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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폭등한 이란…여행자는 웃고 현지인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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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107)]상식을 비웃는, 이것이 ‘이란 스타일’

※ 한국인 ‘뿌리다’와 프랑스인 ‘탕탕’ 커플은 지난달 말 1년 계획으로 세계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에 잠시 들렀다가 중동과 남태평양을 거쳐 남미에서 마무리하는 여정이다. 이란을 시작으로 한 두 사람의 여행기를 격주 간격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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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간(Damghan) 외곽의 핫산아바드 마을에서 빵을 굽는 부부. 이란인은 대체로 여행자를 반가이 맞이하고 뽐내기도 좋아한다. 아내의 왼손이 관찰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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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은 말이 아닌 행동에서 비롯된다

“사실이야? 에이, 설마.” 이란을 여행하면서 자꾸만 되뇌는 문장이다. 담간(Damghan)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마슈하드(Mashhad) 기차역에 내렸다. 기차 모형 앞에서 허튼 짓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탕탕이 150-600mm 렌즈를 찾았다. 여행의 경종을 울리는 분실 사태가 왔구나. 돈 벌어야 할 택시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기차 탑승까지 남은 시간은 40여분. 렌즈 찾기 미션이 시작됐다. 호텔 카운터에 뒀는지, 택시 트렁크에서 굴러다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일단 호텔로 돌아가 방을 수색했다. 행여나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갔을까 매트리스까지 들춰 봤지만 헛수고였다. 짧은 페르시아어와 영어, 전 세계 공통어인 보디랭귀지까지 동원해 택시를 불러 준 호텔 매니저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결국 빈손으로 기차역에 돌아왔다. 멕시코에서도 실종된 적이 있었던 비운의 렌즈다. 애도를 표하던 찰나 누군가 검은 물체를 눈앞에 척 들이민다. 렌즈다. 천사가 나타났나? 택시기사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하얀 이를 드러낸다. 남사스럽게 소리 지르며 껴안아 버렸다. 소정의 사례를 하자마자 그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남에게 행동하라는 격언을 실행하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이란인이다.

◇운전대를 잡으면 성난 황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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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차선 중간에 있어야 그들은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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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보조석에 앉은 탕탕이 운전을 하기도 했다. 운전자 모함마드는 아주 친절한 청년이다. 운전대만 잡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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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면서 운전에 대한 모든 지식이 무너졌다. 차선은 무의미하다. 운전자에 따라 4차선이 6차선으로 변한다. 교차로의 우선 순위는 먼저 들이미는 자에 의해 결정된다. 앞차와의 거리는 1cm이하, 부딪히지만 않으면 된다. 방향 지시등은 폐차할 때까지 쓰지 않을 것 같다. 안전벨트는 경찰이 보일 때만 착용한다. 휴대폰을 보느라 때론 운전대에서 손을 뗀다. 내비게이션은 그 동네 사람이다. 묻고 물어 그들의 안내에 따라 목적지로 향한다. 심심치 않게 오토바이가 역주행한다. 헬멧은 집에 두고 왔다. 차 안에서 차라리 눈을 감는 것이 목숨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란 생각이 굴뚝같은 이곳, 이란이다. 차창 밖 사정도 다르지 않다. 무단횡단은 일상인데, 사람을 보고 차가 멈추는 아량은 드물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장식품 수준이다. 운전대만 잡으면 무법자가 되는 까닭을 현지인에게 진심으로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은 언제나 똑같다. “이란에 온 걸 환영해!” 걱정하지 마시라. 이 아노미 상태에도 곧 적응하고, 그저 이란인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가 반드시 올 테니. 게임하듯 운전하는 그들을 보며 급기야 껄껄댄다.

◇1달러=15만리알…여행자는 웃고, 이란인은 운다

2019년 5월 초, 인터넷에서 확인한 이란 화폐의 가치는 달러당 4만2,105리알(IRR)이었다. 그러나 이 가상현실을 믿었다간 바보 취급 당한다. 실상은 이보다 훨씬 높아 1달러는 14만~15만리알, 1유로는 16만~17만리알로 통용된다. 암시장 거래 가격이 아니라 길 가던 꼬마도 다 아는 환율이다. 공항 환전소조차 이 기준을 따른다. 덕분에 100달러만 환전해도 1,400만리알이라는 지폐를 거머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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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에 배달된 홈스테이 식사. 베푸는 걸 낙으로 여기는 그들에 의해 우린 살이 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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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재로 지난해부터 이란 경제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탕탕이 여행한 7년 전, 1달러는1만리알 안팎이었다. 작년 5만리알었던 것과 비교해도 현재 환율이 3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리알은 말마따나 똥값이 되었다. 이란 통계센터(ISC)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이란 물가는 지난해와 비교해 약 51% 올랐는데 식재료는 70%나 뛰었다. 먹고 살기가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의미다. 이런 현실에 여행자는 ‘웃플’ 수밖에 없다. 주머니 사정만 생각하면 물개박수를 칠 법하지만, 그들의 생활고를 생각하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집에 초대받아도 맘 편히 대접받고 있기에는 엉덩이가 뜨겁다.

◇이란식 계산법 “영(0) 하나를 추가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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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만2,000리알은 약 6,300원이다. 현재 두 사람의 한 끼 식사로 충분한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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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치면 남한산성 백숙집의 고급 버전인 이란식 레스토랑. 음식 가격에 ‘영(0)’이 너무 많아 기절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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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첫 행선지는 무슬림의 성지인 마슈하드. 3,000년 된 ‘강마을(kang village)’을 비롯한 외곽을 둘러보고 싶었다. 호텔 주인을 통해 대절한 택시 요금은 시간당 3만5,000리알, 0.25달러다. 여행자 입장에선 말도 안되게 떨어진 리알화 가치에 수시로 놀라곤 한다. 당연히 수락했다. 그러나 이 택시 기사, 여행자의 등골을 빼먹는데 능숙했다. 자신과 밀약한 최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가 네 끼에 해당하는 식사비를 지불하게 했으며, 내비게이션을 나무라듯 뺑뺑 돌아 시간을 축내는데 능숙했다. 지금껏 이란에서 겪은 유일무이한 불친절이었다.

불만스러웠지만 다가온 정산의 시간. 12시간을 함께 했으니 42만리알을 정직하게 냈다. 그런데 50만리알짜리 8장을 더 달란다. 왜? 우린 ‘리알’로 알아들었고, 택시를 불러 준 호텔 주인은 ‘토만(Torman)’을 의미했다. 토만은 쉽게 말하면 ‘영(0)’ 하나를 생략한 계산법이다. 상점에서 2,000이라고 계산기에 두들겨 보여주면, 2만리알을 내야 한다. 택시기사에게 지불해야 할 돈은 결국 420만리알, 약 30달러였다. 물론 처음에 ‘토만’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버텨보았지만 아직 이란 사정에 어두운 우리의 잘못으로 결론 났다. 그래도 4달러를 깎았다. 이후 이란인의 가격 기준은 ‘토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영(0)이 하도 많아 부자 시늉을 내던 우리가 바보지. 황당한 경험으로 또 하나를 얻는다. 그 후부터는 헷갈리지 않고 정확히 지불하게 되었으니까.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