까요? 해야 한다면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지 말아야 한다면 왜 하면 안 되는 걸까요? 경제 전문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지금이 리디노미네이션 최적기"

리디노미네이션을 찬성하는 측의 핵심은 지금이 리디노미네이션을 하기에 최적이라는 겁니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도 논의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인플레이션 걱정 때문에 못 했다."며 "지금은 물가가 낮은 상태이고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 교수는 또 "OECD 국가 중에서 1달러 환율이 숫자 네 단위인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경제 규모에 비해 화폐 단위가 너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바꾸면 국제 금융거래 효율성이 좋아져서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 심리가 제고될 수 있고, 내수 부양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오 교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과거 정부들이 못 한 이유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부작용 때문에 비판을 받기 싫어서 결단을 하지 못한 것"이라며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서 정부가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박사는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 박사는 "일부 찬성 측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오히려 반발과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유로존에서 한 것처럼 구권과 신권을 바꿔줄 때 기간도 무제한으로 두고, 신분 확인 없이 익명으로 바꿔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목적이 '지하경제 양성화'가 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조 박사는 "정부가 아무것도 안 했지만 이미 사람들은 5천 원을 5.0으로 쓰고 있다."며 "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러는지, 뭐가 불편해서 그러는지 정부나 정치권, 학계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논의가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 이름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제시했습니다. "영 3개 떼기 운동이나 화폐 단위 조정이라고 부르는 게 논의를 편하게 만들 수 있다."며 "리디노미네이션을 불안해하고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홍보를 잘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화폐개혁 논쟁이 오히려 시장 불안감 조성"

리디노미네이션이 오히려 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이 인플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리디노미네이션을 할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다."며 "오히려 정부가 경기 악화를 화폐 개혁으로 막으려 한다는 신호를 주면서 경제 정책 전반에 불신을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또 리디노미네이션 찬성 측의 '대외 위상 제고' 주장에 대해 성 교수는 "대외 위상은 화폐 숫자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ATM 교체 등 시장 전체에 큰 비용이 드는 건 확실한데 편익은 확실하지 않다."며 "화폐 개혁을 실패한 국가 사례가 성공 사례보다 훨씬 더 많고, 북한 경제가 망가진 결정적인 계기도 화폐 개혁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성 교수는 "이미 많은 사람이 신용카드로 결제하기 때문에 화폐 단위로 인해 생기는 불편을 체감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도 않다."며 "숫자가 없어진다고 해서 소비가 늘어나고 내수가 진작되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반대 의견을 밝혔습니다. 김 교수는 "경제 시스템부터 시작해서 외환, 채권 등 돈이랑 관련된 건 다 바꿔야 한다."며 "차라리 하려면 주민등록번호 개혁 등 다른 사회적 이슈와 한꺼번에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김 교수는 "다른 국가 사례들을 보면 리디노미네이션은 대부분 경기가 안 좋을 때 단행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경기가 안 좋다는 걸 정부가 인정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 논의 계속되어야

찬반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정부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에 대해선 동의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찬반 의견이 나뉘는 겁니다.

충분한 여론 수렴을 위해 지금부터 공론장을 만들고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대부분 동의하는 편입니다. 특정한 방향성을 갖지 않고 순수하게 국내 경제에 도움이 되느냐만 놓고 건강한 논쟁이 오가길 기대합니다.

이현준 기자 (hjni1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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