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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상류 지역에서 출현한 가야계 무덤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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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류. 왼쪽 첫번째가 장군이다.|전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전북 장수 삼고리 고분군에서 1500년 전 가야계와 백제계 토기가 섞여 출토됐다.

장수 삼고리 고분군을 조사하고 있는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24일 5∼6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50여 점을 찾았다고 밝혔다. 연구원이 수혈식 석곽묘(구덩식 돌덧널무덤) 3기, 토광묘 1기를 발굴한 결과 가야계 물결무늬 장경호(목 긴 항아리)와 통형기대(원통모양 그릇받침) 7개 묶음과 장군, 다양한 철기류가 나왔다. 장군은 물·술·간장이나 오줌 등 액체를 담는 데 쓰는 길쭉하고 입구가 작은 그릇이다. 장군은 종래 완주 상운리 고분군과 군산 산월리 고분군, 서울 몽촌토성 등 마한과 백제 시대 무덤과 토성에서 출토된 바 있다. 이번 조사에서 수혈식 석곽묘 안에서 가야토기들과 함께 나왔다. 연구원측은 “가야 토기와 백제계 장군이 같이 나온 것은 이 지역에 거주한 집단이 다른 세력과 교류했음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측은 삼고리 고분군은 금상상류 지역에 기반을 둔 가야 토착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삼고리 고분군은 지난 1995년 군산대 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 가야계 무덤으로 규명되면서 장수의 금강 상류 유역을 가야 문화권으로 해석하게 만든 유적이다.

섬진강과 남원 등 전라도 동남부 지역은 475년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할 무렵부터 512년 사이에 당시 전성기를 이루던 대가야에 점령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서기> 512년 조를 보면 “백제가 왜에 사신을 보내 임나의 4현을 달라고 요청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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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리 고분군 중 8호분, 가야계 및 백제계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전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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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12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 임나 4현(상다리·하다리·사타·모루)을 청했다. 그러자 다리국수 수적신압산은 ‘이 4현은 백제와는 인접해있지만 일본과는 떨어져 있으며, (백제와는) 아침 저녁으로 통하기 쉽고 (어느 나라의) 닭과 개인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니 지금 백제에게 주어 합쳐서 같은 나라로 만들면 굳게 지키는 계책이 이보다 나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백제에 할양하는 편이 낫습니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이 <일본서기>가 표현한 임나4현은 섬진강을 중심으로 한 백제의 동남부 지역이라 비정하고 있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백제 입장에서 <일본서기>를 읽을 경우 이 기사는 무령왕(재위 501~523)이 섬진강 일대에서 이뤄낸 백제의 고토회복을 의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즉 개로왕이 죽고, 한성 백제가 멸망하자(475년) 대가야는 어수선한 틈을 타 백제의 동남부 지역을 침입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측 사료인 <남제서> ‘동남이열전·가라전’을 보면 “삼한의 한 종족인 가라국의 임금 하지가 건원 원년(479년) 사신을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고 했다.

이때가 대가야의 최전성기였다. 이한상 교수는 “실제 고고학 자료를 보면 5세기 후반 대가야의 성장이 괄목상대했고, 남제에 사신을 보낼 때 전성기를 맞이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이 무렵 대가야가 섬진강을 넘고 운봉고원을 거쳐 무주, 진안, 장수 등지로 세력을 확장했을 것이다. 이한상 교수는 “그 때(475년 이후)부터 6세기초(512년)까지 백제가 흔들거릴 때 대가야가 잠깐 동북진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라도 동남부 지역에서 가야 유적과 유물이 나온다고 해서 그것을 곧 ‘가야문화권’으로 단정해버리면 위험할 수 있다. 475~512년 사이, 즉 30여년 정도 점령했다고 해서 ‘가야’ 혹은 가야의 토착세력으로 규정한다면 그 일대를 수백년 지배했던 백제의 존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홀대론’ 발언 이후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했던 가야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활성화하는 것은 좋지만 경쟁적으로 ‘가야!가야!’한다면 이 또한 자칫 역사 왜곡이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기환 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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